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첫 유럽여행 #독일 #1부 #쾰른 #베를린
세상에... 첫 유럽여행 당시에는 절대로 필자가 독일에 살게 될 줄은 몰랐다.
물론 석사를 유럽 쪽에서 하고 싶다는 생각은 막연하게 하고는 있었는데, 그게 훗날 나의 현실이 될 줄은 그때는 정말 몰랐다.
첫 유럽여행은 유럽에 대한 열망을 더 키웠고, 막연하게 무조건적으로 동경(?)하던 유럽을 겉핥기로 경험하고 보고 간 시간이었다.
(그래서 독일에서 살게 되면서 그렇게 뻔질나게 유럽 내에 여행을 다녔는지도 모른다)
누구에게나 첫 유럽여행 특히 배낭여행으로는 한번의 여행으로 많은 곳들과 여러 가지를 보고 싶어 한다.
그래서 최대한 보고 싶은 많은 것들을 다 보기 위해 약간 무리한 일정을 짜게 된다.
나의 첫 유럽여행 중 독일에서의 여행도 조금 힘들게 지나갔었다.
보고 싶은 건축가의 건축들이 곳곳에 많이 펼쳐져 있었기에 독일 안에서도 여러 도시들을 다니고 건물 안에 들어가서 답사를 하고 다니고 싶었었다.
당시에는 졸업작품으로 박물관을 생각하고 있었기에 유럽의 좋은 박물관들을 다 찾아보고 다녀보자는 식의 마음가짐이어서 박물관 위주로 건물을 보러 다니는 유럽여행이었다.
유럽엔 박물관들이 많고 확실히 한국보다는 문화생활이 일상화되어있어서 그런 건물들을 보러 다니는 걸 추천하는 바이다.
독일 서부에 쾰른(Köln)이란 도시가 있다.
나름 독일에서는 4번째로 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는 도시이다.
독일에서 가장 부유한 도시는 아니지만, 제일 부유한 주 가운데 첫 번째나 두 번째로 꼽히는 큰 도시가 바로 쾰른이다.
Nord Rhein Westfalen(NRW) 주는 과거 탄광들에서 나오는 석탄이나 지하자원들을 라인강을 통해서 유럽 전역으로 또는 독일 전역에 판매를 했었다.
그로 인해 독일에서는 가장 공장과 탄광이 많고, 또한 부가 가장 축적되어있는 주이다. (적어도 과거에는)
그리고 쾰른은 역시 맥주로 유명하다.
이것은 독일에 살게 되면서 들은 얘기지만, 독일에 사는 사람들이 흔히 말하는 최고의 2개 맥주는 하나는 바이에른 지역(남부)의 맥주고 나머지 하나가 바로 쾰른 맥주, 쾰쉬(Kölsch)라고 한다.
쾰쉬는 필자가 정말 좋아하는 독일 맥주들 중에 하나이다.
과감히 말하자면 한국인이 좋아할 만한 맛의 맥주이다. 청량감이 좋고 깔끔하고 시원한 것이 특징이다.
자칫 가볍지 않으려나 싶지만 의외의 무게감도 있으면서 정말 약간 한국스러운 맛이 있다.
쾰쉬를 마시는 것은 쾰른을 가게 된다면 반드시 해야 할 것 중에 하나라고 본다.
그리고 이곳에는 건축을 하는 사람이라면 반드시 보아야 하는 건축물이 있다.
이 박물관은 스위스의 건축가 페터 춤토르(Peter Zumthor)가 설계하여 지은 박물관이다.
영어로 읽으면 피터 줌터지만 스위스(독일어)에선 페터 춤토르라 읽는다.
(실제로 출판한 도서들에서는 저렇게 번역됨)
스위스 건축가 중에 한 명인 페터 춤토르는 2009년에 프리츠커상을 수상한 세계 최고의 건축가 중에 한 명이다.
그의 건축을 특별하게 꼭 봐야 하는 이유는 그가 로컬 건축가(Local Architect)이기 때문이다.
그는 그가 거주하는 지역 주변에서 그리고 멀어봐야 스위스 내에서 건축을 하는 건축가이다.
콜룸바 박물관은 그가 자국인 스위스가 아닌 해외에 설계한 2개의 박물관 중에 하나이다.
