컵 하나를 얻었습니다. 정확하게는 남편 것과 두 개입니다. 아이들 모두가 경제적 자립이 되었다는 것이 이래서 좋은 것인가 싶었습니다. 큰 아이는 카페에서 음료를 사고, 작은 아이는 도자기 상점에서 주섬주섬 챙겨든 엄마의 쇼핑목록을 많다 적다 말없이 계산합니다. -아이들이 체험한 오르골은 엄마가 계산했습니다- 그리 큰 금액은 아니어도 자신의 것을 내어준다는 것은 귀한 일입니다. 사랑은 그렇게 자신의 것을 내어주는 일로부터 시작되는 것이라는 생각입니다. 큰 아이는 집에 있으면서도 온통 사위와 톡대화를 합니다. 그러다 뭔가 안 통하면 통화를 하고, 그럴 거면 뭣하러 따로 있느냐고 걍 오라 하라고 했더니 그럴 수는 없다 하며 끝까지 자신들이 내뱉은 말에 무게를 실으려고 하는 모습이 보입니다. 어떤 것이 옳고 그르다는 판단은 유보합니다. 명절에 사위의 얼굴을 보지 못하는 우리 집이나 며느리 없는 명절을 보내는 사돈댁이나 당황스럽기는 마찬가지일 듯합니다. "그렇게 싸움이 번져 결국 명절날 각자의 본가로 향했다"라는 것은 드라마에 나오는 이야기인 줄 알았습니다. 침대 위에 아이 둘이 나란히 자고 있습니다. 전에도 가끔 있었던 일이지만 참 평화롭게 보이는 것이 오늘 아침엔 더 각별합니다.
커피를 리필하고 다시 앉았습니다. 올해로 팔십구 세가 되시는 시어머님의 생신상을 차려드렸습니다. 원래 생일은 사흘뒤지만 오늘 다시 입소하시고(치매센터) 생신날 아침 외출을 책임지겠다던 따님께서 장황하게 사정을 늘어놓으시기에 내가 해드릴 테니 걱정 말라고 말해 두었습니다. 미역국과 흰쌀밥과 반찬 몇 가지를 식탁 위에 올려드리고 센터에 가서도 밥을 많이 드시고 건강하게 계시다가 내년 생신 때도 나오시면 더 맛있는 음식을 해드리겠다고 농담을 했습니다. 자신의 나이를 거듭 확인하시면서 참 오래도 살았다고 말씀하십니다.
큰 아이 부부의 결정이 조금 마음에 듭니다. 평화롭게 잠들어 있는 모습을 보고 있으려니 참~~ 이라고 말하고도 싶어 집니다. 나의 양육의 어느 부분이 아이의 사고를 이토록 진취적이게 만들었을까요? 남편은 가끔 시대를 앞서가는 나의 발언에 당황하기도, 화를 내기도 했었지만 정작 나는 말만 했을 뿐 실천까지 옮겨 보지는 못했는데 말입니다. 아이들의 생각을 한편으로는 나무라면서 솔직한 마음 한구석엔 은근히 칭찬해주고 싶은 생각도 있습니다. 각자가 행복한 시간을 만들어 낼 줄 아는 젊은 세대의 생각들에 아! 이래서 젊음이 좋은 것이구나 하는 생각을 곁들여 봅니다. -시작이 조금 시끄러울 뿐 사는 내내 이렇게야 하겠습니까-
큰 아이가 제 스스로 엄마 아빠 품에서 연휴를 푹 쉬고 가겠다고 말한 것은 처음인 것 같습니다. 친구들 만나기에. 혹은 혼자 있는 것이 좋아서 명절 당일에 원룸으로 돌아가던 아이였는데.
책상 위를 가득 덮은 햇살이 덥게 느껴집니다. 베란다에서 겨울을 건너고 있는 식물들이 별로 싱그럽게 보이지 않는 것은 왜일까요? 11월부터 피고 지기를 반복하는 철쭉은 아직도 예쁘게 빨갛습니다. 향동백꽃 한 송이가 이제 막 발그레하게 봉우리를 열었습니다. 염좌는 남향 햇볕이 입맛에 맞는지 이제야 잎을 물들이고 있습니다. 화분의 식물들은 더러 죽기도 하고, 근근이 살아가고 있다는 생각입니다. 아직 환경에 적응하지 못할 만큼 새로 들인 것은 없는데 아마도 세심하지 못한 주인에게 반항을 하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특히 겨우겨우 살아내는 커피나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