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미, 박완서 저, 2007, 열림원]을 읽고...
故박완서 작가님의 '호미'라는 산문집의 한 부분을 읽으며 엄마 생각이 많이 났다. 평생 농사일은 한 번도 한 적이 없으시면서 예순이 넘으신 지금 텃밭 가꾸는 일이 하루 일과의 큰 기쁨 중 하나라며 나이가 들어도 늦게 까지 하고 싶다는 엄마.
이 책에는 제목처럼 아니나 다를까 호미예찬이라는 글이 따로 있는데, 그것을 읽으면 호미를 다시 보게 된다. 작가는 값비싼 물건도 아닌 호미에 대한 글을 길게 늘어놓으며, 농사짓는 사람에게 호미란 것은 마치 글 쓰는 사람에게 좋은 만년필과 같다고 한다. 아, 그 작고 간단하게 생긴 도구가 그런 정도의 역할을. 또한 작가로 살아 농사 지어 본 경험이 없는데도 불구하고 흙을 만지고 꽃밭을 가꾸며 사는 이유가 꼭 한 번은 완벽하게 정직하게 살아보고 싶은 마음에서였다는 내용이 있는데, 그 부분을 읽으며 많은 생각을 했다. '땅은 사람을 속이지 않는다'는 말이 있는데, 완벽하게 정직한 삶 이란 것은 땅이 나를 속이지 않는 것을 넘어 내가 땅을 속이지 않는 삶이 아닐까. 아무것도 하지 않고 얻기를 바라는 마음은 통하지 않는 세상. 오직 오롯이 정직한 사람 만이 살 수 있는 세상. 속일 수 없는 땅.
흙을 만지면 지렁이는 물론이고 각종 이름 모를 벌레들을 수시로 마주쳐야 하는데 도저히 아직은 자신이 없다. 하지만 흙을 만지며 나이 드는 삶을 추구하는 마음만은 어렴풋이 알 것 같다.
그래, 책을 덮으며 하도 궁금하여 엄마께 여쭤봤다.
"엄마도 호미를 좋아하세요? 여러 개 구비하고는 용도마다 맞는 걸로 잘 다뤄가며 쓰시나요?"
그랬더니, 엄마 말씀이.
"그럼, 엄마도 호미가 4개야. 작은 것도 있고, 큰 것도 있고. 좀 뾰족한 것도 있고. 다 조금씩 쓰임새가 달라. 이 호미란게 말이야..."
조금 더 얘기했다간 여기서도 호미예찬을 들을 수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