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털복숭이 Sep 05. 2023

어느 날의 다툼

최근에 남편과 크게 다투었다.

신혼 초 투닥거림을 제외하고는 잘 싸우지 않은 우리였는데, 최근에 그야말로 전쟁을 치렀다.

별 것 아닌 문제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자그마한 서운함으로 시작된 것이 뭉게뭉게 연달아 생각을 거듭하며 커지다가 이내 내 마음에 가득차고 말았다.




꿀댕이를 혼자 보던 날, 그 날 유난히도 꿀댕이가 짜증을 부렸다.

쇼핑몰에 앉아있는 공간에서 꿀댕이가 몸을 베베꼬고 난리를 부리며 신발을 벗다가, 그만 신발 한짝이 튀어올라 옆에 앉아있던 남자의 상의를 툭하고 친 후 땅바닥으로 떨어졌다.

나는 놀라서 죄송하다고 말하며 꿀댕이를 나무랐다.

남자는 상의를 툭툭 턴 후 나와 꿀댕이를 번갈아 바라보며 눈을 부라렸다.

정말 싫어 죽겠다는 표정으로 계속 쳐다보길래, 거듭 죄송하다고 말하고 자리를 옮겼지만 마음이 불편했다.

그 눈빛과 표정이 계속 마음에 걸려 기분이 좋지 않았다.

시간이 조금 지난 후 남편을 만났고 집으로 가는 차 안에서 나는 위 에피소드를 남편에게 말했다.

나는 남편이 내 이야기를 듣고, 그런 일이 있었냐고, 기분 나빴겠다고, 뭐 그런 사람이 다 있냐고 말해주길 바랐고 그럼으로써 내 기분이 조금 나아지기를 바랐다.

그런데 남편의 입에서는 전혀 다른 말이 나왔다.

나더러 그 사람에게 얻어맞지 않은 것을 다행으로 생각하라는 것이었다.

아니, 순간 나는 머리를 망치로 얻어맞은 느낌이었다.

전혀 생각지도 못한 반응에 그야말로 뇌가 정지되었다고나 할까.

그러더니 급기야는 내가 지금 너무 흥분했다며, 그런 이야기를 계속 자기에게 하면 좋지 않은 기운이 자기에게까지 퍼지게 되고 자기까지 기분이 나빠진다고 그러는 것이었다.

아니, 내가 그런 이야기를 남편에게 하지 않으면 누구에게 하며, 부부가 항상 기분좋은 이야기만 하고 살 수는 없는 노릇아닌가?

그 순간 어이가 없어서 입을 다물었다.

아무 말없이 집까지 가는데, 서러운 마음이 북받쳐올라 눈물이 쏟아졌다.

무엇이 어디서부터 잘못된걸까.


스트레스를 받으면 나는 혼자 삭이는 방식으로는 그것을 풀지 못한다.

어떤 방식으로든 그것을 표출해야 하는데, 이렇게 나만의 공간에 글을 쓰는 것도 한 방법이지만 역시 수다떠는 것만큼 좋은 해결책은 없다.

나는 내 가장 절친인 여동생과 또 내 속마음을 터놓을 수 있는 몇 안되는 친구들에게 그 동안의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동생과 친구들은 역시 나의 입장에 공감해주며, 어떻게 그 상황에서 그렇게 말할 수 있냐고, 그렇게 생각하는 것도 진짜 이해가 안되지만 백번 양보해서 그렇게 생각한다고해도 어떻게 입밖으로 그렇게 내뱉을 수가 있냐고, 지금 시시비비를 가리자는 게 아닌데 꼭 그렇게 말해서 상황을 더 악화시켜야겠냐며...공감능력도 지능이라는데 그렇게 머리가 안 돌아가????? 절대로 먼저 말 걸지마!!!

우리는 신나게 떠들었다.

스트레스가 좀 해소되는 것 같았다.

사람에게 받은 상처는 사람으로부터 치유받는다더니, 나에게 친구같은 여동생이 있고 또 가족같은 친구가 있어서 얼마나 다행인지.


나와 남편사이, 한 동안 대화없는 날들이 이어졌다.

그러다가 우리는 여름휴가를 앞두고 어쩌다가 말을 텄고, 그 날의 이야기는 짚고 넘어가지 않은 채 자연스레 여행길에 올랐다. 말은 하지만 예전처럼 친밀한 느낌은 없는 채로.

남편은 전부터 다툼이 있을때면 혼자 시간을 갖다가 어느 순간 괜찮아져있고는 했다.

하지만 나는 그렇지 않았다. 다툼의 원인이 된 그 이야기를 직접적으로 꺼내어서 매듭을 짓지 않으면, 그것이 계속 마음속에 앙금처럼 남아 좀처럼 지워지지 않았다.

이 때도 그랬다. 아직 그 날의 앙금이 마음속에 남아있었다.

여행은 순조로웠다.

꿀댕이도 잘 따라와주었고, 우리는 이 여행을 무사히 끝내겠다는 사명을 가진 사람들처럼 각자의 자리에서 해야할 일들을 했다.

그러다 여행의 중반이 지날 무렵이었다.

어느 도시의 성(castle)에 갔다가, 내리막길이 시작되는 곳에서 꿀댕이가 유모차를 혼자 밀려고 힘을 주었다. 처음엔 제지하려 했는데, 꿀댕이가 너무 고집을 부리길래 '그래, 어디 해봐라' 하고 손을 놓았다. 그것을 옆에서 지켜보던 남편이 큰일날 수 있는데 가만있었다며 뭐라뭐라 하는 것이었다.

그 순간 갑자기 화가 났다.

