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네 번째 ©Myeongjae Lee
BX8027, A320-200
08:05, 탑승구 13, 좌석 27F
뒤늦게 추석연휴 항공권을 구하다 보니, 토요일 17:40 비행기가 최선이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연휴 전전날 수많은 새로고침 끝에 아침 08:05 항공권을 구매할 수 있었다. 식구들과 보낼 수 있는 시간을 자그마치 아홉 시간 반이나 벌었다. 기뻤다.
코로나 이후 하늘길이 다시 열리면서 제주를 오가는 항공편 수가 많이 줄어든 느낌이다. 가격도 많이 올랐다. 정말 급한 일이 있을 때 자리가 없어서, 혹은 기상 악화로 인해 오도 가도 못하는 상황이 발생하면 어쩌나 하는 불안이 늘 마음 한구석에 자리 잡고 있다. 섬이기 때문에 거스르기 어려운, 체념하고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일종의 숙명 같은 것이겠지만. 그래서 가끔은 육지와 연결되는 해저지하터널이 생기면 좋겠다는 생각도 해본다.
서로 속속들이 이해하고 진심으로 아끼는 동료와 작별하는 일은 정말로 고통스럽다.(p.124)
<존재의 박물관>(스벤 슈틸리히, 김희상 옮김, 청미, 2022)
최근 2주 동안 옛 동료들과 업무상 만나게 되는 일이 유난히 많았다.
회사를 떠나지 않았다면 내가 그들을 참 많이 아끼고 좋아했었다는 사실을 몰랐을 것 같다. 과거는 늘 미화된다고 하지만, 1년이 지나도 여전히 아픈 것을 보면, 그들과 함께 한 지난 세월이 미화된 과거인 것만은 아닌 듯싶다. 어쩌면, 그 때문에 아직도 일종의 일자리 생존자 증후군(Workspace Survivor Syndrome) 비슷한 무언가를 앓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아내와는 여전히 손을 잡고 다닌다. '마흔이 넘어 보이는 남녀가 손을 잡고 다니는 경우, 부부가 아닐 확률이 높다'는 말을 종종 듣곤 한다. 예전에 아내와 손잡고 걷는 것을 본 회사 후배가, "아니, 아직도?"라며 기이하다는 표정을 보인 적도 있다. 연애하면서 손을 잡고 다닐 때의 그 달콤하고 알싸한 느낌과는 또 다른 느낌이지만, 따뜻하고 포근하고 애틋한 감정이 더해졌다고 할까, 손을 잡고 걷는 그 느낌이 여전히 참 좋다.
이튿날. 손잡고 산책하며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농담반진담반 "오늘부터 롱디 1일"을 하기로 했다. 훗날 이 시간들을 되돌아봤을 때 아름다운 기억의 파편들도 많이 남을 수 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