두 아들의 사건사고
하루는 어떤 여성분이 다급하게 사무실 문을 열고 들어오셨다.
보통은 상담 신청을 할 때 예약을 하는데, 경황이 없었던 탓인지 무작정 상담받기를 원하셨다.
마침 바쁜 일정도 없어 상담을 해 드렸다.
내용인즉, 20대 초반의 큰 아들이 술을 마시고 취한 상태에서 잠깐 자려고 모텔에 갔다가 모텔 주인과 실랑이가 벌어졌고, 이 때문에 모텔 주인이 경찰에 신고를 했는데, 신고를 받고 온 경찰관에게도 폭행을 휘둘러 업무방해와 공무집행방해로 기소가 된 사안이었다.
의뢰인은 위와 같은 내용을 최근에야 알게 된 것처럼 보였는데, 첫 공판기일을 앞두고 있는 상황에서 큰 아들이 어떻게 해야 좋을지를 묻기 위해 나를 찾아온 것이었다.
사건 이후 수사기관의 조사에 응하여 진술한 것 말고는 사건 해결을 위한 별다른 노력을 한 것 같아 보이지 않았다.
우선은 피해자와의 합의가 가능하다면 합의를 보라고 안내하고, 진정성 있는 반성문을 써서 재판부에 제출하라고 일렀다.
의뢰인은, "아들이 실수를 한 것 같다. 원래 착한 아들이다. 요새 일이 잘 안 풀려 술을 좀 많이 마신 것 같은데 본인은 본인이 그런 행동을 한 것을 기억을 못하고 있다. 가정환경이 좋지 못해 아들에게 미안하다."는 등의 이야기를 한참을 하며 한동안 아들을 변호하는 듯한 말을 늘어놓더니, 피해자와 합의를 해 보겠노라며 자리를 떴다.
며칠 뒤 그 의뢰인이 다시 문을 빼꼼히 열고 얼굴을 들이밀었다.
어려운 형편에 돈을 마련하여 모텔 영업주와 합의를 보았으며 합의서도 작성하여 제출했다고 했다.
또 피해 경찰관에게도 큰 아들과 함께 찾아가 사과의 뜻을 전했으며 해당 경찰관으로부터 괜찮다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했다.
반성문도 두 차례 써서 제출했다기에, 웬만큼 할 수 있는 것은 다 했다고 선고를 기다려보면 될 것이라고 알려주었다.
의뢰인은 그래도 마음이 놓이지 않았는지, 또 한참을 과거의 이야기부터 해 가며 큰 아들의 안타까운 사정을 토로했는데, 그 과정에서 큰 아들이 고등학생 때 이와 비슷한 사건을 저질러 보호관찰처분을 받은 사실도 알게 되었다... 조금 걱정이 되는걸.
아무튼 이 사건은 빨리 처리되어 첫 공판기일 후 빠른 시간 안에 선고기일이 잡혔고, 벌금형일까 했으나 징역형의 집행유예가 선고되었다는 이야기를 의뢰인으로부터 들을 수 있었다.
집행유예 기간 동안에는 정말 조심조심해야 해요~ 하고는 그렇게 이 사건 상담은 끝이 났다.
그런데 한 달 정도 후 그 의뢰인이 아침 일찍 또다시 예약도 없이 사무실 문을 벌컥 열고 들어오셨다.
그 사건은 끝났는데 왜 또 찾아오셨지, 싶었는데 의뢰인의 얼굴의 전보다 더 심각해 보였다.
자초지종을 들어보니 내용은 이러했다.
본인에게 아들이 셋이 있는데, 이번엔 둘째 아들이 사고를 쳤다는 것이었다.
둘째 아들은 이제 막 성인이 된 나이로, 알바를 한다고 해서 그런 줄로만 알았는데, 알고 보니 재개발 재건축 현장에서 방범 일을 하며 회사 대표와 실장으로부터 갑질과 재산적 피해 등을 당했다는 것이다.
보다 구체적으로는, 근로계약서도 작성하지 않은 채로 밤낮없이 cctv를 보거나 하는 등의 일을 하며 최저임금도 제대로 받은 적이 없고, 오히려 회사는 사무실의 전화요금을 둘째 아들의 명의로 지급하게 하는 등 부당하게 손해를 가하였으며, 사무실의 실장인가 하는 사람이 둘째 아들에게 대출을 강요하여 둘째 아들이 본인 명의로 대출을 받아 실장에게 800만 원을 주는 등 둘째 아들 앞으로 막대한 채무가 발생했다는 것이었다.
이런 피해상황이 지적장애인들에게 종종 발생하는 경우를 봐 왔기에 조심스레 의뢰인에게 물어보았는데, 장애를 가진 것은 아니라고 했다.
그렇다면 멀쩡한 성인 남자가 왜 당장에 그런 회사를 그만두지 않았는지, 어쩌자고 그 큰돈을 대출받아 타인에게 준 것인지, 상황이 여기까지 올 때까지 무슨 생각이었던 것인지, 이해가 가지 않는 부분이 많았다.
도움을 주려면 사실관계를 명확히 알아야 했기에 당사자인 둘째 아들을 만나야 했다.
며칠 뒤 의뢰인이 둘째 아들과 함께 나타났다.
외관상으로 보이는 둘째 아들은 의뢰인이 말한 일련의 피해를 당할 것 같은 모습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할 정도로 건장한 체격이었다. 키는 190에 가까워 보였으며 비록 마스크를 쓰고 있었으나 언뜻 보이는 얼굴의 생김새가 순한 느낌은 아니었다.
