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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J Lee Oct 31. 2024

소전서림素磚書林

2024.10.09. / 서울 강남구 청담동 131-8


오전 09시 59분, 오픈 직전 QR코드를 찍고 입장했다.

처음 만나는 지하의 아늑한 공간. 거의 첫 손님이라 이용자들은 소수였지만, 너무 고요해서 핸드폰 카메라 셔터 소리가 쩌렁쩌렁 울릴 것만 같아 차마 내부 공간은 찍을 수가 없었다.


물론, 한편으로는 이렇게까지 할 일인가 싶기도 했다.

자동차로 1시간 5분, 편도 60km, 왕복 유류비와 통행료가 각각 약 13,000원, 약 12,000원, 발레파킹 5,000원. 벌써 몇 년 전부터 한 번 가봐야지 했는데, 벼르고 별러서 이제야 와보게 된 이유가 이렇게 없지만은 않다. 육지에 머무는 주말에 몸도 좀 움직이고 차도 한 번씩 고속으로 달려주고, 틈틈이 본가에도 들러야겠다 싶어 연간 이용권을 구입했다. 100,000원. 1년 동안 매일 3시간씩 이용이 가능하다. 어떤 블로그 후기 글처럼 "비싸긴 하지만 가치 있는 소비"라 생각하기로 했다. 그렇게 될 수 있을 것 같았다.


고요하고 차분했다.

지하 공간이라서 그런지, 이따금씩 들려오는 기계식 주차장의 소음을 제외하고는 외부소음이 거의 차단된 듯했다. 사찰에 온 듯, 은은한 향 냄새가 조심조심 떠다녔다. 비용 부담이 있는 프라이빗한 도서관이라 나이가 지긋한 중년의 어르신들이 많을 것 같았는데, 생각과는 반대로 젊은 사람들이 많았다. 집이나 회사가 가까워 루틴처럼 매일 1~2시간을 머물다 갈 수 있다면, 삶이 훨씬 더 만족스러울 수 있을 것 같다. 무엇보다, "나를 휴지(休止)할 수 있는 골방"이 되어줄 수 있을 것 같다.


제주 분점을 하나 만들고 맡아서 운영해 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기획서라도 한 번 써서 보내봐야 하나. 현재의 콘셉트를 유지하면서, 제주스러운 세션(제주 관련 도서, 독립출판물)과 외국어 세션(외국인 여행객, 영어마을 등의 외국인 거주자, 다문화가정)을 추가로 구성해 보면 좋을 것 같다. 지역 공공도서관들과의 협업이나 사회공헌 프로그램 운영, 제주에 많이 있는 독립서점들과의 협력 프로젝트도 반응이 나쁘지 않을 듯싶다.


어차피 책을 한 권 끝까지 보기는 어려운 시간이어서, 이런저런 책들을 잔뜩 꺼내와 조금씩 맛을 보았다. 유재영 소설집 <하바롭스크의 밤>(민음사), 최진석의 <민중과 그로테스크의 문화정치학>(그린비), 조르주 바타유의 <종교이론>(문예출판사).


육지에서 보내는 주말, 좀 더, 그리고 종종 부지런을 떨어야겠다. 무엇보다, 아직은 다소 낯설고 어색하게 느껴지는 이 공간에 대한 느낌이 빨리 지워질 수 있도록, 이곳에서 보내는 시간에 정성과 공을 좀 들여야겠다.   


©Myeongjae 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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