가만보면 항상 그런 식이야. 본인이 마음에 안 드는 상황이거나 그런 행동이 있으면, 본인이 먼저 행동을 하든가 나에게 본인이 원하는 바를 말하면  될텐데, 그냥 멀찍이서 지켜만 보다가 일이 다 끝나고 난 다음에 나에게 이러이러면 안되는데 왜 그랬냐고 비난을 하는.

그런식으로 비난하고 재단하지 말라고 뭐라하니 남편 왈. 자기는 나한테 눈치를 준다고 줬는데도 내가 그걸 알아차리지 못한다나. 아니, 나는 눈치가 없으니 말을 하라고....그리고 원하는게 있으면 그냥 본인이 행동을 해. 나는 집이 어질러져 있으면 내가 알아서 치우잖니...

한 번 터진 입은 멈출 줄을 몰라서, 결국 그 날의 일까지 소환해냈다.

어떻게 그 날 그렇게 말할 수 있냐고, 너무 공감능력이 없는 것 아니냐고.

그 사람이 그 자리에 있었던 것도 아니고, 시시비비를 가리자는 것도 아닌데, 나는 내 기분 언짢은거 위로받고 싶어서 이야기를 한 건데 거기서 꼭 그렇게 말했어야 했냐고.

그런데 뜻밖에 남편은 이번에도 나를 탓했다.

자기는 요즘 세상에 너무 이상한 사람들이 많기 때문에 그런 사람들 조심해야 한다는 취지로 그렇게 말한 거라나? 아니 그럼 먼저 내 기분을 살핀 후 그런 얘기는 나중에 할 수도 있는거 아니었을까.

그리고 본인도 본인 주변사람에게 이 이야기를 했는데, 다들 제일 처음 하는 말이 "세탁비는 물어줬어?"였단다. 와...진짜 애 신발이 멀리서 날아와 친 것도 아니고, 애 신발에 진흙이 묻어있던 것도 아닌데, 어떻게 이야기를 했길래 그런 반응이 나왔을까. 내가 그 사람이 흰 티셔츠를 입고 있었다고 이야기는 했지만, 그것이 이 이야기의 포인트가 아닌데, 자긴 내가 흰 옷을 엄청 강조하며 말했단다. 아무리 흰 옷이라고 해도 꼬마애가 고의로 그런 것도 아니고 짜증부리며 신발을 벗다가 신발이 옷에 한 번 데인건데. 음료수라도 쏟았으면 몰라. 그 옷이 뭐 대단한 명품이어서 나를 그렇게 부라리며 본 걸까. 내가 거기서 죄송하다고 한 것으로는 모자랐을까. 무릎이라도 꿇어야 했을까. 정말 세탁비까지는 생각을 못했는데, 진짜 말문이 막혔다.

지금 세탁비를 물어줘야 하는 상황에 나는 내 기분만 생각하는 자기중심적이고도 이기적인 사람이 된건가.

남편에게 그런 반응을 한 남편 주변 사람들이 나를 그런 맘충으로 생각할 것이라는데까지 생각이 미치자 남편과 나는 정말 다른 부류의 사람이라는 게 확 느껴졌다.

남편은 그때까지도 본인은 아무 잘못 하지 않았는데 나 혼자 화가 나 열불냈다고 생각하고 있었던거다.

그렇게 여행지에서도 우리는 충돌하고 말았다.

나는 또 눈물을 쏟았고, 남편이 미안하다고 하며 끝났지만(아마 여행 도중이어서 그랬을듯), 전혀 와닿지 않았다.


하나의 에피소드를 놓고도 서로 너무나 다른 생각을 하는 걸 보고 우린 정말 다른 사람이라는 생각을 했다.

나는 어떠한 이야기를 (다른 사람이 아닌 특히)남편에게 할 때, 그 이야기 속의 나의 기분이나 내 감정을 남편이 알아봐주고 거기에 공감해주기를 바라는데, 남편은 그 이야기를 제3자의 입장에서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그 안에서의 내 행동이 옳은 것인지 그른 것인지를 가린다. 그리고 내 기분이나 감정을 알아봐주기를 바라는 나의 모습이나, 내가 원하는 대답을 상대가 해 주지 않았을 때 내가 느끼는 서운함을 자기중심적인 태도라고 치부해 버린다.

그러니까 한 마디로, 남편에게 나는 세상 자기중심적인 사람인 것이다.

험난한 세상을 살아감에 있어 남편이 완전한 내 편이라고 생각되어도 모자랄텐데, 이렇게 나와 다른 사람과 어떻게 평생을 살 수 있을까.

앞으로도 내 이야기에 전혀 공감해 주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할텐데, 그럴 때 또 나는 어떻게 해야 할까.

그럴 때마다 나는 마음속으로 상처를 받을텐데 말이다.

말로만 듣던 쇼윈도 부부나 대화가 없는 부부가 이런 식으로 시작되는 것 아닐까.

나는 이혼하지 않는 한 재미나고 알콩달콩하게 잘 살고 싶은데...

나는,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마침내는 최악의 결과를 상상해 본다.




나도 공감능력이 부족하다는 말을 엄마나 동생으로부터 들을 때가 있다.

태생이 감정적이기보다는 이성적인 편이고, 사건이 발생하면 그 사건의 쟁점을 찾아 법적으로 해결하는 일이 직업이다보니, 누군가 이야기를 하면 그 이야기의 문제를 분석하고 답을 찾으려는 게 원체 몸에 뱄기 때문에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한다.

역지사지가 최고의 해결책이라고 하더니...이번 일을 겪으며 사람이 사람과 관계를 맺음에 있어 공감능력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닫는 바가 많았다.

나 부터가 내 앞에 있는 상대방의 감정에 먼저 귀를 기울이고 따듯한 말 한마디 해 주는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다짐해 본다.









매거진의 이전글 동생이 갖고싶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