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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imune Jun 29. 2022

나는 엄마도 갱년기를 겪는지 몰랐다


치타 여사의 갱년기

여느 날과 다름없이 엄마와 티비를 보고 있었다. 한때 정말 재밌게 봤던 응답 하라 1988!

“와 이거 정말 재밌게 봤었다 그지?”

끊임없이 수다를 떨면서 보던 나는 점점 말이 줄어들었다.


우리가 보던 에피소드는 라미란 님, 일명 치타 여사가 갱년기를 겪으면서 벌어지는 에피소드였다. 우울증을 겪고, 집안일을 줄이겠다고 가족들에게 당당히 선언하면서도 혼자 있을 때면 감정의 소용돌이에 휘말려 힘들어하는 치타 여사를 보면서 그 무뚝뚝하던 아들 둘도 엄마를 조용히 도와주게 되고, 마지막에는 깜짝 웨딩 이벤트를 열어 치타 여사의 갱년기를 함께 이겨냈다.


중간에 덕선이의 엄마인 이일화분이 갱년기를 겪었던 일을 공유하면서, 그녀 역시 힘들었지만 가족들의 지원과 도움으로 어려운 시기를 넘길 수 있었다고 얘기했다. 그리고 그걸 보는 나는 혼자 덩그러니 앉아서 생각했다. ‘우리 엄마 갱년기가 언제였지?’



우리 엄마의 갱년기는 언제 였을까

 ‘엄마도 갱년기 때 저렇게 힘들었을까?’, ‘난 왜 엄마가 갱년기 겪을 때 몰랐지? 난 저렇게 도와준 기억이 없네’ 머릿속과 마음속이 번잡해질수록 점점 입이 다물어졌다. 엄마가 나에게 엄마 지금 갱년기를 겪고 있어서 힘드니까 도와줬으면 좋겠다고 들어본 기억이 없는 것 같다.


‘엄마는 이걸 어떤 마음으로 보고 있을까? 아무것도 모르고 도와주지도 못한 우리 가족들을 아직도 섭섭하게 생각하거나 원망하는 마음이 조금은 남아 있을까?’ 이런 생각을 하면 할수록 엄마가 겪은 갱년기에 대해서 궁금해졌다. 하지만 무거워진 마음과 죄책감에 아무것도 물어볼 수가 없었다. 나의 철없고 이기적인 시기를 되돌아봐야 하기 때문일 것이다. 엄마와 함께 있을수록 이런 철없던 시간을 되돌아볼 수밖에 없는, 미안하고 후회스러운 시간들이 자주 돌아온다.


용기를 내어서 아무렇지도 않게 한 번 물어봤다.

“엄마는 갱년기 어땠어? 많이 힘들었어?”

엄마가 조금 생각하더니 대답했다.

“응. 엄마도 힘들었지. 잠도 잘 못 자고 몸도 힘들고. 좋다는 약들 챙겨 먹고 그러고 보냈지”


내 생각에 아마도 그때 나는 고등학생이었던 것 같은데, 나는 아마도 늘 그랬듯 그저 장사가 안돼서 스트레스받고 힘들어하는 줄 알았던 것 같다. 그리고 그게 마치 별일 아니라는 듯 나는 엄마의 마음을 돌볼 생각조차 못했던 것 같다.


지방 동네에서 공부 좀 한다는 딸내미가 고등학교에 들어가서 이제는 본격적으로 입시를 생각하게 되는 시기였다. 아침 7시에 학교에 가서 저녁 10시가 넘어야 야자가 끝나는 팍팍한 여고를 다니며 세상 제일 힘든 게 나라고 생각던 시절. 그런 딸에게 엄마는 행여 공부 방해가 될까 봐 말도 안 하고 혼자서 몸과 마음을 추스르고 있었을 것이다. 그런 엄마가 매일 아침 일어나 힘들게 차려주는 아침밥을 피곤해서 먹기 싫다며 신경질을 냈었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엄마가 체력이 떨어진다고 했었던 것 같기도 하고. 특히 밤에 잠을 못 잔다고 힘들어했었던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어느 것도 이 미련한 딸의 기억에는 뚜렷하게 남아있는 것이 없다.


그때도 갱년기가 어떤 건지 어렴풋하게나마 알고 있었고, 또 여자라면 누구나 겪는 것이라는 것도 알고 있었지만 그걸 우리 엄마가 겪는다는 생각을 못했다. 정말 이렇게 바보 같은 말이 있을까 싶지만 그랬던 것 같다. 지금 이 글을 쓰면서도 응? 이게 말이야 방귀야? 하고 생각하지만, 엄마의 고통을 무시하는 특성이 나만 있는 걸까? 엄마는 엄마니까, 힘든 것도 또 그걸 스스로 이겨내는 것도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나와 가장 가까운 여자, 엄마의 고통에 대해서

세상 여성의 권리 신장과 문제에 대해서는 지대한 관심을 가지면서도 정작 엄마에 대해서는 어떻게 이렇게 둔감할  있는지.  엄마일이라면 ‘엄마는 괜찮을 거야라고 막연하게 생각하는 부분들이 많은 건지 스스로도  수가 없다. 아마도 그건 그저 아직  자라지 못한 자식으로의 어리광에 불과한  같다. 그럴  없다는  알면서도 그러길 바라는 마음.


60, 70세가 돼도 인생은 처음 사는 것이고, 당연히 고난과 고민의 연속일 것이라고. 이제 30대 중반이 되어서야 어렴풋이 알 수 있게 된 것 같다. 난 아직도 어른이 되지 못한 느낌이다. 지금은 엄마가 어려운 일을 겪는 것보다 할 수만 있다면 내가 대신 겪는 편이 훨씬 낫다고 생각한다. 난 아직 젊고 어려움이 닥치더라도 해결할 수 있는 체력과 시간이 있다. 정신력은 모르겠지만, 엄마를 위해서라면 뭐라도 할 수 있을 것이다.


"엄마 난 정말 아무것도 몰랐네. 그땐 정말 미안해." 

이렇게 말하고 싶었지만, 뒤늦게야 이런 말을 하는 것이 또 미안해져서 나는 무심하게도

“그랬구나” 

하는 말 밖에 대답할 수 없었다.

사실은 그때 엄마는 어땠는지, 구체적으로 어떤 것들이 엄마를 힘들게 했고 그때 우리는 뭘 할 수 있었는지, 엄마는 그걸 혼자 어떻게 견뎌냈는지 더 깊이 알고 싶었지만 그것은 마치 나의 치부를 들여다보는 것과 같아서 더 자세히는 물어보지도 못하고 그냥 엄마 옆에 꼭 붙어서 드라마를 끝까지 봤다.


아직도 꼭 중요한 때에 무뚝뚝하게 구는 못난 딸은 이 글을 빌어서라도 그때 혼자 힘든 시기를 겪었을 엄마에게 사랑을 담아 말하고 싶다.

“엄마 사실은 그때 내가 너무 어리고 못나서 엄마가 많이 힘든지 몰랐어. 못 챙겨줘서 너무 미안해. 다만 앞으로 힘든 일이 있으면 꼭 나한테 다 말해줘야 돼 알겠지? 내가 최선을 다해서 도와줄게. 사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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