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인의 소개로 책을 읽으면서 술을 마실 수 있는 곳을 알게 되었다. 설명을 듣고 나서 머릿속에 그려지는 낭만에 하루빨리 방문하지 않을 수 없었다. 독서와 음주,좋아하는 것을 동시에 할 수 있다는 게 정말 매력적이었다. 생각해보면 책과 술은 어울리지 못한다. 서점이나 도서관에서는 술을 팔지 않고, 술집에서는 책을 읽지 않는다. 보통 술은 다른 사람들과 같이 마시며, 집에서 혼자 마시더라도 축구나 영화를 보면서 맥주 한 캔을 마시곤 한다. 이 신선한 조합을 왜 생각하지 못했을까. 설렘을 못 이겨 슬쩍 블로그 리뷰를 봤을 때도 분위기가 정말 좋아 보였다.
먼저 술을 시켰다. 책을 읽으면서 생각나는 술을 그 글귀와 함께 나열해놓았다는 사장님의 메뉴판을 보고는 분위기가 심상치 않음을 느꼈다. 묘한 흥분감을 머금은 채 읽을거리를 골랐다. 직접 쓴 지 알 수 없었지만 작가의 말이 포스트잇에 깨알 같이 적혀있어 눈길을 끌었다. 일을 하다 진짜 하고 싶은 일을 찾기 위해 본가로 돌아갔다는 작가의 스토리에 이끌려 고민 없이 책을 집어 들고 읽기 시작했다.
그리곤 2시간 만에 완독을 했다. 원래는 이렇게 책을 빨리 읽는 편이 아니다. 핸드폰을 만지작 거리거나 멍을 때리며 딴생각을 하는 등 집중력이 부족하기도 하고, 독서를 하다 이해가 안 가면 다시 돌아가 읽는 습관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앉은자리에서 책 한 권을 다 읽는 경우는 지금까지 흔하지 않은 일이었다. 하지만 공간이 주는 집중력과 흥미로운 책의 내용이 속독을 만들었다. 물론 술기운 때문에 그랬을지 모른다. 오히려 그 덕분에 읽는 중간중간에 술집에서 작가의 살아온 삶과 생각을 들으며 이야기하고 있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더욱이 글을 읽다 보니 작가의 나이를 어느 정도 가늠할 수 있었고 나와 비슷한 세대임을 알게 되었다. 나이가 별로 차이 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일상 속에서 작은 것 하나에 깊은 생각을 가지고 글로 풀어내는 작가의 모습이 그려져서 멋있었다. 어머니의 매실청만으로도 글을 쓰는 작가를 떠올리며 나를 돌아봤다. 나는 어머니께서 사랑으로 주신 수많은 것들에서 어떤 생각을 하고 있었나.
또, 글을 쓰는 것에 대해서도 용기를 얻게 되었다. 최근에 글을 쓰는 데에 어려움을 겪었다. 일을 시작하고 나서 생각보다 더 루틴한 삶을 살게 되어 어떤 글을 써야 할지 막막했다. 특히 일상 글에서는 더 그랬다. 이 책을 읽고 나서는 볼 품 없는 소소한 일상과 사사로운 생각들에 대해 글을 쓰고 싶어 졌다.
한 가지 더 깨달은 것이 있다면, 내가 긴 글을 써야 한다는 강박에 사로 잡혀있다는 것이었다. 이 책은 76편의 길고 짧은 글들로 이루어져 있다. 이 중에는 비록 짧지만 의미가 잘 전달되고 더 강렬하게 남는 경우도 있었다. 긴 글을 써야 한다는 강박에서 벗어나 짧아도 괜찮으니 꾸준히 그리고 많이 글을 쓰면서 내 생각을 붙잡아둬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