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취향과 공간, 그리고 가능성
엄마 원래 집 잘 꾸미는 사람이야
부모님은 신혼 때 악착같이 저축해서 비교적 일찍 마련한 자가 아파트에 35년을 사셨다. 나는 그 집에서 나고 자랐다. 지금 부모님이 사시는 곳은 코로나 직전인 2019년 가을쯤에 이사 한 집이다.
이번에 오랜 기간 집에 머물 기 전, 한 두 번 정도밖에 새 집에 가본 적이 없었다. 새 집이라고는 해도 지은 지 30년 정도 된 오래된 아파트이지만 전에 살던 집보다는 더 널찍하고 깨끗하다. 아마 실 평수 차이보다 훨씬 더 널찍해 보이는 건 엄청나게 많은 물건들을 버리고 이사 왔기 때문일 것이다. 35년 묵은 때를 벗기고 왔으니 사람으로 따지면 몸의 반이 날아간 것 같은 가벼움일 듯하다.
이사가 정해지고, 예전 집을 정리하던 시기에 잠깐 한국에 있었던 적이 있었다.
"엄마 혼자는 엄두가 안 났는데 때 너 있을 때 부엌 정리 좀 해야겠다!"
이 말을 듣자마자 동생이 저만치 도망을 갔다. 동생은 엄마랑은 두 번 다시 물건 정리를 하지 않겠다며 손사래를 쳤다. 애가 왜 저러나 했는데, 그럼 내가 먼저 도와서 하겠다가 나섰다가 나도 10분도 되지 않아 후회했다. 좁은 부엌 구석구석 어디에 다 들어가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끊임없이 나오는 물건들에 압도되어서도 아니고, '버려야 할 물건' 하나하나에 대해서 엄마랑 실랑이를 해야 했기 때문이다.
아니, 누가 봐도 이 30년 넘은 찻잔들과 그릇들은 버려야 하는 것이 마땅한데, 새 집에 가면 깨끗하게 닦아서 꺼내 쓸 거라며 고집을 부리는가 하면, 좋은 말로 해서 세월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주방 기구들이며 자잘한 것들도 뭐하나 쉽게 보내주려고 하지 않았다. 권한 위임이 하나도 이루어지지 않은 정리 실무자로서 나는 정말 괴로웠다. 엄마 몰래 수거통에 넣은 것도 몇 개 있었다. 그래도 오늘 중으로 끝나지 않으리라는 것을 직감할 수 있었다.
오래된 아파트에 살 때 엄마는 "이놈의 집구석 지긋지긋하다"라는 말은 언젠가부터 달고 사셨다. 사실 엄마는 몇 번이고 이사를 가려고 시도를 했었다. 다만 그때마다 아빠의 반대에 부딪혔다. 아빠는 집 보러 온 사람에게 문을 열어주지 않은 적도 있었다고 한다.
그렇게 지긋지긋한 집구석 이제 떠나는데, 나 같으면 아주 그냥 다 버리고 가겠구먼 엄마는 왜 그렇게 못 버리는 게 많은지. 아마도 부엌 구석구석에 있던 그 물건들의 역사와 감정은 오롯이 엄마의 추억일 것이다. 가족들 아무도 모르지만, 엄마는 알고 있는 우리 집의 역사들을 엄마는 쉽게 버리지 못했던 것 같다.
예전 집에서 살 때도 내가 어렸을 적엔 엄마는 항상 집을 이쁘게 꾸미기 좋아했었다. 그러던 엄마가 어느 순간부터 집에 물건을 그냥 쌓아두기 시작한 것을 가끔 집에 내려갈 때마다 어렴풋하게 느낄 수 있었다. "집 정리 좀 해"라고 마치 집을 치우는 건 당연히 엄마 몫이라는 듯이 내가 핀잔을 줄 때면 엄마는 "이 집은 이제 쓸고 닦아도 티가 안 나. 정리하고 싶은 마음도 없다"라고 하셨다. 그때 나는 주인의 애정이 없어진 집이 얼마나 빨리 어둡게 변할 수 있는지 눈으로 볼 수 있었다.
