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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털복숭이 Aug 17. 2022

믿음이라는 것

부부사이든 부모자녀사이든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미세한 균열이 반복하여 발생한 그릇은 조그마한 충격에도 쉽게 깨어지고 만다.

상대의 거짓말은 관계에 미세한 균열을 만들고 그것이 반복되면 결국엔 깨어지겠지.


믿음, 신뢰라는 것.

쌓아올리기까지는 많은 시간이 걸리지만 잃는데에는 그다지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나는 담배를 너무 싫어한다.

냄새도 너무 싫고 담배를 피우는 행위도 싫고 그로 인한 피해도 싫다.

흔히 '길빵'이라 말하는 길 가면서 담배 피우는 행위를 경멸한다.

요즘 너무 이상한 사람이 많아서 말했다가는 봉변당할까봐, 똥이 더러워서 피한다는 마음으로 앞서가거나 돌아가지만, 길 가며 담배피우는 사람이 있으면 진짜 민폐주지 말라고 말해주고 싶은 마음 굴뚝이다.

건강에도 안 좋은 걸 비싼 돈까지 주면서 왜 피울까, 나로서는 이해하기 어렵지만, 기호식품이니 본인이 좋아서 피우겠다면 남에게 피해는 끼치지 않고 피웠으면 좋겠다.


나는 아빠가 담배피우는 모습을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엄마 말로는 아빠가 젊었을 적 친구들과 술 마실 때 가끔 담배를 피우고는 했다 하는데, 내가 기억하는 한 집에서든 밖에서든 한 번도 아빠가 담배를 피우는 걸 본 적이 없다.

그래서 그런지 나는 어려서부터 담배피우는 남자가 싫었다.

담배를 피우는 남자친구를 만난 적이 없었다. 호감이 가다가도 담배를 피운다거나 피우는 모습을 보면 매력이 확 떨어져 보였기 때문이기도 했다(누군가는 그게 멋있게 보이기도 한다지만...ㅎㅎ).  

그리고 아무리 관리를 한다고 해도 숨쉴 때 코에서 나는 텁텁한 냄새라든지 착색된 누런 이를 숨기는 것은 어려워 보였다.

그렇게 담배피우는 남자를 기피했건만.

왜. 나는.


남편을 로스쿨에서 만나고 사귀기로 했을 때, 그 때 남편의 흡연 경력을 알았는지 여부가 기억나지 않는다.

로스쿨에서 남편은 나와 함께 있는 시간 포함 대체로 비흡연자처럼 보였고, 시험을 망쳤다거나 스트레스를 많이 받은 날에 때때로 건물 옥상에 올라가 동기들과 한 두개피 정도를 피웠다.

그땐 수험기간이라는 특수 상황 때문에서였는지, 사귄지 얼마 되지 않아 콩깍지가 씌었던건지, 그만큼 남편이 좋았던건지, 혹은 이 모든 이유의 복합이었는지, 그게 우리관계에 있어 그다지 큰 문제로 다가오지 않았다.

물론 싫기는 했지만 일단 시험에 합격해야 한다는 1순위 목표 앞에 가려져 있기도 했고, 최소 중독 정도는 아닌 것 같으니(스스로 조절이 가능해 보이니) 스트레스 상황에서 벗어나면 피우지 않을거라는 믿음이 있었던 것 같다. 그렇게 믿고 싶었던 걸 수도.

그러한 나의 믿음에 부합하듯 남편은 시험 합격 후 담배를 더는 피우지 않는 듯했다.

간간이 남편의 콧김에서 미묘한 그 냄새가 나는 것 같기도 했지만.

어쨌든 남편에게 담배의 흔적을 발견할 수는 없었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꿀댕이가 태어나고 벌써 결혼한 지 4년이 흘렀다.

그런데 몇 달 전, 우연히 남편의 가방에서 뭘 찾다가 전자담배를 발견했다.

머리를 한 대 맞은 것 같았다.

전혀 생각도 못하고 있었는데 이렇게 뒷통수를 치다니.

