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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잼인 Oct 26. 2024

하자 있는 인간으로 보일 거라고 지레짐작하지 말기

<꺾였는데도 그냥 사는 법> 완결

“이러저러한 회사 상황에 따른 권고사직으로 퇴사하게 되었습니다.”


라고 퇴사 사유를 묻는 면접 질문에 답했다. 감정을 섞지 않고 있는 그대로를 말했다. 이렇게 담백하게 말할 수 있게 된다니, 스스로도 놀라웠다. 만약 퇴사 직후에 면접을 봤다면, 아마 100퍼센트의 가능성으로 면접장에서 눈물을 주루룩 흘렸을 테지. 한편으로는 그동안 쉰 게 헛되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동안 설움, 분노, 자기연민, 자괴감 등 모든 부정적인 감정들을 다 느끼며 동시에 해소되기도 했나 보다.


사실은 면접을 준비하면서 퇴사 사유에 뭐라고 답해야 할지 아주 많이 고민했다. 영 답을 찾지 못하겠어서 유튜브에 “권고사직 면접"이라고 검색했고, 한 영상에서 유튜버는 권고사직엔 회사의 책임도 있고 개인의 책임도 있다고 했다. 개인의 책임을 더 풀어서 설명해 보자면, 회사 사정이 안 좋아져서 권고사직을 받았어도, 사람들 중에서도 왜 나를 대상자로 했겠냐는 논리였다. 그 영상을 보고 나는 “아"하고 탄식을 내뱉었다. 날카로운 말을 하는 유튜버에 대한 화가 아니라 실제로 나도 해봤던, 나를 괴롭히던 생각이었기 때문이다.


어쩔 수 없던 상황이었음을 머리로는 알지만, 여전히 나에게 책임을 돌리려는 마음이 자리 잡고 있었다. 상대적으로 내가 성과나 기여도가 적다고 판단한 걸까 같은 의심이 자꾸 들고 마는 것이다. 스스로 하는 의심은 그렇다 치는데, 더 큰 두려움은 따로 있었다. ‘채용 시장에서 제삼자가 보기에 하자 있는 인간으로 보이는 건 아닐까?’ 그래서 명확한 퇴사 사유가 있음에도 있는 그대로 말하기를 겁냈고, 그래서 유튜브에 검색까지 했던 거였다.


덜컥 겁을 먹어 마음이 붕 뜨는 바람에 자리에서 일어나 한참동안 집안을 뱅뱅 돌아다녔다. 그러다가 “그렇게 생각하면 끝도 없다.”고 스스로에게 잔소리를 하며 마음을 다잡고 다시 책상 앞에 앉아 면접 답변을 써 내려갔다. 그냥 그대로 말하자. 내가 이해한 그대로의, 권고사직이 불가피했던 당시 상황을 설명하는 게 최선이다. 그걸 안 좋게 보든 말든 그건 내가 어떻게 할 수 있는 영역의 일이 아니니까. 과거에 그만 얽매이자.


입을 꾹 다물고 이어서 면접 준비를 했다. 내가 그동안 어떤 방식으로 일했고, 어떤 성과를 냈고, 팀에서 어떤 존재였는지를 충분히 설명하고, 이 회사에서 내가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는지를 어필하는 것에 집중했다. 웃긴 건 오히려 차분히 경험을 정리하면서 ‘나 참 열심히 일했네. 이건 좀 잘했네~‘라며 자화자찬했고, 덕분에 좀 전에 느꼈던 두려움을 조금은 씻어낼 수 있었다.


잠시 다른 얘기로 빠지면, 그즈음 넷플릭스 <흑백요리사>가 화제였는데, 에드워드 리 셰프가 결승에서 자신의 마지막 요리를 설명했다. 면접을 앞두고 있던 나로서 그가 심사위원에게 진정성 있게 말하는 방식이 유독 눈에 들어왔는데, 이 세 가지가 배울 점이라고 생각했다. 특히 어떤 평가를 받는 입장일수록 더더욱.

- 고민한 과정을 말함으로써 상대가 내 선택의 이유를 충분히 이해하게 만드는 것

- 서툴러도 진심을 말하는 것

- 나의 간절함을 숨기지 않고 표현하는 것


배운 건 활용해야 하는 법. 이 마인드로 면접을 봤고, 덕분인지 평소보다 긴장하지 않았고 끝나고 나와서도 후회가 크게 남지 않았다. 물론 몇몇 답변엔 아쉬움이 남았지만, 그래도 나라는 사람을 충분히 소개하고 나온 것 같았다. 결과적으로 면접에 붙었고, 곧 새로운 곳에서 일을 시작한다. 기쁘지만 뛸 듯이 기쁘진 않고, ‘꺾인 곳에서 새순이 나긴 하는구나’ 하고 안도하는 마음이 더 크다. 합격 소식을 들은 날, 스스로에게 고생했다고 말해주며 아껴두었던 와인을 마셨다.



이 시리즈는 권고사직 이후 겪는 감정과 생각들을 기록하려고 시작했다. 살면서 처음 겪어보는 것들이라 당황스럽지만, 그대로 흘려보내기 싫었다. 그리고 종종 어떤 안 좋은 일이 생길 때마다 지인들과 “이거 콘텐츠로 써먹어야 해요”라고 낄낄대며 그 일을 웃음으로 승화시키곤 하는데, 나의 첫(마지막이길) 권고사직도 콘텐츠로 써먹은 셈이다. 많은 사람이 읽진 않지만, 글로 감정을 풀어내면서 응어리질뻔한 무언가가 풀리며 이 시기를 보내는 데 도움이 되기도 했다. 어쩌면 이 효과를 더 바라면서 글을 썼을지도 모른다.


애초에 이 시리즈는 다시 취업할 때까지의 이야기를 담을 생각이었으므로 여기서 마무리한다. 다시 이 시리즈를 다시 연재하게 될 일은 없길 바라며. 나와 같은 일을 겪은 누군가에게 이 기록들이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기를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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