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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딩 피플 Feb 08. 2019

변화의 색 빨강

내 이름은 빨강 - 오르한 파묵


세계의 역사 속 변곡점에는 항상 현존의 것을 지키는 자, 변화를 추구하는 자 이렇게 두 부류로 나누어진다. 좀 더 쉽게 말해 보수와 진보 이 두 부류는 항상 존재했고 그 사이에서 타협으로 변화를 이끌어 내던가 아니면 유지하던가 어쨌든 끊임없이 싸워왔다. 오랜 세월 변화의 갈등을 겪어 왔음에도 불구하고 아직 명확한 해법은 없다. 하지만 변화를 하려는 시도는 계속되고 그 변화의 바람은 어디선가에서부터 조금씩 불어오기 시작한다. 좋은 변화든 나쁜 변화든 두 부류 모두 자신들이 생각하는 소중한 가치를 어떻게든 쟁취해 내려고 한다. 이렇게 어렵게 쟁취한 과거의 변화는 현재 우리에게 너무나 익숙하고 당연한 것이어서 원래 존재했던 것 같은 착각을 갖게 한다. 그러나 '원래 존재하던 것'이라는 것은 변화를 거쳐서 지금의 형태로 남았을 뿐이다. 그리고 변화로부터 원래 존재하던 것을 지키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사람들이 있다.


다양한 변화의 역사 속에서 미술은 글 보다 오래된 기록의 매체이고 만국 공통 언어이기도 하다. 그렇기 때문에 미술에는 인종을 불문하지 않고 사람들의 의식과 문화가 깊숙이 반영되어 있다. 미술은 당시의 시민의식이 변화함에 따라 그림의 화풍이 바뀌고 종교, 문화, 역사 모든 방면의 변화를 고스란히 담는다. 정치와 경제 국가의 역사가 변화해 온 과정은 예를 들지 않아도 익히 알고 있지만, 미술 또한 역사적 변곡점에서 많은 풍파를 겪고 지금의 현대미술까지 온 것에 대해서는 잘 모르는 부분이 많을 것이다. 이 소설은 극히 일부 변화에 대한 한 예시가 된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 소설에서 말하는 변화의 바람은 '원근법'이다. 지금의 원근법은 너무나 당연한 것이라 대수롭지 않게 생각할 수 있다. 원근법은 인간 중심의 관점에서 바라본 세상을 나타낸다. 원근 법은 사물이 있는 사실의 3차원을 나타내며 가까이 있는 것은 크고 멀리 있는 것은 작게 표현한다. 하지만 이 소설의 배경인 오스만투르크 제국(터키)과 같이 종교적 신념이 국가 전체로 자리 잡고 있는 나라는 위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듯 평면적이고 투시적인 신의 영역에서 세세한 것들에 모든 의미를 담아 인간을 세상을 바라보고자 했다. 이 것은 곧 신의 숭배를 상징하며 그 외의 다른 색의 화풍과 개성은 종교적 위반이며 허용되지 않는 배척의 대상이었다. 오스만투르크 제국 궁정 화원 소속의 세밀화가들은 이슬람 문화의 중심에서 평면적이고 투시적인 종교적 의미를 담은 그림을 그려왔다. 세밀화가의 집단에는 새롭고 이질적인 것의 수용을 거부하고 이슬람의 순수성을 지켜야 한다는 근본주의가 만연해 있다. 하지만 서양의 사실적인 유럽식 화풍에 매력을 느낀 '에니시 테'라는 화가는 변화를 꾀한다. 소설은 이 둘 사이의 대립으로 인해 이슬람 전통 회화가 쇠퇴한다는 비애스러운 인식을 담고 있다. 


'내 이름은 빨강'은 세밀화가들의 정신적 정체성을 찾아가며 그 사이에서 벌어진 갈등과 번민을 그린 소설이다. 모든 등장인물에 대해 1인칭 시점으로 각자가 이야기를 하며 인물의 교차편집으로 하여금 한 편의 추리 영화를 보는 것 같다. 이 소설은 내용뿐만 아니라 기존 형식의 틀을 벗어난 새로운 변화를 준 형식의 소설이다. '내 이름은 빨강'이라는 제목이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생각되는데 빨강은 '변화'라고 생각할 수 있다. 지리적으로 동양과 서양의 사이에 있는 터키는 두 문명 간의 대립의 장소이며 터키를 대표하는 빨간색이 그 변화의 가운데에 존재하고 있다. 작가는 터키의 전통을 지키고자 하는 자와 서구 문명을 통해 변화하려는 자를 이 소설을 통해 대변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서평_나재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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