필자가 이렇게 페터 춤토르를 찬양(?)하는 이유는 필자가 이 분의 건축을 상당히 좋아하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서 한국인이라면 이 건축가의 건축을 좋아하는 사람이 굉장히 많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한국인의 특성상 정적이고 분위기 있는 공간을 좋아하기 때문에 많은 한국 건축학도나 건축가들도 페터 춤토르와 그의 건축을 좋아하리라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이렇게 강력히도 추천하는 바이다.
현대 건축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키워드 중 하나는 재건축이라고 생각한다.
옛것을 좋은 점들, 우수한 점들을 보존하고 옛 건축의 틀을 그대로 이용하며 새롭게 공간을 만드는 것을 재건축이라고 생각한다.
필자가 런던 편에서 테이트 모던을 좋아했던 이유도 아주 성공적인 재건축 사례이기 때문이라고 했었다.
본래 성 콜럼바(St. Columba) 교회가 있었던 곳에 폭격을 맞아 교회가 허물어진 곳이 현장이 되었다.
페터는 그곳의 폭격을 맞아 반파된 교회를 그대로 사용하고 그 교회를 감싸며 박물관을 설계한다.
페터는 설계를 할 때 항상 건물이 설계되는 그 지역의 색을 건축에 입히려고 하는 건축가이다.
스위스 내에 한 설계들을 보게 된다면 그 지역에서 나는 돌이나 목재 등 그 지역과 융화되는 방법을 어떻게든 택해서 설계를 한다.
콜룸바 박물관은 옛 느낌이 나는 회색 긴 벽돌로 부서졌던 옛 잔해들을 감싸며 설계가 들어간다.
그러면서 입면의 일부에는 벽돌을 쪼개서 틈을 만들어 완전하지 못한 느낌을 주고 약간의 부서진 느낌을 이어가도록 설계했다.
그렇게 입면을 보며 길을 따라 걸어가다 보면 입구로 가게 되는데 입구의 출입문 손잡이부터가 눈에 띈다.
아주 오래되어 산화된 듯한 고철이나 철사를 사용해서 출입문 손잡이를 만들었는데, 어찌나 느낌이 있던지...
내부에 들어가면 바로 리셉션과 코트 등의 수납공간이 있고 바로 건축가가 설계한 공간들이 준비되어 있다.
한쪽에는 작은 뜰 같은 외부공간이 있는데, 드문드문 계획적으로 배치된 앙상한 나무와 벽을 두른 작은 외부공간이 전쟁 때의 황량함을 더욱 보여주는 느낌이다.
어떤 나무를 어떤 식으로 배치할지가 특별히 엿보이는 약간 메마른 느낌의 외부공간이 펼쳐져 있다.
이런 재료의 세세한 결정이나 나무의 배치 등 건축가의 섬세함이 돋보인다.
외부에 휴식공간을 지나면 큰 문과 두꺼운 커튼을 통과하여 나오는 공간이 있다.
콜룸바 박물관의 메인 공간이라고 할 수 있는 곳이다.
그곳은 교회의 폐허를 그대로 두고 그 사이로 사람이 지나갈 수 있게 목재 길을 깔아서 폐허를 통과하게 만든다.
약 2층 높이의 층고를 기둥들이 받치며 밖에서 보던 벽의 틈들로 빛이 흘러들어온다.
약간 거룩한 느낌이 들면서도 정작 폭격을 맞은 교회의 상태는 처참하기에 복합적인 느낌이 드는 공간이다.
굳이 표현하자면 전쟁터에서 병자들을 치료하는 성녀 같은 느낌이랄까?
어두운 공간 안에서 빛이 잘게 부서지며 들어오는 공간의 분위기는 설명하기가 힘들다.
페터는 이와 같이 빛과 어둠을 예술적으로 다루어 공간의 분위기를 건축하는데 탁월한 건축가이다.
제대로 된 전시공간은 2충부터 시작을 하는데, 2층과 3층에 16개의 전시실이 있다.
페터는 이 전시공간들에 딱히 등을 설계하지 않았다.
각 실마다 큰 창을 설치하여 자연광을 실내로 자연스럽게 불러들인다.
그렇게 단순하게 불러들인 자연광들을 실크 커튼으로 조절하며 분위기를 조성해 나간다.
