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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혹되는 사용자: 멈출 수 없는 스크롤과 새로고침

[UX] 유도와 유혹, 그 경계 위의 디자인

by Greening

거진 한 달도 넘어 돌아온 오랜만의 사용자 도감 글입니다. 근래 잦은 야근 때문인지 집에 돌아오면 뭘 적을 힘이 없더군요. 침대에 누워서 핸드폰 하기 바빴습니다. 그러면 핸드폰으로 뭘 하느냐. 바로 악마가 만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숏츠 때문입니다. 인스타고 유튜브고 앱에 들어가기만 하면 튀어나오는 1분짜리 숏츠 덕에 기본 한 시간은 훌쩍 흘러가지 않겠어요?


접니다

맞습니다. 바로 오늘 글에서 알아볼 [멈출 수 없는 스크롤과 새로고침의 향연] 때문에 저는 브런치 글도, 사이드 프로젝트도 하지 않았던 거죠. 그래서 오늘은 유혹되는 사용자에 대한 글을 적어볼까 합니다. 일기같네요. 6월부터는 정신 차려야지..





손가락은 멈췄지만, 뇌는 계속 스크롤 중

버릇과도 가깝게 쓰고 있는 수많은 디지털 서비스들. 이 속에 정교하게 설계된 보상 메커니즘은 사용자의 주의를 사로잡고 서비스 이탈을 가로막습니다. 바로 무한 스크롤, 자동 재생, 새로 고침 등의 단순한 인터랙션을 통해 말이죠.


대표적인 유혹 3인방

사용자는 각각 페이지 넘기기, 잠시 기다리기, 페이지를 당겼다가 떼기 등의 단순한 동작만을 수행함으로써 의식적인 사고 과정을 거치지 않는 양상을 보입니다. 쉽게 말해 '이제 그만 볼까?'라는 제어의 감각조차 느끼지 못한 채 특정 페이지에 계속 머무르는 것. 도대체 이 인터랙션들이 뭐라고, 우리를 쉽게 유혹하는 걸까요?




디지털 슬롯머신, UX로 구현된 심리적 조작.


무한 스크롤: 보상의 끝을 감추는 설계


페이지를 넘기지 않아도 콘텐츠를 무한대로 볼 수 있게 해주는 '무한 스크롤'. 해당 구조는 사용자가 콘텐츠의 끝을 인지하지 못하게 만들어 "다음에 더 좋은 것이 나올지도 모른다"는 기대감을 유도합니다.


서비스 사례

원하는 콘텐츠-보상이 다소 불규칙하게 주어지는 환경은 '다음에 더 재밌는 무언가를 놓칠 수도 있다'는 포모(FOMO) 심리를 무의식적으로 자극하기 때문에 사용자는 스크롤이란 행위를 하염없이 반복하게 됩니다. UX적으로 페이지 전환이라는 물리적 단계를 제거함으로써 사용자의 인지적 멈춤 포인트를 없애는, 콘텐츠를 계속해서 소비하게 만드는 대표적인 설계 방법이에요.




자동 재생: 선택권을 빼앗고 재생 루프 속에 가두는 설계


영상을 다 봤더니 다음 영상이 자동으로 재생되는 경험, 익숙하시죠? 자동 재생은 사용자로 하여금 결정을 내릴 여지를 제거하는 설계 방식으로, 볼지 말지 선택하기도 전에 [이미 다음 콘텐츠가 시작된 상태]를 이어감으로써 사용자의 끝없는 콘텐츠 몰입을 유도합니다.


서비스 사례

사용자의 결정 피로를 줄여주고, 굳이 재생 버튼을 누르지 않아도 되는 등 불필요한 뎁스를 없애는 편리한 UX 같기도 해요. 하지만 사용자의 자율성(그만 볼래 / 더 볼래의 선택권)을 침해하며 인지적 제어력을 약화시키는 다크 패턴입니다. 자동 재생까지는 아니지만 끝에 [비슷한 콘텐츠 더 보기] 등을 추가하는 것도 이탈 타이밍을 지연시키는 설계죠.




