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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이윤 Feb 01. 2024

웅대하고 멋진 벽돌 박물관에서 도망쳤다

꿈의 메시지

인파와 책임에 질려 식당 밖으로 나와 모퉁이를 돌았다. 거리에 우연히 아주 크고 멋진 벽돌로 만든 가파른 계단이 보였다. 처음 보는 관광 건축물이었다. 마음에 이끌려 올라가 보기로 했다. 친구와 친구의 귀엽고 정신없이 날뛰는 처음으로 목줄을 멘 강아지와 내가 2층에 도착했다.


웅대한 벽돌 건물, 성당을 닮은 박물관 안에는 클래식 오케스트라 버전 ost가 흘러나온다. 각 구역마다 사람들이 분장을 하고 캐릭터가 되어 포즈를 취하는 행위 예술과도 같았다. 너무 멋진 광경에 휩싸여 카메라를 켜고 비디오를 찍기 시작했다. 천장 위에 십자가가 있다. 한적하고 고요하다. 그들이 말하는 모든 것이 내게 전해지고 감동했다. 


왼쪽으로 사람들이 가는데 혼자 오른쪽으로 향했다. 남자 둘이 나를 보고 반겨주었다. 보통 마지막으로 이곳에 오는데 반대로 돌아 가장 먼저 여길 왔다. 스타워즈 ost가 울렸다. 감격한 내 눈을 마주친 남자가 엄청 기뻐하며 이 안으로 들어가 아이들이 준비한 전시회를 보라고 말했다. 나를 보고 자기가 느끼는 기쁨을 그 아이들도 느끼길 바란다며.


안으로 들어가자 자판대 같은 뻔하고 허접한 전시가 보인다. 그건 전시가 아닌 시장이다. 여긴 내가 원하는 것도 없고 재미도 없을 거란 걸 바로 알게 된다. 곤란해하며 발길을 돌리는 나를 보고 남자는 엄청 실망한 표정으로 어떻게 그럴 수 있냐고 아이들도 열심히 준비했다고 거의 화를 냈다.


내 스타일이 아니라 즐길 수 없다고 미안하다고 때론 그럴 수 있는 거라는 내 말에 남자는 내가 지독하게 못된 사람이라고 정말 못됐다며 비난했다. 그래도 의지를 꺽지 않고 반대편 출구로 향했다. 나가면서도 길을 잃었다.


지하 체험장이었다. 어른 한 무리를 발견하고 거기 섞이지 않으려고 도망쳤다. 권투링이 있었다. 그 무리의 중심에 엄청 강한 여전사가 있어 신나게 모두를 때려주며 그곳에서 즐기고 있었다. 여전사가 말했다. "아까 거기(내가 반한 전시) 그냥 보기만 하는 지루한 장소잖아. 뭐라도 하는 게 좋지."


도망치다 권투자들과 눈이 마주쳤고 그들은 나도 함께 싸워야 한다고 했다. 나는 때리기도 맞기도 싫다고 말하며 도망쳤다. 몰래 입구 쪽으로 도망쳤다. 


입구 쪽에 사람들이 질서 정연하게 줄지어 서있다. 바닥 화살표가 바뀌면 한 명씩 들어올 수 있었고 나가는 이는 없다. 화살표가 나타나 한 소년이 들어오려고 할 때 내가 밖으로 뛰쳐나갔다. 소년이 누가 도망쳤다고 외쳤으나 다른 이들은 보지 못한 통에 그 소년의 외침은 무시되었다.




이건 어제 꾼 꿈이다. 꿈을 꾸고 일어나자마자 꿈을 복기하며 나를 방어했다. 그다지 잘못한 거 아냐. 맘에 안 드는 전시를 억지로 참고 봐야만 했다는 거야? 그걸로 시간 낭비 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 잘못된 거 아냐. 내게도 자유가 있잖아. 좋아하는 거 취향인 거만 보고 사는 건 오히려 장려될 일잖아.


시간이 지난 오후, 밖에서 문득 이런 생각이 찾아왔다. 진실은 네가 그 박물관을 좋아했고, 그걸 발견하고 선물을 받은 듯 기뻐했단 거지. 왼쪽에 이어진 그 나머지 전시를 모두 보고 싶었어. 


아이들의 전시는 그 박물관의 일부야. 이왕 오른쪽으로 돌기 시작했고 그 반대편에 도달하고 싶었다면 아이들 전시도 존중해야 했어. 취향이 아니더라도 미숙하더라도 그것들을 바라보고 거기에 무엇이 있을지 관찰하며 시간을 보내야 했어. 그랬다면 반대편 원에 도착해서 보고 싶었던 모든 전시를 볼 수 있었을 거야. 올바른 출구를 찾을 수 있었을 거야. 그런데 나는 그들이 내 시간과 감정을 망쳐버릴까 봐 두려워 도망치고 말았지. 진짜 원하는 걸 놔두고 말이야.


한 바퀴를 돌지 못했어. 한 바퀴를 돌길 원했는데 말이야.




배우고 경험한 그리고 이룩한 소중한 보이지 않는 모호하고 본질적인 가치와 의미를 사랑한다. 누군가에게 지루하거나 고루하게 보여도 내겐 아름다운 감동과 기쁨이야. 그것을 나누며 연결되고 기쁨을 느끼기도 했지. 그러나 여전사의 말도 맞아.


행하지 않으면 공허하고 재미가 없어.


혼자만 그것들을 간직해선 원을 그릴 수 없다. 미숙하고 충분하지 않더라도 함께 해보기를 시도해야 해. 가치와 의미 본질도 중요하지만, 실천과 행동도 그에 못지않게 중요하다.


명상하며 국립중앙박물관의 반가사유의 방과 제임스 터렐의 전시회, 영화 인터스텔라를 떠올렸다. S에게도 N에게도 의미를 주고 재미를 주는 무언가, 통합과 균형으로 나아가는 길.


그런 의미로 혼자 간직하던 꿈의 일부를 여기 적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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