집에 아기도 있는데 어떻게 담배를 피우지? 왜 지금껏 몰랐지? 언제부터 피우고 있었던거야? 쓸데없는 데 돈 쓰는거 질색하는 사람이 웬 담배래? 아무리 씻고 관리를 한다고 해도 입자가 몸에 다 붙어있을거고 같이 생활하는 우리에게까지, 특히 꿀댕이한테까지 안 좋은 영향을 줄텐데 왜 이러는거지? 왜? 중독인가?

정말 오만가지 생각이 들었다. 실망스러웠다.

1차 균열.

다음 날 남편에게 물었더니 머쓱해하며 웃으며 넘기려하길래, 더 이상 피우지 않겠다는 약속을 받아내고 넘겼다. 이 때만해도 지켜줄거라는 믿음이 있었다.


그 후 이따금씩 밤 늦게 나 혼자만 깨어 있는 날 남편의 가방을 뒤졌는데 담배는 없었다.

그래, 이제는 안 피우나 보다.

어쩔때는 대놓고 "이제 담배 안 피우지?" 물어도 봤다.

남편은 "응. 안 피우지~" 시원하게 대답을 잘 했다.

그렇게 믿음이 다시 쌓여가던 찰나,

그저께 밤에 남편의 컴퓨터 배터리로 내 컴퓨터 충전을 하고 다시 배터리를 남편의 가방에 넣어주려고 가방을 벌렸는데 또 발견하고 말았다.

그 놈의 전자담배. 옆에 담배갑도 있다. 한 개피 남았네.

이번엔 다른 색깔이었다.

고새 다른 걸 샀나봐? 허술하게 또 가방에 넣어둬서 들키냐. 이쯤되면 진짜 중독인가?

2차 균열.

어제 남편에게 물었더니 이번엔 회사 동료꺼라고 둘러댄다. 말이 되는 소릴 해...

담배도 담배지만 지금까지 거짓말을 했다는 사실에 정이 뚝 떨어졌다.




영화 '그는 당신에게 반하지 않았다'에 제니퍼 코넬리와 브래들리 쿠퍼가 부부로 나온다.

제니퍼 코넬리는 담배도 싫어하고 거짓말도 싫어하는데, 집 구석에서 나온 담배꽁초를 보고 브래들리 쿠퍼에게 묻지만 브래들리 쿠퍼는 '담배를 피우지 않았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 후에도 제니퍼 코넬리는 집에서 담배꽁초를 발견하고...결국 브래들리 쿠퍼에 대한 신뢰가 완전히 깨어져 버린다.


이제 나는 남편의 말을 신뢰할 수 있을까.

나는 과연 남편의 행동을 신뢰할 수 있을까.

하나를 보면 열을 아는 법인데.




아들은 아직 엄지손가락을 엄청나게 빨아댄다.

앞니 사이가 제법 벌어졌고, 입술도 조금 튀어나온 것 같다.

어쩔 때는 엄지손가락이 빨개지고 잇자국이 생길 정도로 빨 때도 있고, 그 때문인지 손톱도 잘 깨지고 날카롭다. 빨면서 다른 손가락으로 코도 눌러서 안그래도 낮은 코 끝이 더 낮아질까 걱정된다.

지금보다 어렸을 적에 남들따라 '제시카니블노모어'라는 쓰디쓴 액체로 고치려고도 해 봤지만, 그 쓴 것을 먹으면서까지 손가락을 빨았던 애다.

좋은 말로 하니 들어먹질 않아서, 이빨벌레가 이도 다 갉아먹고 입술은 오리입술 되서 오리가 될 것이고 결국 엄마아빠랑 떨어져야 한다고 협박도 해 보았지만 잠깐뿐이고 몇 초도 안 되어 다시 손을 빤다.


어제도 '안 빨거에요'하고서 조금 지나 또 손을 빨길래,

어휴 이제 손 빨지 말라고 하는 것도 지친다. 안 빤다고 하고 또 빨고 또 빨고...너도 아빠도 다 똑같애. 못 믿어!!

라고 했더니 아들 왈,


"안 빨거야. 믿어!!! 믿어죠!!"



진짜 믿어도 되겠니??

또 빨면 어쩌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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