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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원식 Sep 03. 2018

32. 놀이맥락

모든 인간의 마음속에는 놀고 싶어 하는 아이가 숨어 있다.  In every real man a child is hidden that wants to play. 

–– Friedrich Nietzsche. German philosopher 1844-1900 


아이들끼리 하는 실외 놀이의 종류가 총싸움, 자전거, 인라인 스테이트, 축구, 야구 등으로 다양성이 줄어들면서 옛놀이들은 책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초등학생의 교과서인 ‘즐거운 생활’에는 전래놀이가 수십 종이 소개된다. 이렇게 전래놀이가 정식 교과 안에 들어가긴 했지만 교사들 중에는 이런 내용을 등한히 하는 경우가 있다. 교과로써 접근하는 교사들도 적지는 않은데, 수업이나 체험활동 등을 통해 성인들은 어린이들에게 주로 놀이를 설명해주면서 시작한다. “애들아 이런 놀이 해보자. 내가 놀이하는 방법을 가르쳐 줄게.” 그런데 성인이 가르쳐주는 놀이는 아동들에게 외면당하기 십상이다. 어른과 어린이 사이에 신뢰감(라포르)이 형성되기 힘든 경우도 있다. 이 경우에 놀이를 지도하는 작업은 그 자체가 노동을 넘어 고역이 되기도 한다. 필자 자신도 이런 낭패를 몇 년이나 당했다. 

필자가 처음에 집 앞의 아이들에게 놀이를 지도하고 가르쳐준다고 접근했을 때, 많이 좌절했다. 아이들은 놀이를 결코 배우지 않는 것이었다. 처음에는 호기심에 함께 했던 아이들도 금방 재미없다고 말하면서 자리를 떠났다. 어렸을 적에 반나절이 어떻게 지나는 지 모를 정도로 흠뻑 빠졌던 그 놀이를 왜 이 아이들이 거부하는 지 필자는 이해하지 못했다. 그렇게 헛된 노력을 1년 넘게 했다. 그 다음 해에 필자는 놀이를 가르쳐야 한다는 얼토당토 않은 사명감을 버리고 그저 집 앞에서 두 딸과 함께 딱지치기를 하고 있었다. 우리 셋은 그냥 놀이에 흠뻑 빠져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그 사이에 한 두 명씩 동네 아이들이 함께 놀자고 했고, 어느 새 토너먼트가 이루어지고 있었다. 어떻게 된 영문인지 처음 보는 아이들도 몇 명이 있었고 지나가던 성인들도 잠시 걸음을 멈추고 우리를 쳐다보고 있었다. 이 때 필자는 놀이는 가르쳐서 되는 것이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이때 놀이맥락에 대한 착상을 얻었다. 

놀이공간 특유의 신명나고 흥겨운 분위기를 놀이맥락이라고 이름할 수 있다. 맥락이란 우선 절대적인 뭔가가 중요한게 아니라 시간과 공간이 달라지면서 상대적인 가치와 의미를 가진다는 뜻이다. 어른들은 옛놀이가 즐거웠다는 기억이 우선하지만 아이들에게는 생소하거나 좀 구태의연한 활동일 수 있다. 우선 놀이규칙을 가르치고 배우는 식으로 시작하면 아이들이 실제로 놀이를 한다는 느낌을 가지기는 어렵다. 그에 반해 놀이맥락은 사람을 끌어당긴다. 예전에 골목의 놀이 선배들이 깍두기들에게 놀이규칙을 일일이 설명해 주지 않았다. 함께 재미있게 놀자고 청하지도 않았다. 자기들은 그저 놀이에 몰입해 있고 그 보다 어린 친구들은 그들이 만들어 낸 놀이맥락에 매혹되었다. 함께 놀이를 하자는 청유는 구태여 필요치 않다. 

놀이맥락을 구성하는 능력과 방식을 알아야 한다. 아이들이 어떤 놀이를 하고 싶게 끌어 당기는 분위기를 조성하는 것이 중요하다. 단 몇 사람이라도 즐겁게 놀고 있을 때 놀이맥락이 구성된다. 일단 놀이맥락이 구성된 놀이공간은 특유의 신명과 흥을 드러내면서 주변의 어린이들을 유인하게 된다. 애나 어른이나 마찬가지로 놀이에 몰입한 사람들은 특유의 분위기를 만들어낸다. 사람들의 표정과 에너지와 탄성이 복합되어 놀이공간 특유의 들뜬 분위기가 이루어진다. 정상적인 아이라면 다른 아이들이 신명나게 놀고 있는 놀이터 앞에서 발걸음을 멈추게 되어있다. 아이와 함께 놀이터 앞을 지나 다른 곳으로 가는 건 어려운 일이다. 아이는 재미있게 노는 사람들을 구경하거나 함께 있고 싶어한다. 간단히 말해서 잘 놀고 있는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을 유인한다. 놀이맥락을 조성·구성하기 만들기 위해서는 익숙하고 즐겁고 떠들썩하며 지나가던 사람들이 자유롭게 참여할 수 있는 놀이가 필요하다. 놀이생태계를 최적화하려면 놀이맥락을 생성하기 편하면서 대도시의 좁은 공간에서도 가능한 놀이 레퍼토리를 늘려야 한다. 이러한 조건에 맞는 놀이를 몇 가지만 언급하자면 딱지치기, 공기놀이, 긴줄넘기, 술래잡기류 등이 있다. 본서의 말미에 긴줄을 이용한 놀이를 몇 가지 소개하려 한다. 긴줄놀이는 가장 쉽게 그리고 두드러지게 놀이맥락을 형성하여 처음 보는 사람도 함께 놀이 공간에 삼투하기 쉬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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