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온갖 짐을 자동차에 욱여넣으며 실어 나르는 생고생을 하며 된통 매운맛을 제대로 느꼈음에도 불구하고 1년 동안의 속초에서 5도 2촌의 시간을 보냈던 것을 후회하지 않는 이유.
수많은 이유를 끝도 없이 댈 수 있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큰 이유를 말해보라면,
이곳에서 부릴 수 있었던 "사치"가 주는 "가치"가 너무도 달달했기 때문이다.
사람이 너무 많을 때, 혹은 날씨가 너무 안 좋아서 도저히 체험 또는 관광을 할 수 없을 때 내 날씨운을 탓하며 속상해하지 않아도 됐다. 내 차례가 언제 오나 목 빠지게 기나긴 줄 서기에 동참하며 속절없이 흐르는 시간을 아까워하지 않아도 되고 사전에 예약한 다음 일정 때문에 쫓기듯 시간을 보낼 필요도 없었다.
"다음에 또 오지 뭐" 혹은 "오늘 못 본 거 내일 다시 와서 한번 더 보자" 라며 쿨내 진동, 멋짐 폭발하는 멘트를 우리는 거침없이 내뱉고 다녔다. 돈 주고도 살 수 없는 시간. 우리에겐 항상 "내일"이 있었다. 기약 없는 "다음"과는 다른, 정말 5일 뒤에 다시 방문하면 되는 "다음"이 우리들에게는 항시 존재했던 것이다. 이 얼마나 대단한 사치인가.
다음에서 나오는 여유, 여유가 가져오는 미소, 미소가 불러오는 치유. 치유가 선물하는 기쁨. 기쁨으로 가득한 추억.
바로 이 "내일, 다음"이란 시간이 주는 사치의 달달함이 속초 1년 살이, 세컨드 하우스에서의 5도 2촌이 주는 진짜배기 마성의 매력이다. 그 헤어 나올 수 없는 매력 때문에 우리 가족은 다시금 세컨드 하우스 라이프를 즐길 기회를 호시탐탐 노리고 있는 중이다.
여유, 미소, 치유, 기쁨, 추억, 사치, 가치... 다 너무 추상적일 감흥이 별로 없다고?
힘들었고 매운맛 이야기는 구체적인데 낭만적이고 즐거웠던 이야기는 왜 이리 두리뭉실하냐고?
좋다. 이를 시작으로 이젠 속초 세컨드 하우스 매운맛 이야기 편을 종료하고 이가 몽땅 썩어버릴 것 같은 5도 2촌의 리얼하고 재미난 달콤한 맛 이야기를 곶감 빼먹듯 하나씩 풀어나가 볼까 한다.
어떤 이야기를 먼저 하면 재밌을까 고민하다 우리 가족이 속초살이를 하면서 "강원도의 스케일"이 뭔지 제대로 맛 본 그날의 이야기로 포문을 열어보겠다.
그 이야기의 첫 시작.
바야흐로 2021년 12월 24일. 크리스마스이브.
우리는 2021년 크리스마스를 속초에서 보내기로 했다.
모두가 다 알다시피 크리스마스이브에 차를 가지고 가는 일은 "미쳤냐?"라는 소리를 들을 수 있을 정도로 무모한 행동이며, 절대는 해서는 안 되는 일 중 하나라는 것엔 이견이 없을 거라 생각한다. 우리도 충분히 이를 숙지하고 있었던 지성인(?)인지라 모두가 파티를 끝내고 잠자고 있을 것 예상되는 25일 아주 이른 아침에 속초로 향하기로 계획했다.
이런 원대한 계획을 실행으로 옮기려던 크리스마스이브날 저녁.
8시 뉴스에서 기쁘지만, 걱정도 되고, 행복하지만, 마냥 웃을 수만도 없는 기사를 접할 수 있었다.
그건 바로.
24일 밤 11시 기준, 40cm가량 어마 무시하게 내린 속초의 폭설 소식이었다.
그리고 이날은 우리만 누릴 수 있는 사치가 정점을 찍은 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