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적으로 잔소리하지 않는 딸은 없다고 생각한다. 여자에게 있어서 잔소리는 일종의 "애정표현"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듣는 사람의 기분이야 어쨌든 상대가 필요로 했든 아니든, 말하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일종의 관심의 표현이다. 엄마가 그랬고 아마 외할머니도 그랬리라. ‘잔소리는 엄마가 나한테 하는 게 잔소리지’라고 생각한다면 다시 한번 생각해봤으면 좋겠다. 어쩌면 자기도 모르는 새에 엄마한테 잔소리를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엄마랑 같이 살다 보니 내가 그랬다.
나는 K-장녀의 특성과 내 특유의 이성적으로 따지기 좋아하는 성격 때문에 엄마에게 잔소리를 많이 한다. 또 최근에 읽은 책이나 유튜브, 기사 등을 바탕으로 엄마에게 "좀 더 이렇게 사는 게 좋아"하는 젠체하기 좋아하는 딸이기도 하다. 그 분야는 건강, 대인관계, 금전문제, 남자문제를 막론하고 엄마의 인생 전반에 걸쳐있다. 이렇게 말하고 보니까 엄마는 어떻게 나 같은 딸이랑 사나 싶다.
부모님에게 자식에게 왜 잔소리하냐고 물어보면 "다 너 잘되라고 하는 소리"라고 하실 텐데, 나도 마찬가지다. 엄마가 조금 더 좋고 편한 방법으로 잘 되길 바라는 마음이다. 부모님이 세월의 지혜를 기반으로 하는 잔소리라면 자식이 하는 잔소리는 최신 정보를 기반으로 하는 차이 정도일 것 같다. 우리는 최신 정보를 기반으로 세월에 따라오지 못하거나 비효율적으로 사는 것 같은 부모님에게 잔소리를 한다. 엄마, 아빠 왜 그렇게 답답하게 사시느냐고.
어렸을 때는 엄마는 세상에서 모르는 것이 없고, 엄마가 알려주는 대로 하면 모든 것이 완벽했는데 사실 그렇지 않다는 것을 중학생만 돼도 알게 된다. 그래서 사춘기 때 반항하는 걸까? 내 나이 서른이 훌쩍 넘은 지금은 가끔 엄마가 나보다 더 어린애 같이 느껴질 때가 있다. 엄마가 나한테 하는 잔소리보다 내가 엄마한테 하는 잔소리가 더 늘어나는 기분이다.
돈 아끼려고 그러는 것도 아니면서 일찍 병원에 가보면 될 증상들을 귀찮아서 그런지 조금 더 두고 본다거나, 친구나 우리한테 삐진다거나, 아빠와의 관계에서 간단한 것도 결단을 내리지 못한다거나, 쉬운 것도 엄두를 못 내고 망설인다거나 그런 모든 것들이 가끔 엄마가 점점 더 어린애 같이 진다고 생각한다. 나도 똑같으면서, 엄마가 그러면 어른스럽지 않게 느껴지고, 내가 생각하는 더 좋은 방향으로 끌고 가고 싶어서 가끔은 엄마를 다그치게 된다.
이번에 엄마와 함께 지내면서 엄마 친구관계에 대해서 아주 자세히 알게 되었는데 엄마 친구분 중에서 나는 마음에 들지 않는 분이 있었다. 매일 같이 전화가 걸려오는데 한 시간이 넘도록 거의 신세한탄을 하시고 엄마는 그걸 다 들어주고 또 조언도 해준다. 그걸 보기만 하는데도 나는 귀에서 땀이 나는 것 같고, 주로 부정적인 얘기만 하시니까 은연중에 엄마에게도 나쁜 영향을 미칠 것 같아서 걱정이 되기도 했다. 그래서 엄마에게 그런 분은 친구로 지내지 않는 게 좋지 않겠냐고 몇 번이나 말하고, 왜 그런 친구랑 사귀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화를 내기도 했다.
입장을 바꿔서 엄마가 나에게 이런 친구는 너에게 좋으니까 만나고 이런 친구는 좀 아닌 것 같다. 만나지 않는 게 좋겠다고 들으면 나는 어떻게 생각했을까? 나도 이제 다 컸는데 뭘 내 친구까지 간섭하나라고 생각하지 않았을까? 엄마가 나에게 하면 기분이 좋지 않을 것들을 나는 엄마에게 한다. 내 스스로가 평생 잔소리에 진저리를 내면서도, 역지사지란 이다지도 실천하기 어렵다.
비단 내가 엄마한테만 꼰대처럼 구는 것은 아닐 것이다. 아마도 직장에서도, 이제 나보다 좀 나이 어린 친구를 만났을 때 이런 이렇게 하는 게 좋다는 둥 라떼는 말이야라는 둥 나도 모르게 그 친구 좋으라고 하는 소리를, 하지만 꼰대 같은 소리를 하지 않았을까?
내가 알지만 지키지 못하고 있는 진리는, 아무리 맞는 말이고 옳은 소리여도 상대가 원하지 않으면 잔소리일 뿐이라는 것. 그리고 자기가 못난 부분은 누구보다 자기 자신이 가장 잘 알고 있으며 잔소리를 듣는다고 해서 그걸 고칠 수 있는 건 아니라는 것이다.
엄마가 하는 일이 요즘 세상 돌아가는 것에 비해서 좀 비효율 적이고, 이성적이지 못하면 어떤가. 더 좋은 길이 있다 한들 엄마가 마음 편한 것이 더 나을 수도 있다고 생각하려고 한다. 내가 20대에 했던 실수들을 30대에도 하고 있듯이, 엄마도 처음 사는 60대 인생에서 또 다시 실패하고, 좌절할 때도 있을 것이다. 그럴 때, 엄마가 도와달라고 할 때 힘껏 도와드리면 되지 않을까?
내 인생에서 고난과 슬픔이 뻔히 보이는 길을 선택해서 갈 때에도 엄마가 나를 자유롭게 놓아주듯이, 나도 엄마를 놓아주는 연습을 해야 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