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부엌에서 보내야 했던 수많은 시간들
약 2년 만에 돌아온 집에서 맞이하는 아침은 이르지만 느긋했다.
왜냐면 엄마가 밥을 차려주시니까.
일단 깨어날 때 고요함 속에서가 아니라, 달그락 거리는 소리 속에서 일어나는 것. 일어나서 방문 밖으로 나가면 누군가가 있다는 사실 만으로도 따스한 느낌이 들었다.
게다가 이 달그락 소리는 그냥 시끄러운 소리가 아니라 저 방문 밖에서 엄마가 아침 밥상을 준비하고 있는 소리다. 집안의 품으로 돌아온 느낌이 드는 순간이다.
이 나이에 엄마가 차려주는 아침밥을 받자니 좀 염치없는 느낌도 들지만, 집밥, 엄마 밥이 먹고 싶다. 역시 다른 사람이 차려주는 밥이 최고다.
어렸을 때는 엄마가 아침을 차려주는 것이 당연하고, 설거지하는 것 까지도 당연하게 생각했었다.
아, 그때 나는 얼마나 못난 딸이었던가. 집에서 밥을 해 먹는 일은 고단한 일이다.
혼자 살아 보면 정말 숨만 쉬고 살아도 산다는 것은 정말 손이 많이 가는 일이라는 걸 알게 된다. 청소와 빨래, 갖가지 챙겨야 할 집안일이 있지만 살림의 최고봉은 요리. 청소는 내가 안 하면 누가 해주지 않기 때문에 그리고 안 하면 티가 나기 때문에 어떻게라도 하게 되지만, 끼니를 때우는 것은 내가 직접 하지 않아도 돈만 있다면 정말 수많은 선택지가 있기 때문에 '나 하나'먹고살자고 요리를 하는 것은 부지런한 자들의 몫이다.
사실 혼자 살면 밖에서 사 먹는 것과 장을 봐서 해 먹는 것이 돈으로 따지면 별로 차이가 나지 않는다. 그리고 요리에 감각이 있는 사람이 아니고서야 자주 해 먹는 메뉴 이외에는 성공확률이 낮기 때문에 어쩌면 한 껏 오른 장바구니 물가에 돈을 더 허투루 쓰는 일이 될 수도 있다.
적어도 하루 한 끼 정도는 집에서 차려먹어 보자며 밥을 하기 위해서도 장을 보고, 재료를 다듬어 요리를 하고, 다 먹고 나서는 설거지를 하는 일련의 과정을 하고 나면 어떤 때는 정말 진이 빠지는 때가 있다. 나는 혼자 사니 어차피 나만 먹는 거니까, 힘들 땐 중간 어느 과정에서 포기할 때도 있었다. 닭볶음탕이 너무 먹고 싶어서 슈퍼에 가서 장을 한 껏 봐왔는데, 장을 보고 집에 돌아오니 진이 다 빠져서 배달로 시켜먹은 적도 있다.
엄마는 아무리 혼자 장을 보고 와서 진이 빠져도 "엄마 배고파" 하는 우리들 때문에 포기할 수 없었을 것이다. 입에서 단내가 나도 오이와 감자 껍질을 벗기고, 눈물을 흘리며 양파를 채 썰었으리라.
식사를 매일 두 끼 이상 다른 메뉴로 4인의 몫을 차리는 것은 확실한 노동이다.
강주은 님의 우아한 태도와 솔직한 생각들에 매료되어 최근에 유튜브로 꽤 많은 동영상을 봤다. 주은님은 요리를 정말 잘하시는데 캐나다에서 태어나신 분이라서 서양요리는 물론 이도 한식도 정말 수준급으로 하신다. 그러다가 주은님이 차린 식사를 최민수 님이 드시는데, "주은아 이건 달라"라고 요리 지적을 하는 동영상을 본 적이 있다.
음... 브런치에다가 욕을 적을 순 없지만 내가 차린 밥도 아닌데 정말 계속 밥투정을 하는 걸 보고 있자니 분노가 끓어 올랐다. 그리고 그녀가 최민수 님의 입맛에 맞는 "진짜 한국 음식"을 만들어 내기 위해서 결혼 생활 수십 년 동안 얼마나 많은 노력과 눈물을 흘렸는지 얘기하는 것을 들었는데 내가 다 눈물이 났다.
내가 만약에 일본 남자와 결혼해서 집에서 노력해서 차린 일식 식사를 남편이 이건 "맛이 틀렸다"며 "일식이 아니다"라고 하면 나는 과연 견딜 수 있을 것인가.
사실 굳이 다른 나라 음식까지 갈 것도 없고, 같은 한국에서 나고 자라도 집집마다 요리법이 다 조금씩 다르기 때문에, 된장찌개 하나를 끓여도 맛이 다 다르다. 그래서 우리 집 입맛과 다르다며 반찬 투정을 하는 가부장적인 남성들이 얼마나 많은가(feat. 우리 아버지).
이런 사람들은 그냥 자기가 자기 입맛에 맞게 요리해서 드셔야 한다. 그게 맞다.
누구나 엄마에게 상처를 준 수많은 과거가 있다.
사랑에 투정하지 말자.
혼자 살고 나서 부모님의 은혜를 조금은 아는 인간이 되었다고 생각했었지만, 그래도 때로 엄마가 모처럼 차려주신 요리에 전에보다 맛이 별로라고 할 때도 있었다.
내가 나이가 들어가면서 입맛이 변했듯 엄마도 그랬으리라. 간을 보는 순간순간 자신을 확신할 수가 없어서 '딸내미 나와봐' 하면서 숙제를 검사 맡듯이 나를 불러 조금은 초조하게 나의 판정을 기다렸으리라.
앞으로 더 나이가 들어가면서 우리 입맛은 더 달라질 수 있고, 엄마는 예전보다 더 자신이 없어할지도 모르겠다. 내가 뭐라고 엄마의 사랑을 판정하는가. 그냥 다 맛있게 먹어야 할 지어다.
모두가 집밥을 그리워하는 시대. 집밥을 그리워하는 건 사랑을 그리워하는 거라고 생각한다. 그 수많은 노고에도 불구하고 누군가의 행복을 위해 한 상 정성스럽게 차려내는 것. 메뉴에 관계없이 그건 최고의 사랑이다.
집에서 지내는 동안 내가 가득 채워진 것의 8할은 사랑이 가득한 엄마의 집밥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 사랑을 먹을 수 있을 동안, 함께 하는 그 시간들에 감사하면서 천천히 음미하면서 먹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