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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비야 청산 가자

아버지를 추모하며

by 소운 Mar 13. 2025

 갑자기 비가 내리며, 길바닥에 새하얀 물보라가 튀어 올랐다. 연이틀 감정의 파도가 너무 거센 탓인지, 나의 어깨와 팔이 간헐적으로 떨려 왔다. 벽에 기대어 바깥을 내다보니, 가늘던 빗줄기가 어느새 장대비가 되어 있었다.

이곳은 산으로 둘러싸인 기피 시설로, 빗줄기가 거세지자 수많은 사람들이 내지르듯 우우소리를 쳤다.   

    

현관을 드나드는 사람들은 한결같이 근심이 가득한 얼굴이었다. 나는 장지에 나가 있는 업자에게 준비 사항을 다시 한번 확인했다.     

여기 지명은 연죽(煙竹)인데, 연죽, 즉 담뱃대에서 다 탄 재는 별다른 의미 없이 툭툭 털어버린다. 그러나 여기에 오는 분들의 재는 가볍게 여겨서는 안 된다. 가령 아버님 같은 분은 얼마나 일생을 치열하고, 열정적으로 사셨던가.      


너에게 묻는다.

         안도현     

연탄재 함부로 차지 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 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     


그날은 아버님의 폐렴 치료가 시작된 지 3일째 되는 날이었다. 열도 많지 않았고, 가래도 차도를 보여 큰 고비를 넘긴 듯했다. 서울에서 온 셋째 아들 내외의 눈을 똑바로 보기도 하셨다.   

   

 다음 날 새벽, 나는 소스라치게 놀라 잠자리에서 일어났다. 뒷머리를 단단한 둔기로 맞은 듯한 느낌이었다. 그때 모르는 전화가 걸려왔다. 이 시간에 무슨 전화일까? 초조하게 들리는 간호사 목소리였다.    

  

“... 할아버지 지금 상태가 많이 안 좋습니다. 혈압도 떨어지고. 산소 포화도 30대 정도입니다. 빨리 오셔야 할 것 같아요.”     


시계를 확인하니 새벽 328분이었다. 그럴 리가 없었다! 나는 아내를 깨우고 먼저 집을 나섰다. 바쁜 걸음으로 채 10분도 안 되는 거리, 병원이 보였다. 휴대폰이 또 울렸다.     

6인실 가운데 자리한 아버지 병상, 평소와 달리 양옆으로 커튼이 드리워져 있었다. 아버님은 눈을 감은 채, 산소마스크를 착용하고 계셨다. 나는 침대 옆 이동식 모니터를 봤다. 모두 낯선 데이터였다. 어떻게 이를 수가..  

   

간호사가 우리에게 말했다.

수치가 너무나 빨리 떨어지고 있습니다.”

아내가 다급히 물었다.

혈압 상승제는요?”

이렇게 떨어진 상태에선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나는 아버님의 손을 붙잡고 손등을 쓰다듬었다. 아직은 따뜻했다. 하지만 굳었던 손마디가 풀렸다. 조금 후, 혈압이 40대에서 30, 20으로 급격히 떨어지자 아내가 흐느꼈다. 새벽 4시 정각 무렵, 나는 형제들에게 카톡을 했다.   

  

타계.. 하셨습니다...’     


나는 울음이 목에 걸리고 말았다. 주위 노인들도 힘겨운 노구를 붙든 채 잠을 자고 있기 때문이었다. 가시는 길 두렵지 않게, 나는 끝까지 왼손을 붙잡고 있었다. 마지막 온기가 내 손 안에서 가물거렸다.

응급실 담당의가 선고를 내리고, 앞 커튼마저 가린 간호사들의 분주한 움직임이 내 에 굴절되었다. 복도에 나온 나는 부르르 몸을 떨다가도 이내 무덤덤해지는 등 감정을 종잡을 수 없었다.  

     

 장례 3일 동안, 오락가락 가을비가 내리며 궂은 날씨가 계속되었다. 문상객이 뜸한 사이 나는 영정을 올려다봤다. 아버지의 형형한 눈초리와 당당한 기백에 한없는 존경심이 우러났다.  

   

중도지폐해서는 안 된다. 결과는 천명에 맡겨야 한다. 일정지심(一定之心)으로 출발과 끝이 같아야 한다.’     


이와 같은, 증조할아버지의 생활 철학을 충실히 따르고자 했던 분이 아버님이셨다. 아버님은 근검절약할 뿐만 아니라 저축이 일상화되어 있었다. 상다리가 부러지면 고쳐서 썼고, 반찬은 서너 가지가 넘지 않도록 일렀다. 그래서 부모님으로부터 받은 육신을 저토록 뼈만 남을 때까지 버리지 못한 것이었을까!   

  

예전, 어느 노스님의 유명한 문구가 떠올랐다.

정신과 육신은 서로를 양생 시키지만, 어느 한계점에 이르면 육신이 정신을 옭아맨다. 그땐 과감히 법구(法具)를 버려야 한다.”     

퇴계 이황 선생도 70 생을 마감하며, 마지막 구절에 이렇게 말하지 않았던가.

조화를 타고 돌아가니, 다시 또 무엇을 구하리오.”

 

화장이 끝났다. 나는 담담하게 받아 들었다. 얼이 떠나버린 빈집, 타고 무너져 내린 허망함이 감돌고 있었다.  

 


 화장장을 뒤로하고 장지로 갈 무렵, 빗줄기가 보슬비로 변했다. 내가 선도 차량으로 아버님의 마지막 가시는 길을 놓아드렸다. 장지가 있는 녹두산이 시야에 들어오는데, 정상부만 남기고 산 아래 구름이 자욱했다. 멀리서 우리 일행을 지켜보는 것처럼.


 가족 묘원으로 들어가는 밭에 돼지감자 꽃이 흐드러지게 피어 있었다. 풀줄기를 헤치고 들어서자 무수히 많은 나비가 날아오르고, 일부는 일행의 옷자락에 앉기도 했다.      


나비야 청산 가자.    

              -청구영언   

나비야 청산 가자. 

범나비 너도 가자.

가다가 저물거든 꽃에 들어 자고 가자.

꽃에서 푸대접하거든 잎에서나 자고 가자.     

 

청산으로 가는 영령들이니 놀라지 마라. 이 중에 너 아비도 있느니라.’     


오랜만에 할아버지의 묵직한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안장 행사가 잘 끝나기를 바라듯 비구름이 머무적거리며 지켜보고 있었다. 하관 때 나는 말했다.     

아버님이 몸소 묻히기를 바라던 자리입니다. 이제 그 약속을 받들어 모십니다. 오랜 병석에 너무 힘드셨죠. 이제 평안하게 계십시오.”

 

나는 구름으로 잠긴 녹두산을 올려다보며, 물었다.     


아버지, 이제 어디 계십니까?’

소이부답 심자한이네!’    

 

이백의 시 한 구절만 남기시고, 구름 속으로 표표히 사라지시는 아버님 뒷모습이 어른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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