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함께 장마를 볼 수도 있겠습니다」, 박준
"비 온다니 꽃지겠다"
진종일 마루에 앉아
라디오를 듣던 아버지가 오늘 처음으로 한 말이었다.
- 생활과 예보, 박준-
어쩌면 흘러지나가 사라져 버릴 상황을 기록해 아버지의 마음을 헤아린 시다. 이렇듯 박준 시인은 작은 행동과 소소한 말 한마디로 시를 만든다. 나는 어떤 이의 작은 말 하나에 이런 관심을 가진 적이 있는가. 어떤 사람의 말을 단순히 말로만 듣고 있지는 않았는지 생각해본다. 결국 중요한 건 말속에 담겨있는 그 사람의 마음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이 책을 읽을 때 만난 친구의 소소한 말 한마디를 기록해본다.
"민석아, 소고기 먹을래? 참치 먹을래?"
법인카드를 사용할 수 있어 저녁밥을 사주겠다며 나에게 선택권을 주던 친구의 말이었다.
내 글에서도 내 성격이 드러날까? 박준 시인의 시에서는 연인, (상처를 지닌) 지인, 아버지 등 상대방이 등장한다. 상대방의 입장에서 먼저 생각하고 조심스럽고 세심하게 배려하는 마음이 느껴져서 좋았다. 특히 자연 현상을 보면서 그들을 떠올리는 그를 봤을 때 대상을 사랑하는 마음이 느껴졌다. 날씨와 같은 것들은 사랑하는 사람들을 떠올리게 한다. 반대로 상대방이 시인을 사랑했던 순간들 또한 기록해놓았다. 이 시집에는 사랑하고 사랑받은 순간들이 담겨있다.
대부분 경어체를 사용하여 시의 대상에 대한, 그리고 읽는 사람에 대한 배려와 존중이 드러나 있다. 나도 브런치를 처음 쓸 때는 경어체를 사용했었다. 그때는 읽는 사람을 고려하면서 쓰는 기분이라 내 솔직한 마음을 글에 담지 못하는 느낌이었다. 아마 경어체는 읽는 사람에 대해 생각하면서 쓰는 마음이 담겨져 있는 것 같다고 얄팍하게 생각해본다.
필사를 해보라던 지인의 추천이 있었는데, 그때 당시 이 책을 읽고 있었기 때문에 시도를 한번 해봤다. 시였기 때문에 부담이 덜했던 것도 있었다. 결과는 정말 만족스러웠다. 빠르게 읽고 넘어간 시 한 편도 필사를 하면서 차근차근 문맥과 단어를 이해할 수 있었다. 시집은 빨리 읽을 수 있다는 내 생각을 완전히 뒤엎은 순간이었다. 한 달에 몇 권을 읽느냐에 몰두한 나는 원래 시집 한 권을 빨리 읽고 해치울 생각이었다. 하지만 이런 생각은 시에 대한 태도로 적절하지 않았다. 필사를 하면서 시집을 천천히 여러 번 읽게 되었다.
시 한 편을 필사를 한다고 치면, 글을 쓰며 그 상황을 머릿속으로 떠올릴 수 있는 시간적 여유가 생긴다. 또, 글을 작가와 같이 써 내려가면서 왜 이런 단어와 문장을 썼는지 조금은 알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그러다 보면 시에 있는 작가의 마음이 보이는 것 같았다. 학교 다닐 때 시험을 준비하면서 이론으로 분석했던 시가 아니라 작가의 생각이 보이는 순간이었다.
사진출처 : 류선우, 시인 박준 “좋은 시는 삶과 크게 괴리되지 않는 작품”, 시사저널, 2019년 02월 26일 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