새로 고침: 도파민 트리거, 미묘한 기대감을 만드는 설계


화면을 아래로 당기는 단순한 동작으로 새로운 정보를 얻을 수 있는 새로고침 또한 겉보기에는 굉장히 편리한 기능입니다. 초기 트위터나 인스타그램 등 콘텐츠를 보다 쉽게 탐색할 수 있도록 사용자 편의를 위해 도입된 기능이었어요.


서비스 사례

하지만 이제는 거진 도파민의 뫼비우스 띠를 만들며 사용자가 끊임없이 새로운 정보를 찾게 만들죠. 무한 스크롤과 유사한 작동 방식으로, 사용자는 새로고침을 통해 "이번에도 또 다른 좋은 게 나올지도 몰라"라는 불규칙적인 보상을 기대하며 습관적으로 해당 동작을 반복하게 됩니다.




이 외에도 우리가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인터페이스 속, 사용자를 무의식적으로 끌어들이는 작은 장치들은 곳곳에 숨어있어요.


좋아요와 같은 반응 시스템 (특히 숫자 기반 피드백)

SNS에서 불규칙하게 도착하는 좋아요와 댓글 알림은 사용자를 계속해서 앱에 접속하며 반응을 살피게 만듭니다. 특히 이 피드백이 [좋아요 30]처럼 숫자로 제공되면, 사람들은 자신도 모르게 그 숫자에 집착하며 다른 사람과 비교하게 되죠. 이런 현상을 의식해서인지 최근 인스타그램도 좋아요 수를 숨길 수 있는 기능을 도입했는데요, 불필요한 경쟁과 감정 소모를 줄이기 위한 UX적 대응으로 보입니다.



읽지 않은 알림 뱃지

앱 아이콘에 보이는 미확인 알림: 빨간 배지(1, 2, 99+)는 '미처리 상태'라는 긴장감을 유발해 사용자가 클릭하게 만드는 효과를 가집니다. 알림을 놓치지 않도록 빠르게 인지시켜주는 효과가 있으나, 단순 주의 환기를 넘은 심리적 압박감을 주기도 합니다.




다크 패턴이 되기 십상인 '유도'와 '유혹' 사이.

사용자 경험인가, 사용자 조작인가?


지금까지 소개한 인터랙션과 컴포넌트는 사실 사용자의 편의를 위해서라면 응당 제공되어야 하는 UX 경험입니다. UX란 본질적으로 사용자의 심리를 자극해 특정 행동을 [유도]하는 작업이니까요. 하지만 여기서 사용자의 자율성을 제한하고, 선택권을 박탈하며 필요 이상의 무의식적인 반복 행위를 유도하는 순간 [유혹]이 되고, 이때부터 UX는 사용자 경험이 아닌 [심리적 조작]에 가까워지기 시작합니다.


5가지 설계 방식의 유도와 유혹 경험

편의를 높이는 UX라 믿고 설계한 기능이, 어느새 사용자의 자율성을 침해하게 된다니! 이러한 상황을 우리는 '다크 패턴'이라고도 부르는데요. 다크 패턴이란 사용자의 의사결정에 영향을 미치기 위해 의도적으로 설계된 UX패턴으로, 겉보기엔 사용자 친화적이나 실제로는 클릭 유도, 의도 왜곡, 반복 사용 유도를 목적으로 작동해요.


오늘 소개한 기능들은 모두 다크 패턴이 되기 쉬운 설계 방식입니다. 유용한 기능과 다크 패턴 사이에는 정말 얇은 경계선이 그어져 있기 때문에, 그 경계를 넘는 순간 사용자 경험은 도움받는 UX가 아닌 끌려가는 UX로 전환되죠.




✏️ 하지만 비즈니스적으로는 어쩔 수 없는 설계 아니야?


