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흔두 번째 ©Myeongjae Lee
7C133, B737-800
16:55, 탑승구 11, 좌석 19F
문득, 7C133편은 어디에서 와서 승객들을 내려주고 나를 제주로 실어가는지 궁금했다.
홈페이지 운항정보 메뉴에 들어가 보니, 16~17시 사이 김포공항에 도착한 제주항공 비행기는 제주발 <7C124, 16:15 16:21> 외에는 없었다. 제주에서 날아와 다시 제주로 돌아가는 항공기라는 게 확인되었다. 그런데 그게 뭐라고, 새로운 무언가를 발견을 해낸 것 마냥 마음이 살짝 기특했다.
오후 2시에 경복궁역 근처에서 업무협의가 있었다. 일을 마치자마자 3시에 이른 조퇴를 하고 바로 김포공항으로 향했다. 태풍 콩레이가 몰고 온 거센 비바람 때문에 혹시나 비행기가 못 뜨면 어쩌나 걱정이 되었다. 하지만, 서울의 하늘은 무탈했고, 간접영향이라 그런지 비행도 그런대로 안정적이었다. 물론, “이래 봬도 나 태풍 출신 강풍이야” 하며 한 번은 그 존재감을 드러내야겠다는 듯, 착륙을 위한 하강을 시작할 때 기체가 심하게 요동쳤다. 제주공항에 도착하니 비가 많이 오긴 많이 오고 있었다. 공항에 내려 급행버스를 타고 가는데, 제주 전 지역에 강풍, 호우, 풍랑특보가 발효 중이라며 안전사고에 각별히 주의하라는 안전안내문자가 왔다.
"전날(=11.1.) 제주시 일 강수량은 238.4㎜다. 일 강수량이 100.0㎜를 넘은 것은 종전 2011년 11월 18일 102.0㎜ 이후 처음이다. 기상 관측을 시작한 1923년 이후 가장 많은 강수량으로 집계됐다."
https://www.hankyung.com/article/2024110258687
1923년 기상관측 이후 우리나라가 11월에 태풍 영향권에 들어가는 것도 처음 있는 일이고, 11월 '제주지역 일 강수량(11.1.)'도 역대 최고였단다. 그러고 보니, 지난 9월에는 제주 기상관측 이래 9월 기온으로는 최고인 35.1도를 기록했다 했고, 일요일(11.3.) 새벽 3시 19분에는, 느끼지는 못했지만, 제주시 서쪽 130km 해역에서 규모 2.3 지진도 발생했다. 추가 지진 발생에 유의해 주기 바란다는 안전안내문자도 왔다. 지진까지. 기후변화 등의 영향으로, 제주 역시 다양한 종류의 자연재해와 공존해야 하는, 점점 더 살기 녹록지 않은 곳이 되어가는 것은 아닌가 싶었다.
나보다 제주에 훨씬 더 잘, 깊숙이 안착해오고 있는(표현이 좀 어색하지만 현재완료 진행형이 적절한 듯해서…) 아내는, 제주 사람들은 자기 이야기, 집 이야기, 가족 이야기를 많이 하는 편인 것 같다고 했다. 제주 출신 옛 직장 동료들에 대한 기억을 곰곰이 더듬어보니, 다는 아니지만, 실제로 그런 경향이 없지 않았던 것 같다. 덕분에 그들과 조금은 더 친밀한 관계를 맺을 수 있었던 것 같다. 제주는 다른 어느 곳보다도 생존을 위해 '우리'가 중요한 곳이었다. 아마도, 그래서 적절한 타이밍에 조금씩, 살짝 우리 집 숟가락 개수를 알려주고, 상대방 집 젓가락 개수를 알아가면서, 또는 일부러 슬쩍 정보를 흘려가면서 공동체의 구성원이고, 괸당임을 서로가 확인해 가는 과정이 늘 필요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싶다. 제주에서는 나도 애써서 내 이야기, 가족 이야기, 우리 집 이야기를 조금은 더 해야겠다.
*괸당(네이버 국어사전) : 서로 사랑하는 관계 즉 혈족, 친족을 의미하는 단어임
출장지와 공항 등등을 오며 가며 2월 초까지의 항공권 구입과 스케줄 정리를 마무리했다. 이래저래 두 시간 이상이 소요되었다. 어쩌다 보니 기존에 예약한 일정을 여러 개 변경해야 했고, 검색, 취소, 환불, 재구매 등을 하느라 시간이 좀 더 걸렸다. 다음번 육지로 돌아오는 항공권만 해결하면 당분간은 신경을 안 써도 될 것 같다. 개운하다.
점심을 급히 먹고 체했는지 머리가 너무 아팠다. 몸도 너무 힘들었다. 그래도 집에 가니 좋다.
또다시 문득, 7C133편은 또 어디를 향해 날아갔는지 궁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