각 실의 깊은 공간까지는 외부의 빛이 제대로 들어오지 못해 어두운 공간이 생기기도 하지만 페터는 그걸 그대로 놔둔다.
자연스럽게 들어온 빛은 음영을 만들며 내부 공간의 분위기를 더 잡아간다.
창에 근접해있는 곳은 밝지만 깊은 안쪽은 자연스럽게 어두워진다.
빛과 빛이 만들어내는 그림자 그리고 빛을 통해 생기는 음영(Gradation)의 향연이 전시실 내부의 공간을 지배한다.
자연의 모든 것에는 흐름이란 게 존재한다.
강한 곳이 있다면 자연스럽게 약한 곳도 있고, 높은 곳이 있다면 낮은 곳도 있듯이 자연스러운 것이란 것은 흐름이란 것이 있다.
자연의 흐름을 제대로 느낄 수 있는 박물관이 바로 이 페터 춤토르의 콜룸바 박물관이다.
사람들도 자연의 일부이기에 흐르는 흐름에 익숙하다.
바로 10에서 1로 변하는 것은 자연스럽지 못하고 흐름이란 게 없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자연스럽게 흘러 들어가는 것이다.
버퍼 존(Buffer zone)이 중요한 이유가 그것이다.
강한 빛을 완충시키는 공간을 만들기 위해 실크 커튼을 사용한다.
단순히 분위기를 조성하기 위해서나 고급스러운 연출을 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모든 흐름엔 완충이 있어야 사람이 받아들이는데 수월하고 훨씬 조화를 이루기 마련이다.
3층에 가면 다시 관람객들을 위해 앉아서 쉴 수 있는 공간을 설계되어 있다.
보통의 박물관들과 같이 흰색의 벽들에 둘러싸여 전시를 즐기다가 사람들은 저 공간 안에서 반전을 느낀다.
자연광만으로 빛을 가져다 쓴 효과가 빛을 발한다.
약간 어둡고 눅눅한 분위기의 통로와 길들을 걷다가 사람들은 빛이 들어오는 고급스러운 분위기의 공간으로 발을 들여놓게 된다.
어두운 흰색 위주의 벽을 따라 걷다가 질감이 다른 빛이 들어오는 약간 어두운 나무 재질의 방에 들어갔을 때의 반전이란...
내부는 비슷한 톤의 가죽 재질의 가구들이 놓여있고 책들과 함께 쉴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한다.
역시나 실크 커튼이 빛을 중화시키어 은은함을 연출한다.
모든 사진은 빛빨이다 라는 유명한 말이 있다.
이곳의 모든 사진은 한 장면 한 장면이 예술적으로 그리고 분위기 있게 나온다.
빛을 가지고 노는 페터의 능력이 한껏 드러나는 건축물이다.
필자의 최고로 애정 하는 유럽의 박물관 탑 3 안에 들어가는 곳인 이유이다.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독일의 수도를 뮌헨이라고 말하고 다니는 것을 보았다.
정말 바보 같다는 생각이 들지만 그러한 사람이 TV에서 방송을 하고 있는 똑똑한 아나운서가 그랬었다는 것을 보면서 새삼 뮌헨이 큰 도시긴 하지라고 생각을 한다.
베를린은 상당히 큰 도시이다.
유럽의 수도들을 다니다 보면 생각보다 도시가 크지 않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한국을 살았던 한국인들에겐 서울만큼의 크기를 상상하고 가겠지만 웬만한 수도들은 서울에 비교해서는 너무나도 작다.
그러나 베를린은 유럽의 웬만한 수도들에 비해서는 상당히 큰 도시이다.
도보만으로 모든 관광지를 돌아다니기에는 상당히 크기가 크기에 열차를 타고 다닐 수밖에 없다.
베를린에서는 이것저것 볼 만한 것들이 사방팔방에 흩어져있다.
건축가의 입장에서 유명한 건축가들의 건축을 쫓아다니기에는 너무 도시가 광범위하다.
독일은 제2차 세계대전 시절에 유럽에 있는 모든 유대인들을 잡아 죽이고 고문하고 강제 노동을 시켰던 전범국가이다.
