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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imune Jun 18. 2022

엄마랑은 남처럼 살아야 한다

엄마와 새로 사귀기



하루 세 번은 틀어지는 사이


아침 식사를 맛나게 먹고 나자 엄마가 슬그머니 한마디 하신다.


"이불을 이렇게 다 펼쳐 놓으면 밤새 땀으로 습기 찬 이불이 마르지가 않잖니. 이불을 아래에다가 접어놔야지"


사실 맨날 침대에서 자다가 오랜만에 바닥에서 자서 등허리가 찌뿌둥한데 밥 잘 먹고 뭔가 잔소리가 시작된 듯한 시그널에 정신이 바짝 선다. 나는 내 집에서 하던 방식대로 잠자리를 정리해 놓은 건데 잔소리를 들을 줄 몰랐다. 그래도 듣고 보니 일리가 있고, 초반부터 삐걱거리고 싶지 않아서 네~하고 이불을 다시 접었다.


이런 소소한 지적을 한 2번까지는 아무런 반항 없이 고분고분 말을 듣다가도, 3번째쯤까지 오면 "아 진짜 너무하네! 그것 좀 안 하면 어때서!" 하고 싸가지없이 언성을 높인다. 그리고는 내 딴에는 2번까지 참고 분통을 터트린 거라 방에 휙 들어가서 문을 쾅 닫아버린다.


사실 생활 하나하나가 다 그랬다. 엄마의 집에는 엄마만의 주방 정리법이 있다. 또 수건을 걸어두는 장소가 정해져 있고, 샤워하고 욕실을 정리하는 "엄마 최적의 방식"이 있다. 모두 다 하나하나 엄마만의 방식이 있어서, 그걸 벗어나면 꼭 한 마디씩 들어야 했는데, 나중에 엄마 말에 의하면 그것도 한 10개 정도 참고 하나 정도 입을 댄 것이라고 했다.


누구의 보살핌도 없지만 간섭도 잔소리도 없이 17년을 넘게 살고 있는 나로서는 이게 참 스트레스였다. 나도 어디 가서 안 치우고 사는 사람이 아닌데, 이게 이렇게나 잔소리를 들어야 할 일인가! 하고 분통이 터지는 거다. 좀 더 편하고 재밌게 살아보자고 집으로 돌아온 건데, 이건 뭐 B사감이 따로 없다고 생각했다. 내가 제일 두려워하던 '잦은 다툼의 단계'로 접어들었다.


엄마는 엄마가 생각하는 '제일 좋은 방법'이 항상 있고, 나는 '그렇게 안 한다고 하늘이 무너지지 않는다'라고 반항한다. 대부분은 '거 봐라 엄마 말 들으면 자다가도 떡이 생기지'라는 결말로 끝나는 경우가 많지만, 나는 '떡은 안 생겨도 좋으니 나 좋을 대로 살고 싶다'라고 생각한다.



결국 우리는 너무 친하고 편해서 싸운다


엄마랑 나랑은 친구같이 지내는 사이다. 시시콜콜하게 얘기 안 하는 일이 없고 남자 친구 얘기도 하고 문제가 있을 때는 상의도 한다. 근데 나이가 들수록 친구같이 지내는게 문제가 되는 것 같았다. 부모 자식 간에 있을 법한 어려움이나 거리감이 거의 없는 사이라서 오히려 자주 싸우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엄마도 나도 성격이 매우 닮아서 싸우기도 많이 싸우고 풀기도 엄청 금방 풀린다. 동생은 나와는 성격이 좀 달라서, 금방 싸우고 금방 푸는 엄마와 나를 잘 이해하지 못한다. 둘 다 마음은 여린데, 감정 기복이 심하고, 감정과 말의 필터링은 거의 없이 표현하는 편이다.


문제는 싸울 때도 금방 아차 하고 후회하고 금방 화해하고 싶어 하면서도 화가 났을 때, 분노와 섭섭함을 분출함으로써 상대방의 기분을 상하게 하거나 상처 주려는 의도를 감추지 않고 내보인다는 거다. 나는 이제 만으로 36살이나 됐는데, 왜인지 아직도 엄마와의 관계에서는 집을 떠나던 19세에 머물러 있는 듯했다. 


