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콩밭 매는 나그네

by 소운 Feb 09. 2025

 귀향하자 숙부님의 오래 묵힌 밭이 있었다직접 경작하기로 했다예전부터 건강에 좋은 검은콩을 친환경으로 키워보고 싶었다남부 지방에서는 서리태 재배가 어려워 흑태와 약콩을 선택했다.

 

봄에 검정 비닐 멀칭을 하고 구멍마다 콩을 세 알씩 넣었다살균과 조류 기피 효과가 있는 새총의 빨간 약물에 묻혀 말린 콩이었다벌레인간 몫 하나씩오호천지인이라나는 모음 창제 원리로만 알았다

 

십여 일이 지나자 콩은 발아했다콩 대가리마다 빨간 털모자(새총)를 쓰고 나왔다모자가 봄바람에 날리면 새들이 달려들었는데애꿎은 옆 친구까지 피해를 봤다나는 여린 순이 움트는 과정을 지켜보는 게 좋았다모시처럼 질겨 보이는 생명력이 내 손가락에 올라탔다.

 

 농사가 만만치 않은 것이한두 달 후 잡초가 기승을 부렸다동네 사람들은 제초제를 뿌리지왜 그렇게 사서 고생을 하냐”라고 충고했지만나는 친환경을 고집했다잡초는 한 번 호미질해도 며칠 뒷면 또 자랐다비 온 뒤엔 고랑이 질퍽해져 들어가기조차 힘들었다잡초만큼 무서운 게 없다지만알고 보면 잡초는 사람이 천적이다    

 

엉덩이에 쿠션을 깔고 앉아 호미로 콩밭의 잡초를 매고 또 매었다작업은 더디기만 했고 콩밭 매는 아낙네’ 아닌 콩밭 매는 나그네라는 자조적인 웃음이 나왔다내가 왜 이 농사를 지어보자 했을까때늦은 후회도 했다.     


 한여름콩 줄기가 마르기 시작하면 뽑아집 옥상에서 더 말렸다도리깨로 콩 타작은 못하고 발로 밟고 막대기로 두드렸다키질도 그냥 바람에 콩깍지를 날렸다장마철 후 수확이라 콩 벌레가 많아 수확량이 적었다    

 

 조금 심은 참깨는 콩 수확한 후 거두었다두 농사가 끝나면 트랙터를 불러 로터리 작업 후 시금치씨를 뿌렸다동네 사람들이 서울 살다 온 사람이 농사를 제법 잘한다고 칭찬했는지큰어머니는 아래 밭 300평도 해보라고 내놓았다그때 거절해야 했는데뒷날 그것이 화근이 될 줄 몰랐다과유불급이었다.     


 다음 해부터 600평 밭에 검은콩참깨시금치마늘까지 심었다그런데 이게 웬걸밭농사에 도움을 보태던 아내마저 직장이 생겨기울어진 운동장이 되어갔다잡초와의 전쟁에서 곤욕을 치렀다중간에 타월을 던지려고 해 봤지만사람들의 비웃음을 어떻게 감당할까.     


“‘그럼 그렇지농사는 무슨 농사여..”     


진퇴양난이었다이때땅두릅이 떠올랐다봄 한철이면 충분한데 왜 그리 사서 고생했는지농사를 대대로 지어 온 분들께 경의를 표하며그해 콩참깨 수확을 마지막으로 밭을 갈아엎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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