필자가 아는 어떤 전범국가와는 다르게 잘못을 인정하고 그에 대한 책임과 미안함을 정치적으로 그래도 잘 드러내고 자신의 국가가 잘못한 역사를 잊지 않기 위해 많은 일들을 하는 좋은 예이다.
그 예로 전쟁이 끝나고 빌리 브란트 총리가 폴란드에 가서 무릎을 꿇은 사건은 매우 유명하다.
그 후로도 물론 현 독일 총리인 앙겔라 메르켈도 다하우 수용소 해방 70주년 기념식에서 과거사에 대한 반성의 연설을 했다고 한다.
어쨌건 독일은 과거부터 지금까지 반성해야 할 과거에 대한 다분야의 활동들을 한다.
그중의 하나가 학살당한 유럽 유대인들을 위한 추모공원이다.
피터 아이젠만(Peter Eisenman)은 미국계 유대인 부모에게서 태어난 유대인 미국인이다.
그는 경사진 대지 위에 2700개가량의 콘크리트 덩어리들을 다른 높낮이로 설계한다.
그는 쉽지 않고 불안정한 분위기와 동선을 설계하고 싶어 저런 식의 추모공원을 설계하게 된다.
딱 봐도 억울하게 학살당한 유대인들의 아픔과 고통이 느껴지는 무표정의 공원이다.
사람들은 달라지는 높이의 공원을 걸어 다니며, 콘크리트 덩어리들 사이를 걸어 다니며 많은 것들을 생각하게 된다.
지하에는 간단한 정보를 제공하는 정보센터(Information Centre)가 있고 간단하게 관람할 수 있는 전시가 있다고 한다.
다니엘 리벤스키(Daniel Libeskind)는 폴란드계 미국인이다.
그는 유대인 학살의 생존자인 폴란드 유대인 부모 사이에서 태어났다.
태어나고 자라면서부터 자신들이 겪었던 잔인하고 고통스러웠던 유대인 학살의 현장을 듣고 배우며 자란 다니엘은 건축을 배우게 된다.
그는 해체주의에 속하는 비정형적인 건축물들을 설계하며 자신이 갖고 있는 아픔을 자신을 건축을 통해 풀어내기 시작한다.
지금까지는 임페리얼 전쟁기념관, 유대인 박물관, 911 테러 추모 마스터플랜 등의 많은 전쟁과 아픔이 있는 자리에 그의 건축이 들어서게 되는데, 그 모든 것들의 시초가 되는 세계적인 건축이 바로 베를린에 설계한 유대인 박물관이다.
기존에 있던 건물에 추가적으로 설계를 한 사람이 다니엘 리벤스키다.
구관에는 박물관 도서실과 뮤지엄샵, 레스토랑, 카페 등 간단한 휴게공간들이 있고 실제적인 전시는 구관에서 지하를 통해 신관으로 넘어가면서 시작된다.
그의 설명으로는 베를린 박물관은 독일에서의 유대인의 삶을 3가지 '축'을 따라 건축을 보길 바란다고 한다.
첫 번째 축은 유대인들의 독일에서의 삶에서부터 이주를 가는 그들의 삶.
두 번째 축은 건축가가 설계한 추방의 정원으로 이끈다.
앞서 말했던 유대인 학살 추모 공원이 설계되기 전에 다니엘은 49개의 콘크리트 기둥들을 좁게 설계하고 그 위에 나무들을 심어두었다.
추모공원에서 보다 훨씬 더 좁은 틈을 따라 어깨를 움츠리고 걸어 다닐 수밖에 없고 더 높은기둥들 사이에 위축된 채 걸음을 걸어 다니며 유대인 추방을 설명하고자 한 건축가의 의도를 느꼈다.
유대인 학살 추모공원의 콘크리트 기둥들 보다 더 촘촘하고 얇으며 간격이 좁아 더 위압감이 들며 긴장감을 유발하는 공간이었다.
마지막 세 번째 축은 박물관에서 유대인 학살 탑까지 이어진다.
유대인 학살 탑은 그저 순수한 콘크리트로 만든 곡식을 저장하는 탑 같은데 어떠한 냉난방이 없이 그저 높은 천창에서 들어오는 희미한 빛만이 들어온다.
다니엘 리벤스키는 그 탑 안에서 유대인들이 학살을 당한 기분을 느껴보길 바라는 것 같았다.