부모는 내가 낳은 자식이니까 자식을 누구보다 더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고, 연인은 말 하지 않아도 내 맘을 다 알아주길 원한다. 하지만 그것은 사실 불가능한 일이고, 허상이라고 생각한다. 세상 누구도 내 생각과 내 마음을 다 알 수는 없고, 상대에 대해서 개뿔 모르기는 나도 마찬가지이다. 모든 걸 '말하지 않아도 알아요' 같은 건 착각이 아닌가 싶다.


친구든 연인이든 가족이든, 누구보다 가까운 사이가 남보다도 못하게 되는 때는 아마도 ' 맘도   같기를'기대하게 되는 때인  같다. 사람은 누구나 가장 친한 사이의 사람이 자기를  깊이 알아주길 바라고,  알고 있다고 생각하고 싶기 때문이다. 특히 오래 알고 지냈을수록 그런 기대가  커지기 마련이다. 다만 착각이 커지는 만큼 커뮤니케이션에 쏟는 정성떨어지는  같다.


내가 세월이 지남에 따라 변했듯 다른 변한다고 생각하면, 10년을 알고 지냈어도 그 10년만큼 상대도 변화한다. 그렇게 생각하면 가까운 사람이라도 10년과 같이 한결같은 친밀함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만날 때마다 그 사람의 달라진 부분들을 발견하고, 내가 맞춰가기 위해 노력해야 할 부분들이 항상 생기는 것 아닐까?



어떻게 하면 평화롭게 공존할 수 있을 것인가


얼마 전 도쿄에서 갔던 세미나에서 강사로 나왔던 분에게 청중 한 분이 "자녀를 키우는 데 있어서 지키고자 하는 원칙이 있는가?"라고 물었는데 남녀 두 강사 분이 공통으로 "자식을 타인으로 인식하려고 노력한다"라고 대답했다. 처음에 듣자 마자는 '정말 일본인다운 대답이군'이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듣다 보니 그게 가정 내 평화의 열쇠, 내가 이번에 엄마와 함께 지내면서 가장 의식하려고 했던 부분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엄마를 조금은 남 대하듯 대하는 것. 이것이 초반 며칠 이후에 큰 다툼 없이 (물론 아예 없지는 않았지만) 비교적 평화롭고 소소하게 사랑스러운 약 반년을 함께 보낼 수 있었던 사고방식이었다. 다만 나만 그런 것이 아니고, 엄마도 언젠가부터는 나를 그렇게 대해주려고 노력한 것을 동시에 많이 느낄 수 있었다. 우리 서로가 다르다는 걸 느끼는 만큼 조금씩 서로를 어려워할 줄 알고, 상대의 기분을 상하지 않게 살펴보고 지내면서 원만하고도 깊은 관계를 유지할 수 있었다.


나는 엄마를 '엄마'보다는 특히 한 '여자'로 보려고 노력했다. 엄마를 '여자'로 볼 수록 많은 동질감과 연민이 생겼고 엄마를 더 배려하고, 돌봐주고 싶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그리고 매일 봐도 뭔가 새로운 부분들을 발견하는 재미가 있었다. 사실 그것이 이 일기를 쓰게 된 가장 큰 계기이기도 하다. 내가 새로 발견한 엄마를 기록으로 남기고 싶었기 때문이다.


매일 새롭게 잘 지내봅시다.


서로가 알고 지낸 시간만큼 또 달라져있고, 모르는 부분이 있음을 인정하고 조심히 대하는 것. 그런 나와 다르고 내가 모르는 사람과 잘 지내기 위해서 대화를 더 깊이, 상대의 기분을 살피면서 하는 것에 노력을 아끼지 않는 것. 그게 가족이라도, 아니 매일매일 보고 가장 소중하며 가장 잘 지내고 싶은 가족이기 때문에 더 노력을 기울이는 것. 마음 한 구석에서 이 관계를 매일 새롭게 생각하는 것이 가족이 잘 지낼 수 있는 한 가지 방법이지 않을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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