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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느림보 May 30. 2024

글쓰기를 다시 시작한 지 4일째

재담꾼이 되기 위한 여정

무라카미 하루키는 매일 400자 원고지 10장 정도를 글로 채운다고 하더라. 4,000자. 회사원이 출근을 해서 맡겨진 일을 해 내고, 선생이 매일 아침 학교에 가서 학생을 가르치고, 학생이 수업을 듣고 공부를 하듯, 그는 매일 4,000자의 글을 써낸다고 한다. '믿거나 말거나'라는 마음을 품고 싶지만 아마 그런 일상을 보내고 있음에 틀림없다. 매해 1회 풀 마라톤 대회에 참가하는 모습을 보면 아마 그는 삐걱대더라도 꾸준히 정한 바 그 일을 해 내고 있을 것이다.


글을 쓰고 싶다. 또 말을 하고 싶다. 그렇게 먹고살고 싶다. 그렇게 사는 삶이 나에게 제일 잘 어울린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느낀다. 그렇게 이미 살아가고 있는 선배들이 너무 멋져 보인다. 쉽지 않다는 것도 안다. 당연히. 하지만 아무리 생각을 고치고 또 고쳐도 나에게 주어진 능력을 감안했을 때 이런 삶보다 더 나은 무언가가 잘 떠오르지 않는다. 아직 내가 경험이 부족해서 일지도 모르겠다. 철딱서니 없는 무지렁이라서 그럴 수도 있겠다. 그럼에도 어쩔 수 없다. 난 글을 쓰고 말을 하기로 정했고, 평생 그렇게 살 생각이다.


그래서 일단 무라카미 선생님의 말씀처럼 매일 꾸준히 쓰기로 했다. 처음부터 4,000자는 버겁다. 물론 쓸 수 있지만 매일 해내야 하는 목표로 정하기에는 아직 나는 부족하다. 그러니 일단 열과 성을 다하지 않더라도 되는 양을 매일 하자. 그래서 무슨 일이 있어도 2,000자는 적자. 이렇게 마음속으로 정했다. 몸이 너무 안 좋아서 밥도 제대로 안 넘어가는 날, 하루 종일 일정이 있는 날을 제외하면 여행을 가더라도, 바쁘더라도, 하기 싫더라도 2,000자는 지키자고 마음을 먹었다.


그렇게 정하고 4일째 2,000자는 우습게 넘기며 매일 4,000자 이상을 쓰고 있다. 생각보다 2,000자는 양이 너무 적다. 나는 글을 쓸 때 보통 아웃라인을 정해 놓고 시작한다. 이것을 나는 플롯이라고 부르는데, 이 플롯을 통해 구성을 확실히 짜고 작문으로 넘어가는 프로세스를 선호한다. 글의 흐름이 다른 곳으로 향하거나 하는 오류가 소스라치게 싫다. 그래서 나만의 방식으로 서론-본론-결론을 구성하고 각 영역에 맞추어 다시 세분화시켜 나가며 글을 전개하면 너무도 빨리 2,000자가 넘어간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하루에 4,000자를 넘기지 않는다던데. 더 쓸 수 있을 것 같아도 내려놓고 그 리듬을 유지하려 애쓴다던데. 그 생각에 십분 동의하지만 마음대로 잘 되지 않는다. 아직 애송이인가 보다. 그럼에도 2,000자 쓰기는 아직 수월하다. 무언가 해낸 것 같은 성취감에 기분이 흐뭇하다.


그러나 진정한 문제는 그쪽이 아니었다는 것을 알았다. '꾸준히'가 해결되지도 않았는데 이번에는 '뭐를 어떻게 해야 잘하는 거야?'를 알아내라는 과제가 주어진 것이다. 나도 블로그 글 잘 안 읽는데. IT 관련 언론이나 유튜브, 인스타그램으로 정보를 얻는데. 지금 이렇게 블로그에 글을 쓰는 게 커리어에 얼마나 도움이 될까. 도움이 안 될 건 없지. 다만 IT라는 시대의 새로운 물결에 대해 떠들면서 막상 나는 그 흐름과 변화에 따라가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아 기분이 오락가락한다. 이 '2,000자 쓰기'라는 목표를 채우는 것은 지금까지 나의 삶을 반추해 보면 어렵지 않아 보인다. 진짜 문제는 뭘 어떻게 해야 잘하는 것인지 모른다는 것이었다. 


내가 좋아하는 주제, IT와 사회/역사/문화를 엮어 어떤 얘기를 할 수 있을까. 나도 마커스 브라운리처럼 자신이 정한 IT라는 테마로 리뷰어로서, 커뮤니케이터로서 성공적인 커리어를 쌓고 싶은 마음에 블로그를 시작했지만 "이게 맞나?"라는 생각에 사로잡혀 매일을 고민하는 중이다. 더욱 공부가 필요하다. 더욱 채찍이 필요하다. 역시 재능이 좀 있다고 쉽게 되는 건 없다. 열심히 정보를 뒤지고 문장을 윤색해서 블로그 글을 올리더라도 여전히 조회수는 '0'이라는 것이 이를 방증한다.


하지만 그렇게 깨닫는다. 맞아. 사람들은 글을 잘 안 읽는다. 읽더라도 인스타그램 피드처럼 짤막하고 간략히 요약되어 있는 부분만 찾아 읽지. 아니면 유튜브 영상을 본다. 그렇다면 글을 계속 써 나가는 것도 좋지만 인스타그램이나 쓰레드를 활용해 보는 건 어떨까. 그렇게 조금씩 내 크리에이터로서의 데이터가 축적해 나가면 그때 유튜브를 해 보자. 그리고 어떻게 본인의 컨텐츠를 사람들에게 알릴 수 있을지 깊게 공부를 해 봐야겠다. 그냥 좋은 걸 만들었다고 사람들은 관심을 가져주지 않잖아. 


무언가를 목표로 삼고 약속을 지키려 아등바등 대다 보면 좋은 것이, 이렇게 또 새로운 무언가를 배운다는 점이다. 현재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본성을 깊게 헤아려 보는 기회를 갖고, 어떻게 나를 드러내야 효과적이고, 효율적일까를 생각해 보게 된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을 때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이렇게 글을 쓰기로, 크리에이터가 되기로 마음먹은 순간부터 나에게 '0'이라는 조회수와, 이에 따른 깊은 깨달음을 얻는다.


지금 이런 시간마저 너무 좋다. 여태의 삶과는 다르게 무언가 앞으로 나아가고 있는 것만 같달까. 항구에 안정적으로 정박해 있던 배가 오랜만에 출항을 시작한 느낌과 비슷하다. 너무 오랜만이라 배가 잘 갈까, 정비는 잘 돼 있나 걱정이 가득이다. 파도도, 태풍도, 길을 헤매는 순간도 있겠지. 하지만 그럼에도 배는 바다 위를 유영해야 배인 것이다. 나도 그렇다. 그러니까 너무 겁먹지 말자. 어떤 방식이든 꾸준히 하다 보면 길이 보일 것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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