더 의구심이 들었으나 편견을 배제하고 일단 둘째 아들의 말을 들어보기로 했다.
그가 말한 내용은 앞서 의뢰인이 이야기했던 것과 대체로 비슷했다. 거기에 더하여 회사의 대표가 본인을 사무실에서 생활하게 하며 대표의 강아지 두 마리를 돌보게 했다는 것, 본인과 비슷한 또래의 남자들이 인터넷 광고를 보고 돈을 벌기 위해 왔다가 며칠도 버티지 못하고 나갔기 때문에 본인이 혼자 일을 할 수밖에 없는 날들이 많았다는 것 등 조금 더 구체적인 묘사가 있었다.
툭툭 던지는 말투였고 무뚝뚝한 느낌이었으며 중간중간 의뢰인이 끼어들어 무슨 말을 하고자 할 때에는 옆에서 듣는 내가 민망할 정도로 엄마인 의뢰인을 다그쳤다.
이런 태도라면 회사의 갑질과 횡포에 가만있을 것 같지 않은데, 의아해져서 왜 참고 있었냐고 물었다.
둘째 아들은 일을 시작한 처음부터 대표와 실장의 분위기에 압도당했고 무서웠으며, 본인도 퇴사하고 싶었으나 퇴사하면 실장에게 준 돈을 영영 받지 못할 것 같아서 지금까지 버텨왔다고 했다.
대화를 해 보니 외적으로 보이는 건장한 모습과는 달리 내면은 여린 것 같기도 했다. 왜 가족에게는 막 대하면서 또래 친구들이나 형들에게는 찍소리도 못하는 그런 청소년의 모습 같달까.
의뢰인인 엄마는 옆에서 안절부절못하며 발을 동동거렸고, 정작 둘째 아들은 본인 일임에도 불구하고 남 일 이야기하듯 시큰둥했으며 문제 해결의 의지가 별로 없어 보였다. 엄마가 이야기하라니까 빨리 이야기하고 이 자리를 뜨고 싶어 하는 것처럼 보였다.
앞에서 이 상황을 지켜보는 나는 매우 안타까운 입장이었는데, 일단 최대한으로 이야기를 들어주고 어떻게 문제를 해결해야 할지 따져본 후, 갑질피해와 근로관계 상 문제에 관하여는 고용노동부에 진정을, 대출 건에 관하여는 강요와 사기로 고소하는 것을 검토해 보기로 했다.
다음 날부터 거의 매일 아침마다 의뢰인은 내 사무실 문을 두드렸다.
각종 자료를 들이밀며 이것으로 입증이 되겠는지 여부를 묻거나, 아들에게 이러이러한 이야기를 들었다며 해당 회사와 대표, 실장이라는 사람들이 얼마나 아들을 부려먹고 힘들게 했는지, 그 동안의 행태가 어떠했는지를 늘어놓고, 또 심지어 어떤날은 내 앞에서 그 회사 대표와 스피커폰으로 통화를 하기도 했다(대표라는 사람은 전화 상의 말투로도 공포심이 느껴졌는데, 아들에 대한 엄마의 사랑은 공포심을 뛰어넘는 것인지 의뢰인도 지지않고 요목조목 따지고 들더라).
그 과정에서 의뢰인은 본인의 힘들었던 결혼생활, 이혼 이후 홀로 세 아들을 키우며 고생했던 이야기, 여러 건강상의 어려움을 극복하고 악착같이 살고 있는 사정 등을 하소연하며 눈물을 보이기도 하고, 또 어느 날은 큰 아들이 정신을 차리고 일도 열심히 하고 동생들에게도 든든한 형 노릇하며 엄마에게도 생활비를 주었다고 자랑하기도 했다.
많은 이야기를 쏟아내며 의뢰인의 표정도 한결 부드러워지고 마음의 짐도 조금 내려놓는 것 같아 다행스러운 마음이 들었다.
사건 해결은 느리지만 차근차근 이루어졌다.
고용노동부 진정 이후 근로감독관이 배정되어 조사를 받았고, 형사 고소도 진행되었다.
고소 관련해 상담을 하다 보면, 본인은 억울한 피해를 당해서 경찰서에 고소하러 갔지만 "증거가 부족하다, 사건이 안 된다, 도리어 무고죄로 역고소를 당할 수 있다"는 등의 이유로 고소를 잘 받아주지 않거나 반려당했다며 억울하다는 이야기를 종종 듣는다.
의뢰인도 이와 같은 상황에 놓이지 않도록 사건 내용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하여 고소장 작성을 지원하고, 계좌이체내역이나 함께 일했던 사람들의 확인서, 녹음파일 등 최대한의 증거를 수집하여 첨부하도록 안내했다.
다행히 형사가 꼼꼼히 고소장을 검토해 주었고, 고소장이 접수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이후 고소인 조사를 받았다는 연락이 있은 뒤로는 의뢰인에게서 한 동안 연락이 없다.
각 절차가 무리없이 잘 진행되어 사실관계에 따른 정확한 결과가 나오기를 기대하며, 의뢰인도 더 이상 아들들의 사건사고로 마음 졸이는 일이 없기를 바란다.
의뢰인 본인의 삶은 제쳐두고 완전히 아들들의 사건 해결을 위해 발벗고 뛰는 의뢰인의 모습을 보면서 안타까운 마음이 듬과 동시에 자녀가 다 커서도 늘 걱정하고 노심초사하는 엄마의 삶에 대해 생각했다.
엄마가 되는 것은 보통일이 아니구나.
다시 한 번 느낀다.
더불어 꿀댕이를 정말 잘 키워야겠다고 다짐 또 다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