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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춤추는 곰 Apr 19. 2024

글을 쓰다.

다시 시작.

    나는 타인의 평가에서 전혀 자유롭지 않은 사람이다. 칭찬은 언제나 나를 들뜨게 하고, 몇 번의 도전 후에도 나아지지 않는 일 앞에서는 뒷걸음질치곤 했다. 글짓기는 오랫동안 나를 설레고 신나게 해 주었던 일들 중에 하나였다. 어려서는 곧 잘 글짓기로 상을 받곤 했었다. 나는 고등학생이 되어 이공계에 진학했다. 그리고 두 번 다시 글짓기 대회에 나갈 기회가 없었다. 


    언젠가 한 번쯤은 다시 긴 글을 써봐야겠다고 생각했다. 구체적으로는 소설 공모전에 한 편의 원고를 내 보는 것. 몇 개 되지 않는 살면서 꼭 한 번 해보고 싶은 일의 목록에서 그것은 밀려난 적이 없다. 이유는 모르겠다. 더 이상 내가 잘하는 일이어서도 아니고 칭찬받을 수 있는 일이어서도 아니다. 내 이야기를 하고 싶어서도 아니다. 하나씩 나열하며 속을 들여다보자니 정말 모르겠다. 을 쓴다는 것은 언제부터인가 내게는 하고 싶은 일, 해야 할 일, 할 수 있는 일 그리고 어려운 일처럼 생각되어 왔다. 글을 쓰는 시간이 꿈을 좇는 시간을 갉아먹을까 봐 걱정할 필요가 없을 때는 글을 쓰기가 쉬웠다. 지금은 직업으로 작가를 할 가능성이 없다는 생각이 눈 덮인 산처럼 틈 없이 나를 압도한다. 그래도 한 번 올라가 보고 싶은 마음은 여지없이 차갑게 미끄러진다. 


    그럼에도 나는 누구나 인생을 살면서 책으로 풀어낼 한 가지 이야기쯤은 갖게 된다고 믿으며 살고 있다. 몇 년 전에 꼭 같은 믿음을 가진 사람을 만났다. 우연히 이야기를 하다가 그 역시 기회가 되면 꼭 책을 한 권 써보고 싶다고 말하는 것을 듣게 되었다. 그는 나와 마찬가지로 글을 쓰는 것과는 전혀 무관한 일을 하며 20대를 보냈으며, 아마 지금도 타국에서 복잡한 이론들과 감정이 없는 기계들을 다루며 실험실과 사무실을 오가며 살고 있을 것이다. 그런 그가 내가 속으로 하던 생각과 같은 것을 말로 꺼내는 그 순간, 무언가 연결된 것만 같은 느낌을 받았다. 나는 그에게 매일 같이 얼굴을 마주하고 지내던 동료들에게는 단 한 번도 하지 않았던 나의 이야기를 했다. 


    결심의 힘을 내 안에서 다 찾을 수 있을 때도 있지만, 그렇지 못할 때는 힘이 될 조각들과 그 조각들이 모일 시간이 필요하다. 엄마가 가끔 재밌게 읽을 만한 것들이 있다고 말씀하곤 하시던 브런치와, 오랜 시간 가져왔던 글쓰기에 대한 미련과 설렘, 그리고 콜롬비아에서 왔다는 그와의 짧은 대화가 모였다. 


    글을 쓰게 되어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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