다크패턴, 뭐 나쁜 건 알겠는데.. 결국 사용자의 체류 시간을 늘리려면 당연한 설계 아니냐는 생각도 들 것 같아요. 하지만 이 구조가 만들어내는 또 다른 문제는, [좋은 것을 찾게 만드는]게 아니라 [그냥 무언가 계속 나오는] 구조에 콘텐츠가 맞춰진다는 겁니다.


즉, 사용자에게 제공되는 콘텐츠는 질적 선별이 아닌, 양적 소비 중심의 랜덤 배치이기 때문에 "재밌긴 한데, 결국 시간만 날렸어."라는 감정을 느끼게 만들고, 서비스 자체의 질을 낮추게 됩니다. 이런 경험이 반복되면 사용자는 해당 서비스에 대해 점점 '비생산적인 플랫폼', '시간을 낭비하는 곳'이라는 인식을 갖기 때문에, 장기적으로 신뢰도는 낮아지고 부정적인 브랜드 이미지를 형성하면서 사용자 이탈을 초래할 수 있습니다.


질적인 선별 구조 vs 양적인 랜덤 제공에 따른 사용자 경험

물론 많은 서비스에서 UX 디자이너의 성과 지표가 '클릭 수', '재생 수', '체류 시간'과 같은 단기 KPI에 집중되다 보니 사용자를 유도하는 데 집중할 수밖에 없는 구조가 만들어지기도 합니다. 하지만 단순 수치 중심의 목표는 장기적인 사용자 만족이나 서비스 신뢰도와 종종 충돌하므로 더 정교하고 균형 잡힌 설계 전략이 필요하겠죠.





자, 서비스의 목표는 사용자 이탈이 아닌 체류에 있습니다. 그러나 수익의 많은 부분은 사용자의 반복 방문과 머무는 시간에서 발생하고요. 그렇다면 UX 디자이너는 어떻게 비즈니스의 요구와 윤리적인 사용자 경험 사이에서 균형을 잡을 수 있을까요?





건강한 유도를 위한 UX 설계, 4가지 원칙


1️⃣ 오히려 명확한 종료 지점을 제공하고, 결정의 여지 남겨두기.

✏️ 피드에 명확한 끝을 설정하세요. 이후 콘텐츠는 제안만 하되, 전환 여부는 사용자의 선택에 맡깁니다.


특히 양질의 콘텐츠를 소구하고 싶은 서비스라면, 무한 스크롤보다 종료가 있는 구조가 사용자로 하여금 해당 콘텐츠에 집중하도록 돕고, 페이지 자체의 신뢰를 높이는데 유리합니다. 끝이 없는 구조는 사용자를 쉽게 몰입시키지만 콘텐츠 하나하나의 가치는 낮춰요. 콘텐츠 자체보다 '넘기는 구조에 중독된 소비'가 되기 때문이죠.

따라서 집중을 요하는 콘텐츠를 제공하고 싶다면 스크롤이 멈춰지는 UI에서 제공하세요. "다 읽었다!"라는 만족감과 성취감이 필요한 페이지라면 더더욱 스크롤에 끝을 두는 설계가 효과적입니다.



2️⃣ 도파민적 보상이 아닌 '목적 중심'의 정보 구조를 설계하기.

✏️ 단순히 '더 보기'가 아닌 "왜 더 봐야 하는가, 더 보면 어떤 것이 좋은가"를 명확하게 전달합니다.

일시적인 흥미를 자극하기보다는, 사용 목적에 따른 탐색 흐름을 설계하세요. 경험의 방향성이 명확해지고, 서비스에 대한 신뢰도 또한 함께 향상시킬 수 있습니다.



3️⃣ 좋아요, 반응 수치 등의 비교 요소는 가급적 옵션화 하기.

✏️ 인스타그램의 [좋아요 수 숨기기] 기능처럼, 감정적 피로도를 낮추기 위한 선택권을 제공합니다.

사용자의 참여를 유도하기 위해 비교 요소를 활용할 순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건강한 동기부여나 재미를 넘어 집착과 피로를 유발한다면 설계에 변화가 필요해요.



