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벤 슈틸리히 지음 / 김희상 옮김 / 청미출판사 / 2022
장소, 사람 또는 세상을 떠날 때
우리가 남기는 것은
다소 억지스럽다는 것을 스스로도 잘 알지만,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를 주제로 하는 <책방2036>에서는 이렇게 그 두 나라와 관련된 언급이 한 줄이라도 있는 책으로만 큐레이팅된 서가도 하나 마련하고 싶다.
- 제목에 보란 듯이 '러시아'와 '우크라이나'가 박혀 있는 책 세션
- 누가 봐도 주제가 두 나라와 관련된 책 세션
- 한 두 챕터에서 '러시아'나 '우크라이나'를 중점적으로 다루고 있는 책 세션
- <자연의 악_천연자원의 문화사>처럼 서술하다 보니 결국 책 전체를 관통하며 두 나라가 언급되는 책 세션
- <코스모스>의 저자 칼 세이건(뉴욕 출생, 우크라이나에서 이민 온 부모)과 같은 작가의 책 세션
- <존재의 박물관>에서처럼 예시 정도로라도 (의미가 있다면) '러시아'나 '우크라이나'가 언급되는 책 세션
pp.110-111 에리히 호네커는 자신과 아내 마르고트에게 중요한 물건을 담은 가방 두 개를 사람을 시켜 모스크바로 보냈다. 그가 그동안 동독에서 어떤 삶을 살았고 무슨 일을 했는지 증명하는 이런 물건들은 동독에 남아야 마땅했다.... 이 두 가방은 어찌 된 일인지 모스크바에 도착하지 않았다. 바로 그래서 우리는 오늘날 호네커 가족이 무엇이 없어져도 아쉽지 않았으며, 어떤 것은 꼭 간직하려 했는지 그 답을 안다.
pp.130-131 1986년 4월 26일 체르노빌 원자력 발전소의 4번 블록 원자로가 폭발했을 때 그곳에서 가까운 우크라이나 도시 프리피야트(Pripyat)의 주민들은 곧 벌어질 5월 1일의 축제 준비에 들떠 있었다. 주민은 사고가 난 것을 며칠 뒤에서야 알았다.
pp.350-351 죽음으로 영원히 이름을 남기는 사람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발레리 일리치 초뎀추크는 체르노빌의 첫 번째 희생자다. 오늘날 그곳에 있는 기념비 하나가 그의 이름을 상기시킨다. "그들은 자신의 자리를 버리지 않고 / 지옥의 불 속에서 용감하게 맞섰네. / 이들을 기리는 기념비는 모든 사람의 심장에 세워져야만 하리."
작가는 '이야기를 풀기에 앞서', "우리는 알지 못하는 사이에 찾아갔던 장소에, 다른 사람의 머릿속에, 세상에 흔적을 남긴다"라고 하며 "이 책은 일상에 좀 더 주의를 기울이자는 호소다"라는 말로 책을 연다.
기억의 문제(남겨지고 싶고 기억되고 싶은 욕망도 포함해서), 정체성의 문제, 삶과 죽음의 문제까지도 담담하게 다루며 서술해 간다. 그리고 그 해답을 형이상학적이거나 철학적인, 고차원적인 무언가에서가 아닌 평범한 장소, 일상적인 기억, 소소한 물건 등에서 찾아낸다. 그러면서 인생에서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 이 세상을 떠날 때 무엇을, 그리고 누구에게 남겨야 할지에 대한 질문을 던지는 책으로 읽혔다.
p.224 "기억은 우리 인생과 정체성의 토대를 이룬다. 우리가 무엇을 체험했는지, 이 체험을 바탕으로 우리가 미래에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정해주는 것은 기억이다." (심리학자 줄리아 쇼의 말)
p.20 평범함이란 없다. 이 책이 말하고자 하는 핵심이다. 어떤 것도 항상 있지 않으며, 영원히 남지 않는다. 우리도, 이것도, 저것도. 우리 주변의 모든 것은 생명의 표시를 담았다. 장소와 인간과 세상에서 이런 표시를 읽을 수 있다면 얼마나 아름다울까.
17,000원이 정가인 <존재의 박물관>을 온라인서점에서 11,150원에 구매했다. 무려 5,850원이나 할인을 받았다. 온라인 서점에서 한 달에 한 권은 10% 기본할인에, 최소 2,000원까지 적립금을 받아 구매할 수 있다. 소비자 입장에서는 이보다 고마운 일이 없다. 나 역시 결제를 하면서 기분이 많이 좋았다. 하지만, 미래의 책방 운영자 입장에서 생각해 보니 여러모로 아찔한 혜택인 것 같다. 대형서점도, 온라인서점도, 중형서점도, 동네책방도 다 같이 상생, 공생할 수 있는 구조와 제도가 만들어지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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