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 부, 강녕, 유호덕, 고종명 의미를 설명한 후, 오복(五福) 중 하나만 고르라면 어떤 것을 택하겠냐고 물었다.
이외로 ‘고종명(考終命)’이 많았다. 이유가 궁금했다. 늘그막에 돈 많아 봤자 뒷날이 시끄럽고, 덕을 베풀 만큼 마음이 여유롭지 못하다. 자식들 눈치 안 보게 적당히 살다 깨끗이 가는 것이라 했다.
이분 저분 의견을 다 듣고 나서 내 생각을 말했다. ‘강녕(康寧)’하다면 일석이조일 것이다. ‘천수(天壽)’를 누려 볼 수 있을뿐더러, ‘고종명’도 기대할 수 있지 않겠는가.
노인 복지관이나 마을회관 등지에 출강할 때, 운동으로 건강을 다져야 하는 이유를 이렇게 설명하곤 한다.
지금은 지역사회에서 운동 강사로 활동하고 있지만, 나도 한때 건강을 잃어본 적이 있다.
이십 대 후반, 회사에 다니던 시절이다. 어느 가을날, 팔에 수액 주사를 꽂은 채 침대에 누워 수술장으로 이동하고 있었다. 회색 천장만 바라보다 입구 앞에 멈췄다. 곧 문이 열리고 ‘수술중’ 빨간 불빛 아래를 지나 싸늘한 진공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여기에 이르기까지 뭘 했나 부질없는 자책도 했지만, 수술 전 긴장을 감내하기가 더 버거웠다. 먹잇감을 찾은 듯, 수술 조명 아래 네댓 명의 수련의들이 모여들었다. 주치의 선생 물음에 응답하다 이내 정신이 혼미해졌다.
의식이 되돌아오자 회복실로 실려왔다. 간호사들이 나를 반대편 침대로 옮기는데 이삿짐 다루듯 했다. 꼼짝달싹도 못하는 몸뚱이를 보면서 한심하다 못해 역정까지 냈다.
늦은 밤 수술 부위 마취가 서서히 풀리는데 한참을 끙끙댔다. 새벽에서야 눈을 붙였다. 잠결에 간호사가 바이탈을 체크하는 것 같았다.
시키는 대로 재활 훈련을 꾸준히 했다. 하루는 복도 끝 벤치에 가 앉았다. 지금은 없어진 청량리 어느 종합병원에서 내려다본 바깥은 오가는 차량, 인파들로 붐볐다. 시간이 유리 벽으로 차단된, 비현실적 공간에 갇히기까지 지난 여정을 되짚어 봤다.
완력이 생각보다 앞서던 시기이다 보니 몸이 컴플레인 제기 안 할 것으로 여겼다. 업무, 스트레스를 핑계 삼아 술, 담배가 지나치지 않았던가. 젊은 나이임에도 타인에 의해 메스를 내 몸에 댄다는 것. 자존심이 여지없이 유린된 현 상황이 수치스러웠다.
살면서 병원, 경찰서 다녀가지 않아도 후회 없다고들 하니 다신 이런 실수를 반복하지 않으리라.
당찬 결기라 한들 세상사가 호락호락 내버려 두겠는가. 언제 그랬느냐 잊고 십여 년을 그렇게 보냈다.
이런 흐름을 바꾼 것은 생소한 심신 건강법이었다. 단전호흡을 알게 된 후 케미가 맞았던지 꾸준히 수련장에 나갔다. 그러하기를 3년이 되던 해 특이한 체험을 하게 된다.
여느 때처럼 하단전에 의식을 모아 호흡을 고르고 고르는데, 갑자기 복부 안이 훤히 보였다. 내관(內觀)이라는 것을 알았다. 한정된 부위 즉, 소장과 바로 앞 살갗 사이의 공간이었다. 투명하며 미끈거리는 체액으로 가득 차고, 그 안에 미세한 기포나 알갱이들이 분주히 움직이고 있었다.
각자 나름대로 활동하는 유기체였다. 숨을 들이쉬면 소장과 살갗 사이 공간이 좁아져 양옆으로 밀려 나갔다, 내쉬면 되돌아오기를 반복했다. 오묘한 색깔까지 띄고 있어 넋을 놓은 채 지켜봤다.
평소 내가 의식하지 않아도 끊임없는 생명 활동을 했다는 것이 아닌가. 완생(完生)을 위해 부단히 수면 아래서 떠받치고 있다는 사실에 경이롭고 숙연해졌다. 이들과 나는 지향하는 바가 같으니 영원한 동업자다.
아래 문구가 가슴에 와 꽂힌 것은 우연이 아닐 것이다.
-그 오랜 세월을 함께해 준 제 몸에게 고맙습니다.
-네가 버틸 수 없을 땐 네가 원하는 대로 할 거라고.
-우리가 누렸던 놀랍도록 멋진 삶에서 기쁨을 얻었으니..
(『내가 틀릴 수도 있습니다』 비욘 나티코 린데블라드)
두 번째 경험은 하나의 해프닝에 불과할 수도 있다. 분명한 것은 이 사건을 계기로 심신을 두루 살피려는 습관이 생겼다는 것이다.
동의보감 서문에 이런 말이 있다. ‘사람의 질병은 모두 조리와 섭생의 잘못에서 생기는 것이니 수양(修養)을 우선하고 약물은 그다음이어야 한다.’ 집필의 가이드라인을 선조가 밝힌 것인데 오늘날 예방의학의 효시라 봐도 무난할 것이다. 건강할 때 건강을 지켜야 하는 이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