4️⃣ 사용자를 조급하게 만드는 UX 라이팅 지양하기.

✏️ 제안, 알림 등에서 사용되는 UX 라이팅은 정보 전달을 중심으로 하고 사용자의 감정 자극은 최소화하세요.

'놓치면 끝! 지금 바로 확인하세요!', '지금 바로 확인하지 않으면 사라져요!' 등의 긴박감을 조성하고 선택권을 압박하는 UX 라이팅은 단기적으로는 사용자를 쉽게 유혹할 수 있겠으나 장기적으로 서비스의 피로도를 높입니다.




✅ 좋은 UX 케이스: 카카오 웹툰의 선택적 몰입 경험


마지막으로 오늘 소개한 인터랙션들이 영리하게 적용된 사례 하나를 가져와봤어요. 바로 카카오웹툰의 [정주행 모드]라는 기능인데요, 하단 네비게이션에서 해당 기능을 활성화하면 여러 회차의 웹툰을 끊김 없이 무한 스크롤로 감상할 수 있는 구조로 바뀝니다. 댓글창 등의 인터럽트가 모두 제거된, 넷플릭스와 같은 자동 재생 경험을 즐길 수 있어요.


무한 스크롤과 자동 재생 경험

이 기능을 좋은 UX라 느꼈던 핵심적인 이유는, 자동 재생과 무한 스크롤 같은 중독성 강한 패턴을 일방적으로 강제하지 않고 사용자가 콘텐츠에 몰입하고 싶은 순간을 스스로 선택할 수 있도록 옵션화했다는 점이에요. 따라서 단순히 유용한 기능을 넘어 사용자가 어떤 흐름과 밀도로 콘텐츠를 소비하길 원하는지 케이스별로 깊이 고민한 설계라 다가왔고, 사용자의 니즈와 선택을 존중하려는 서비스로 느껴졌습니다.


유혹적인 기능을 무조건적으로 적용하기보다, 이렇게 [선택적 UX]로 전환해 자율성을 부여하는 방식이 오히려 더 건강하고 긍정적인 브랜드 경험을 만들 수 있다는 소소한 깨달음을 준 UX였답니다.






건강한 UX는 사용자의 자율성 위에 세워진다.

자동화가 무조건 나쁜 건 아닙니다. 무한 스크롤, 자동 재생 얼마나 편리한가요! 다만 그 편리함 속에서도 사용자는 스스로 "언제, 얼마나, 어떻게 서비스를 이용할지" 직접 선택하고 통제할 수 있어야 합니다. 당장의 클릭보다, 오래 머물고 다시 돌아오는 경험을 설계해 봅시다. 건강한 유도는 지속 가능한 사용자 경험을 만드니까요.



요약해 볼게요.

✔️ 주의해야 할 유도 인터랙션

무한 스크롤

자동 재생

새로 고침

좋아요와 같은 반응 시스템

읽지 않은 알람 뱃지


✔️ 기능의 양면성

(긍) 사용자의 편의 증진, 클릭률 및 체류시간을 올리는 KPI 달성

(부) 자율성 침해, 부정적인 브랜드 이미지 형성, 서비스 자체의 질을 낮추는 정보 설계 구조


✔️ 건강한 유도를 위한 UX 설계 전략

명확한 종료 지점을 제공하기. 특히 질 높은 경험을 의도한다면 스크롤에 끝을 두는 구조가 더 유리하다.

이 정보를 '왜 더 보아야 하는지' 목적과 가치를 느낄 수 있는 구조로 설계하기.

반응 수치 등의 비교 요소는 사용자 피로도를 낮추기 위해 가급적 옵션화하기.

사용자를 조급하게 만드는 UX 라이팅은 지양하기.



@Greening Brunch book ㅣ Ep (9)
UX/UI 디자인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결국 사용자를 이해하는 것. 본 시리즈에서는 다양한 유형의 사용자들을 분석하고, 그들의 심리와 행동 패턴을 UX 설계 원칙과 함께 탐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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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