전시 공간은 지하통로에서 꼭대기층으로 올라간 후에 층을 내려오면서 전시를 관람하는 동선을 사용하였다.
본래 건축가들의 박물관 관람은 흥미가 있는 분야의 전시가 아닌 이상은 거의 박물관의 시퀀스나 디테일, 더 나아가서는 특별한 공간과 같은 그러한 것들을 주로 보게 된다.
사실 전시의 내용은 예상대로 유대인들의 독일에서의 역사를 보여주는 평범한 전시였다.
당연히 필자의 관심을 끈 것들은 다른 것들이었다.
우선 본 전시공간의 시작이라고 볼 수 있는 상층부로 올라가는 계단실부터가 관심을 한눈에 끌었다.
꼭대기 층까지 올라가기 위해 반드시 거쳐야 하는 계단실은 건물의 하중을 받치는 두꺼운 기둥들이 관통(!)하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기둥의 기본적인 건축적 용도라는 것을 말하자면 건물의 하중을 견뎌주고 각 층의 무게를 지탱해주는 게 그 역할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다니엘 리벤스키는 기둥은 그 이상의 것을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구조적으로 봤을 때는 물론 내벽이 하중을 견뎌주는 역할을 하지만 기둥들이 작가의 의도나 공간에 분위기를 연출하는데도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제일 높은 층에서 수평으로 난 창을 통해 들어오는 빛은 아래에서 위를 봤을 때엔 몇몇 기둥들이 바늘처럼 꼽혀있다는 느낌을 들게 해준다.
그러나 위층에서 뒤를 돌아보았을 때에는 아래층에선 볼 수 없었던 많은 기둥들이 마치 석궁이 성벽을 뚫고 박힌 느낌처럼 중구 남방으로 박혀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기능을 위한 기둥과 단순한 장식적인 느낌을 위한 기둥을 넘어서 공간의 연출을 위한 기둥을 다니엘 리벤스키는 보여준다.
그렇게 계단실을 통과하여 전시 공간을 돌아다니다 보면 외벽에서 볼 수 있었던 갈기갈기 긁히고 상처받은 듯한 창들은 박물관의 전시공간 내로 침투해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외부의 입면에서의 창은 건물의 얼굴을 나타내지만 내부에서의 창은 건물의 공간 안의 성격을 보여준다.
외부에서의 얼굴(창)이 내부 공간의 성격에 관여를 하는 셈이다.
내부의 전시 공간에서는 기본적인 전시의 흐름에 따라 내용들이 흘러가지만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외부의 거칠게 찢긴 느낌의 창들이 공간으로 침투하는 느낌을 준다.
전시의 내용을 보는 관람객들은 창의 형태에 따라 전시를 관람하는 공간에서 느끼게 되는 기분이 달라진다.
이 박물관의 마지막은 다니엘 리벤스키가 직접 설계한 전시를 볼 수 있다.
유대인 박물관의 하이라이트이자 정점이라고 할 수 있는 이 전시는 기억의 공간 또는 공허(Memory Void)라고 불린다.
건물의 설계를 맡은 다니엘은 의도해서 인지 설계를 다 마치고 남는 공간이 있어서인지 마지막에 저러한 전시를 계획하게 된다.
노출 콘크리트로 둘러싸인 아주 천장이 높은 공간에 천창을 통해 빛이 흘러내리고 공간은 침묵한다.
그러나 내부를 걷게 되면 발아래에 쌓여있는 사람 얼굴 형태의 철 설치물들이 밟히며 까랑까랑 소리를 내게 된다.
사람의 표정과 같은 형태의 철 전시물들이 밟히며 소리를 내서 인지 더욱 슬프게 느껴지고 아프게 느껴진다.
이곳을 걸으며 사람들은 건축가의 설계대로 다시 한번 유럽의 유대인들이 당했던 아픔을 되새기며 박물관을 뜨게 된다.
유대인 학살 박물관의 전시는 이렇게 마무리가 된다.
마지막은 시각적일 뿐만 아니라 청각적이고 촉각적으로 깊은 울림을 주는 전시로 끝을 냈다.
자신들의 부끄러운 역사 앞에 감추거나 회피하려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정면에서 당당하게 받아들이려는 모습을 보며 다시한번 독일에 감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