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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윤수 Apr 30. 2022

조연출의 감정기복 혹은 직업윤리

졸업 일기, 4월 편

더 이상 촬영을 하러 가는 날이 긴장되지 않습니다. 짧은 수면 이후 일어나는 새벽에는 익숙해졌습니다. 첫차를 타야 하는 아침과 막차가 지나 잡히지 않는 택시를 기다리는 거리는 여전히 싫습니다. 어쩌다 보니 이런저런 현장에서 계속 조연출로 일을 하고 있습니다. 일을 할 때면 몸은 종일 예민해져 있는데 이상하게 감정은 무딘 상태로 하루를 보내게 됩니다.


화가 많았습니다. 실수는 무서웠습니다. 이런 불안이 평생 갈까 걱정도 했었습니다. 그러나 일은 결국 일이 되었습니다. 이것도 생존 본능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요. 각자의 방식으로 자신을 지키는 방법을 터득하는 듯합니다. 일과 나를 분리할 수 있게 되었고 성격을 조금씩 달리해가며 사람들 사이에서 같이 있는 일이 가능해졌습니다. 여전히 그 일이 부담이고 어렵지만 가능한 일이라는 것을 매번 겪어냅니다. 


조연출은 대체로 애매한 위치에 있습니다. 나를 못되게 구는 사람들과 직접 부딪히기도 하고 종종 내가 못되게 구는 일들도 생깁니다. 효율이라는 단어로 포장하며 폭력적인 선택을 하고 내 잘못이 아니라고 합리화하기도 합니다. 물론 선택보다 부탁을 더 많이 하곤 합니다. 이 일의 가장 힘든 일은 부탁인 거 같습니다. 부탁은 일입니다. 사실 저의 역할은 전달이지만 전달을 부탁으로 만드는 태도는 조연출의 몫이 됩니다. 내가 작아져야 하는 순간들이 많습니다. 그 순간들과 이어지는 책임 또한 다시 저의 일이 됩니다. 


죄송하다는 말을 아끼게 되었습니다. 형식적인 인사치레처럼 쓰던 죄송하다는 말도 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저를 지키는 방법 중 하나입니다. 모든 문제에 나를 탓하면 망가지는 것은 나 자신일 뿐입니다. '적당히' '그냥' '그럴 수 있지' 같은 말들을 배웠고 잘 적용하며 쓰고 있습니다. 뻔뻔하게 사람 좋은 척을 하고 표정으로 웃음을 지을 수도 있습니다. 이상한 요령들이 많이 늘었습니다. 


하루 종일 사람을 대하는 에너지를 쏟아내면 쌓이는 엔트로피가 있는 걸까요. 퇴근길에는 끔찍하게 몰려오는 감정의 혼란이 있지만 괜찮습니다. 혼자 견디는 감정은 버틸 수 있으니까요. 사람들 앞에서는 감정의 기복 없이 일을 하고 있다는 얘기일 수 있으니까요. 타인에게 감정을 꺼내 휘두르지 않는 게 어쩌면 이 일의 진정한 직업윤리라고 생각합니다. 


감정과 나를 분리한다고 해서 제가 능률적이고 대단한 사람이 되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저를 지키는 일이 꽤 자주 남을 해치는 일이 되기도 합니다. 내가 맞다고 생각하는 일이 정말 맞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저의 판단보다 더 나은 선택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죄송하다는 말을 하기 싫어서일까요. 혹은 마음이 변질되어 제 잘못을 다 인정하고 싶지 않아서 일까요. 나를 탓하지 않으려고 남을 탓하려는 마음이 얼마나 작고 못났는지 알면서도 또 못난 행동을 하곤 할까요.


이번 달은 웹드라마에서 조연출로 일을 했습니다. 마지막 촬영이 끝난 날입니다. 마음 쓰이는 일이 있었습니다. 미안하다고 말했어야 했는데 그냥 고생했다고 말했습니다. 스스로 비겁해지면서 또 어딘가로부터 도망치는 기분입니다. 죄송함과 미안함을 구분하는 건 또 다른 일인 거 같습니다. 일에서 나를 지키는 방법 중에는 왜 타인의 고통을 외면하는 것도 있을까요. 


나와 일은 분리하면서 사람과 일은 또 잘 분리하지 않습니다. 일이 끝나면 사람과의 관계도 끝나는 거라 생각을 했습니다. 이번 촬영은 분명 좋은 동료들이었고 즐거운 팀이었습니다. 그렇지만 일은 어쩔 수 없이 일이었습니다. 사람들에 대한 말이 아닌 저의 태도에 대한 말입니다. 저의 마음이 이미 그어버린 선들이 있었습니다. 분명 이 선만은 오로지 저의 몫이고 일이고 탓이며 잘못이 맞을 겁니다.


익숙해졌다고 생각한 이 일도 계속 배울 게 생깁니다. 사람을 대하는 태도가 일을 대하는 태도처럼 쉬울 수는 없는 거 같습니다. 하나하나의 일들이 끝날 때마다 내가 더 잘할 수 있을까 보다는 내가 더 좋은 사람일 수는 없었을까를 생각하게 됩니다. 잘못이 있는데도 모른 척 사는 건 아닐까 싶습니다. 저를 지킨다는 말이 어쩌면 저를 더 나쁘게 만든 중일 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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