그렇게 새 집으로 와서는 어렸을 때 엄마가 구석구석 집안을 소중이 다루던 그 느낌을 다시 느낄 수 있었다. 난 엄마가 새로 꾸민 집이 예뻐서 사진을 자주 찍었는데 그때마다 "특별할 것도 없는 집안을 뭘 그렇게 찍냐"며 뭐라고 하셨다. 그래도 난 안다. 없는 살림에도 하나하나 신경 써서 알뜰하게 골라 요리조리 배치하느라 즐겁게 고민했을 엄마의 시간과 노력들을. 뭐라고 하면서도 내가 이쁘다 이쁘다 하면 은근히 좋아하셨다. 우리가 돈이 없지 센스가 없나?
모든 물건들이 엄마의 명령하에 질서 정연히 있어야 할 곳에 있고, 깨끗하게 닦여져 있는 것 만으로 새로 이사 온 집은 반짝반짝 빛나는 것 같았다. 그리고 엄마의 소소한 감성들을 느낄 수 있는 것이 좋았다. 그 감성들이 요즘 사람들이 하는 세련된 리모델링이나 리폼에는 미치치 못하는 것이라도 모든 것들이 엄마의 스케줄에 맞춰서 각각이 최상의 시간을 만들어 내기 위해 정돈된, 하나의 잘 짜인 무대 장치들과 같았다.
사진에 있는 베란다를 꾸민 공간은 내가 한국에 있는 동안 일하기 좋아했던 곳이었다. 아침에 햇살이 너무 잘 들어와서 이마가 탄 것만 빼면 햇살이 가득 찬 공간에서 재택근무하는 것은 참으로 만족스러웠다. 이 공간도 원래는 엄마가 아침에는 식사 후에 햇살 밭으며 커피 한잔의 여유를 느끼기 위해, 저녁에는 저녁식사 전에 노을을 감상하기 위해 꾸민 곳이다. 집안 구석구석에 엄마의 로망이 묻어 있다.
겨울이 되어 더 이상 베란다에서는 추워서 일하기 어려워져 안방으로 책상을 옮겼는데 탁 트인 공간에서 일하다가 갑자기 벽을 보고 일하려니 왠지 답답한 마음이 들었었다. 그걸 눈치챈 엄마가 나 몰래 산이 내려다 보이는 듯한 벽 꾸미기 스티커와 분위기를 더해주는 스탠드 조명을 몰래 주문해서 아늑한 오피스 공간을 꾸며주었다. 사진인걸 알고 있어도 저 창문이 하나 붙어 있는 것만으로도 느낌이 확 달라졌다. 우리 엄마 센스 좀 보라지.
엄마 안에 내가 모르는 부분이 얼마나 있을까 생각하면 좋은 의미로 조금 겁이 나기도 하고, 그리고 그런 무한한 가능성들을 지금까지 몰라봐주어서 또 가끔은 모른척하거나 무시하기도 해서 미안하기도 하다. 엄마는 아마 다만 엄마의 가능성을 더 펼칠 수 있는 때와 장소를 만나지 못 한것 뿐일 수 있다.
그 지긋지긋하다는 집에 살면서도 엄마의 마음속 한 켠에는 지금 집과 같이 예쁘게 꾸민 집이 있었을 것이다. '다른 더 좋은 집에 간다면 이렇게 저렇게 예쁘게 하고 살아야지' 하는 꿈이, 그 길고 긴 시간 동안 자리하고 있었음을 이 집을 보면서 확실히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사실 지금 공간도 엄마가 꿈꾸는 공간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다. 아직도 엄마는 다른 더 멋있는 것을 다시 꿈꾸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지금까지 엄마가 나를 가능성을 키우기 위해 지난 시간 노력한 것처럼, 이제부터는 내가 엄마의 가능성들을 서포트해 줄 수 있는 제1의 지지자가 되어주기 위해서 내 역량도 더 많이 키우고 돈도 더 많이 벌어야겠다고 다짐해본다. 아, 부업이라도 해야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