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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ngle Sep 06. 2022

의식을 잃고 난 후


의식을 잃다


 새까만 공간에서 내 이름을 부르는 소리만 희미하게 무성했다. 정신이 들었을 땐 당황한 얼굴들이 날 내려다보고 있다. 정신이 없었다. 혼이 나갔다 돌아오는 게 이런 거구나 싶었다. 어떻게 넘어졌는지 기억이 나지 않아 무서웠다. 분명 나는 축구를 하고 있었는데? 그래서 계속 날 둘러싸고 있는 사람들에게 물어봤다. "저 어떻게 넘어졌어요?", "저 어떻게 넘어졌어요?"...


 그러던 와중에 엠뷸런스가 도착해서 날 실어갔다. 난생처음 타는 엠뷸런스였는데, 내가 정상이 아니었던지 지금 생각해보면 어색하지 않았다. 오히려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같이 동승해주신 분께서 축구하다 넘어지면서 땅에 머리를 부딪혔다고 이야기해줬다. 지금까지 축구를 하면서 많이 다치고 후회도 했지만, 이번엔 기억이 나질 않아서 후회를 할 수도 없었다. 그저 정신이 조금씩 돌아오는 것에 안심할 뿐이었다.


 그렇게 CT촬영 후 뇌진탕 진단을 받고 응급실에서 퇴원했다. 뇌출혈은 없다고 했다. 정신없는 와중에도 천운이라고 생각했다. 그 뒤로 하루 종일 잠만 자다 이틀 뒤 외래를 받고 나서 3주 동안은 아무것도 하지 말고 쉬어야 한다는 소견을 받았다. 정말 아무것도 안 했다. 그렇게 원룸 한편에 한없이 누워있으면서 깨달은 것들이 있다.



깨달은 것들


 의식을 잃어보니 무서운 게 많아졌다. 나는 내 젊음과 체력이 평생 갈 것처럼 생각했다. 그렇게 생각해서였을까 나는 나를 너무 막 대했다. 소중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내 정신과 육체를 소진시켜 무엇인가 얻으려 했던 건 아닐까. 사랑을 얻으려 노력하기도 했었고, 친구들과의 우정을 지키려고도 했었다. 내 이미지를 챙기기 위해 체력적으로 정신적으로 힘든 순간도 버텨왔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나는 다른 사람의 기쁨에서 행복감을 느꼈던 것 같다. 내 기쁨에는 무감각했다. 소비습관에서도 그랬다. 다른 사람을 위해 소비하는 것은 액수를 상관하지 않았지만, 나를 위해 속옷 한 장 사는 것도 벌벌 떨었다. 그래서 쉬는 동안 팬티를 몇 장 샀다. 비싼걸로.


 또, 날 걱정해주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내가 다친 것을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지 않았지만 그 사실을 안 사람들은 모두 나를 진심으로 걱정해주었다. 특히 가족, 입대할 때 느꼈던 감정을 오랜만에 느꼈다. 만약 내 신변에 문제가 생기면 엄마, 아빠, 누나가 이번에 나를 마주할 때 지었던 그런 표정을 짓겠구나 싶었다. 걱정과 슬픔, 안타까움, 분노, 측은함이 섞인 그 묘한 표정은 앞으로 볼 일이 없도록 해야겠다.  


 지금까지의 삶이 꽤 괜찮았던 것 같다. 현재를 살아가는 순간순간에는 그런 생각을 하기 힘들다. 주어진 일에 꽤나 노력했고, 노력하는 만큼 결과를 얻었으며, 선택한 것들이 별 탈 없이 흘러갔던 것 같다. 운이 좋은 사람일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위에서 말한 것과 같이 내 주변엔 소중한 사람들이 있었으며 미래를 위한 수많은 고민들이 있었다. 미래를 고민할 수 있다는 사실도 행복이었다.



두려움이 용기로


 두려웠다. 내가 잘못되지는 않을까 두려웠다. 후유증이 지속될까 , 기억을  할까 , 감정조절을 못할까  두려웠으며, 세세하게는 다시 일을 하지 못하게 될까 , 운동을 하지 못할까 , 술을 마시지 못할까  무서웠다.  와중에 술을 마시지 못할  같은 걱정을 했다. 어리석지만 솔직히 그랬다. 많이 아픈 와중에는 언젠가 아픈 몸을 이끌고 살아가야 하는 인간의 숙명이 증오스럽기도 했다. 나보다  아픈 이들은 어떤 마음으로 살아가고 있단 말인가. 답답했다.


 다시 생각을 고쳐먹었다. 일단 잘못되는 것은 나중 일이니 회복에 집중하자고 다짐했다. 그리고 잘 회복됐을 때는 깨달은 것들을 잊지 말자고 생각했다. 이와는 별개로 특이한 감정이 들었는데, 큰일이 날 뻔했는데 사소한 것들은 뭐든 두렵지 않다는 갑작스러운 용기가 생겼다. 사소한 걱정들이 사라졌다. 일단은 살고 보고, 일상으로 돌아가고 보자고 생각했다. 실제로 조금씩 일상에 돌아오기 시작했으며, 이 용기는 아직 유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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