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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imune Jul 13. 2022

내가 나를 사랑할 수 없을 때

엄마의 눈으로 나를 사랑하기

엄마는 스스로가 얼마나 사랑스러운 사람인지 모르는 것 같았다.


우리 엄마는 내가 어렸을 때부터 친구들 사이에서도 "귀여운 아줌마"로 통했다. 나긋나긋하고 맑은 목소리에 고운 피부, 큰 눈과 눈웃음. 그리고 밝은 표정과 애교 있는 행동까지. 중학교 때 한 친구는 내가 엄마의 반 만 닮았어도 벌써 남자 친구가 생기고도 남았을 것이라는 악담(?)을 하기까지 했다. 하지만 나도 그럴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무뚝뚝하고 못생긴 나에 비해서 엄마는 정말 밝고 예쁜 여자였기 때문이다.


비록 리즈시절보다 후광이 없어 지긴했지만 나는 여전히 엄마가 여자로서 매력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엄마의 진짜 모습을 나는 안다. 엄마는 엄마 스스로를 사랑받을 만한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엄마는 엄마를 존중해주지 않는 아빠와 아직도 헤어지지 못했고, 나이를 탓하며 새로운 좋은 인연을 만날 수 있을 것이라는 가능성도 믿지 않는다. 친구들이 자신을 어떻게 생각할지 눈치도 엄청 보고, 가까운 사람들에게 자신의 의견을 말하는데 상당히 서툴어한다. 엄마 스스로에 대해서 자신감이 없고 자존감도 낮았다. 여전히 남자들에게 "인기"는 있지만 그건 자기 스스로가 "사랑받을 만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것과는 별개의 문제인 것 같았다. 



나를 사랑하지 못하는 나


스스로를 여전히 사랑하지 못하는 엄마를 보면서, 나 역시 나 스스로를 사랑하지 못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전 남자 친구와 헤어진 후 코로나 시기까지 홀로 지내며 참 많이도 외로워하고 당장의 급한 애정에 목말라하기도 했지만 결국 남겨진 것은 더 너덜너덜해진 마음뿐이었다, 지금까지의 관계를 찬찬히 되돌아보면, 진정으로 행복한 연애를 해 본 적이 없었던 것 같다. 안정된 연애지만 성장하고 깊어져 가는 느낌이 없거나, 충분히 사랑받지 못하는 느낌에 매일매일이 전쟁 같거나. 그렇게 견디고 견디는 마음으로 한 연애가 전부였다. 남들은 결혼하고 애도 낳아 사는 나이에, 제대로 된 연애 한 번 못하고 있는 스스로를 못난 사람 취급하는 것 또 한 나 자신이었다. 그렇게 나는 자존감을 서서히 깎아 내려갔던 것 같다.


어렸을 때부터 나는 똑똑한 것으로는 이름이 오르내릴지 모르지만 매력적인 것으로는 항상 순위권 밖의 여학생이었다. 나 스스로도 내가 이쁘다고 느낀 적이 거의 없고 어른이 되면 코수술할 생각뿐이었던 것 같다. 학창 시절의 나는 여드름 투성이었고, 공부 잘하는 아이돌 빠순이였다. 내가 선택해서 그렇게 지냈다고 생각했지만 나는 이쁘고 잘생긴 학생들 근처에만 가도 자신이 없어져서 나의 세상을 아주 다른 곳으로 옮겨버린 것 뿐이었다. 때때로 멋진 사람이 나를 좋아한다고 한 적도 있지만 스스로를 이뻐하지 못 한 나는 나를 놀린다고 생각했고, 대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그 흔한 연애 한 번 하지 못했다. 


항상 사랑받기를 원하면서도 막상 사랑받으면 혼란스러워했다. 왜 나를 좋아할까? 원인이 뭘까? 하고 내가 이해할 수 있기를 원해서 상대에게 물어보기도 했다. 왜냐면 나는 내가 사랑스럽지 않다는 걸 아니까. 나를 향한 당신의 감정은 진짜 일리가 없거나, 지금은 진짜라고 생각할지 몰라도 지속될 수 없다고 생각했다. 사랑이 내 안에 들어오게 하는 것부터가 버겁기 때문에 상대를 계속 시험하거나 밀어냈다. 남자가 나를 버리기 전에 내가 버리기도 했다. 이렇게 사랑을 파괴하는 대신 나를 지킨다고 생각했지만 결국은 계속적으로 나를 파괴해가는 과정이었다.


귀엽고 사랑스러운 우리 엄마


내가 엄마를 여전히 사랑스럽게 보듯이

엄마의 눈으로 나를 사랑하자


엄마와 같이 지내지 않았으면 스스로를 사랑하지 않고 있었다는 것을 아마 깨닫지 못했을 수도 있었을 것 같다. 무엇보다 스스로를 사랑스러운 존재로 바라보지 못하는 사람을 아끼는 주변 사람이 봤을 때 얼마나 안타까운지도 몰랐을 것이다. 엄마가 내가 나를 사랑할 만한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걸 알면 얼마나 속상해 할까. 그리고, 자기 자신을 사랑하고 존중하는 일은 스스로 연습을 통해서만 가능할 뿐, 남들이 해 줄 수 없다는 것도 깨달았다. 내가 나를 사랑하는 일은, 그것이 아무리 사소한 일이라도 나 자신을 자랑스럽고 사랑스럽게 느낄 수 있는 내면의 약속을 지켜야만 가능한 것이었다.


세상에서 나를 가장 이쁘게 보는 눈이 있다면 엄마의 눈일 것이다. 내가 퉁퉁한 아줌마가 되든, 호호 할머니가 되든, 엄마는 살아있는 동안 나를 계속해서 사랑스럽게 봐줄 것이다. 물론 다이어트하라고 입은 대시겠지. 나도 엄마를 세상에서 가장 사랑스러운 눈으로 계속해서 바라볼 것이다. 엄마가 스스로를 사랑할 수 없을 때조차 나는 옆에서 그녀가 얼마나 강하고 아름다운 사람인지 계속해서 얘기해 줄 것이다. 무엇보다 그녀가 스스로를 계속 사랑할 수 있도록 계속해서 함께 방법을 찾아나갈 것이다. 


지금 혹시나 나처럼 스스로를 사랑하지 못하는 분이 있다면, "엄마라면 지금의 나를 어떻게 바라봐줄까"라고 한 번쯤 생각해봤으면 좋겠다. 조금 잔소리를 할 수도 있지만, 결국 세상에서 제일 자랑스럽고 이쁜 딸이라고 안아 주실 것이다. 내가 엄마를 사랑하는 두 배 정도로 나 스스로가 사랑할만한 존재라는 것을 잊을만하면 떠올릴 수 있도록 연습해봐야겠다. 사랑스러운 엄마의 사랑스러운 딸. 결국 그 엄마의 그 딸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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