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다섯 번째 ©Myeongjae Lee
LJ502, B737-900 / 위 사진 우측 첫 번째 항공기
08:20, 탑승구(기억 안 남. 탑승구 결정되기 전 모바일 항공권 발급), 좌석 43A
얼마나 길게 머물러야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이런 헛헛한 감정이 느껴지지 않을까. 한 달을 지내고 온다 하더라도 "그래도 짧다."는 느낌이 쉬이 지워지지는 않을 듯싶다. 시간이 약이라고. 일정량의 시간이 지나고 나면 마음이 조금은 가벼워질 수 있는 것인지, 아니면 이런 데는 약도 없는 것인지 모르겠다.
결국 내 선택이기는 하지만, 가끔씩은, 아이들의 하루하루를 보지 못하고 이렇게 지내는 상황에 속이 부글부글 끓는다. 그래도 나름 견딜만한 힘이 소진되지 않도록 해주고, 아이들과 서먹해지는 속도를 늦춰주는 것은 과거 2년 간의 육아휴직, 그때 축적해 둔 관계의 에너지 덕분이 아닐까 싶다. 지금 생각해 보면, 10여 년 전 당시에는 굉장히 무모한 결정이었지만, 지극히 개인적인 차원에서는, 좋은 선택이었던 것 같다.
아무튼, 너무 더웠다. 대부분의 시간을 집에서 보냈다. 신문기사를 보니 지난 9월 12일은 35.1도, 100년도 더 된 제주 기상 관측 역사상 가장 더운 9월 기온이었다고 한다. 기후 온난화로 인해 이 사랑스러운 섬이 점점 작아지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다.
이 공간을 빌어 9.17.(화) 09:40 김포공항 국내선 2층 아시아나항공 안내데스크(Asiana Club)에서 마일리지 항공권 구매를 도와주신 남성 직원 분께 진심으로 감사를 전한다.
올해 초부터 몇 차례, 아이들 각각 "2,546마일이 12월 31일 자로 소멸된다."는 안내를 받았다. 스마트폰 앱으로 마일리지 항공권 구매를 몇 번 시도했지만, 원활하지 않았다. 내가 현재 보유하고 있는 마일리지가 5,000 이상인 데다(우선 사용), 한 번에 두 명으로부터 2,500마일씩 가져와 합쳐서 사용하는 것이 시스템 상 녹록지 않은 것 같았다. 그래도 편도 1회 비행이 가능한 소중한 마일리지를 날리기가 아까워 착륙 후 안내데스크로 향했다.
40여 분 간의 작업 끝에 결국, 소멸예정 마일리지를 포함해 아이들 마일리지를 각각 5,000씩 사용해 2개의 편도 티켓을 구매하는 것으로 마무리되었다. 장시간 동안 직원 분은 마일리지 항공권 구매가 가능한 일정과 방식 등을 이렇게 저렇게 확인해 주시며 친절하게 해결책을 찾아주셨다. 다른 날도 아닌 추석 당일에 근무하면서 끊임없는 승객들의 민원을 응대해야 하는 고된 상황이라, 나도 진상 고객이 되지 않기 위해 진심으로 애를 썼다.
아내의 말마따나, 타인과의 이런 작은 접촉과 호의가 고단한 일상에 한줄기 시원한 바람이 되는 것 같다.
고마웠다.
일요일 저녁노을은 붉고 아름다웠다.
러시아어에서 형용사 '붉은(красный, 끄라스늬)'은 '아름다운(красивый, 끄라시븨)'이라는 의미도, 좀 더 넓게는 '성스러운(святой, 스뱌또이)'이라는 의미도 갖고 있다. 고대 동슬라브인들이 드넓은 평원에서 아침 혹은 저녁노을을 보며 이 단어가 만들어진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본다.
벌써 그립다.
식구들이 그립기도 하고, 제주가 그립기도 하고, 이제는 제주와 가족이 하나가 되어 통으로 그리움의 대상이 되어버린 것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