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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쿨 cool Jun 06. 2024

안녕! 나의 헤드윅

나를 찾아 떠나는 영원한 여정

내가 처음 헤드윅을 만난 건,

대학로 작은 소극장에서 조승우 배우의 초연이었다.


'언니 왔다!' 한마디로 심장을 뛰게 만드는 조드윅


나에게 헤드윅은 조드윅이란 인상을 깊게 남겨주었던

그 순간을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한다.


헤드윅은 주인공 혼자서 이끌어가는 뮤지컬이기 때문에

배우의 역량이 극의 완성도를 좌우한다.

물론 그렇기 때문에 더욱 강렬하게 몰입할 수 있는 극이기도 하다.


지갑이 지금보다 얇았던 시절이라,

뮤지컬을 본다는 게 사치스럽게 느껴지기도 했지만

몇 번이고 봐도 다른 전율을 만날 수 있어 좋았다.


나는 공연장을 좋아한다.

무대와 객석, 같은 공간에 있는 우리를 아낀다.

우리만 향유할 수 있는 그 시간에서 느껴지는 연대감이 좋다.

혼자여도 혼자가 아닐 수 있는 유일한 순간.


그래서 그때 결심했었다.

헤드윅만큼은 표를 구할 수 있는 한, 몇 번이고 보겠다고.

그리고 그 약속은 지금까지도 변함없이 지켜지고 있다.


내가 기억하는 처음의 헤드윅은 남자도, 여자도 아닌 모습으로

영원한 사랑, 나의 반쪽을 찾아 헤매는 애처로운 그림자였다.


나도 한 때는 나를 반으로 가른 마치 꼭 맞는 퍼즐조각과 같은

내가 너무 사랑하고, 나를 너무 사랑하는 누군가 있을 거란

꿈을 꾸었기에 그 마음에 한없이 스며들었었다.


나의 헤드윅은 시간과 함께 조금씩 다른 모습을 보여줬고,

나도 그때 나의 상황에 따라 다른 헤드윅과 만났다.


때론 동질감을 느꼈고, 때론 배신감도 느꼈으며,

질투를 하기도 했고, 동정의 대상이 되기도 했던 헤드윅.


그렇게 나의 2024 헤드윅이 다시 돌아왔다.

오랜만에 만나는 뽀드윅(조정석), 연드윅(유연석)과 함께.


꽤 오래전 만났던 연드윅은 뮤지컬 씬에서는 낯선 배우였다.

헤드윅을 거쳐간 언니들 수만큼 나도 호불호가 충분히 쌓인 터라

연드윅의 처음은 팔짱을 끼고 의자에 깊숙하게 앉아 시작했다.

그리고 마지막 앙코르의 순간에는 나도 모르게 팔짱을 풀고

누구보다 크게 박수를 치고 있었다.


헤드윅의 좌절과 슬픔을 표현해 내는 밀도가 좋았다.

언젠가 조금 더 시간이 흘러, 연드윅의 무대를 다시 만나고 싶었다.



그리고 기다렸다는 듯이 다시 돌아온 연드윅.


이제는 무대를 익숙하게, 여유롭게 누비며 뱉어내는 호흡이

연드윅이라는 새로운 장르를 만들어 내는 것 같아서 좋았다.


그 배우의 첫 헤드윅과 지금의 헤드윅을 다 볼 수 있던

내가 정말 큰 행운이라는 생각까지 들었다.  


모든 것을 쏟아내고 열린 문을 닫는 그 순간까지

연드윅은 이미 헤드윅 그 자체였다.



조드윅 다음으로 내가 가장 애정했던 뽀드윅

무대 위의 뽀드윅은 정말 잔망스럽고 농염하다.


'만약 배우라는 직업이 사람으로 태어난다면, 조정석이 아닐까?'란

생각을 늘 하게 만드는 사람.


뽀드윅은 정말 특별하다.


아주 무심하게, 아니 어쩌면 아주 치밀하게 짜인 듯이

무방비 상태의 마음을 툭툭, 건드려 놓는다.

그리고 삽시간에 휘몰아쳐서 제자리가 어딘지 찾을 수 없게 만든다.


이해받고 싶었고, 그래서 살아내고 싶었으며,

세상에 존재한다고 말하고 싶게 만들었던 나의 헤드윅.


무대 위의 어둠과 밝음 사이에서 나의 헤드윅에 투영되는 나를 찾는다.



2024년에 만난 헤드윅은 나에게 진짜 나를 찾아가는 여정에 대한 화두를 던졌다.

우리가 '사랑'이라고 부르는 것들은 어쩌면 나를 알아가기 위한 단서가 아닐까?

나라는 존재로 이만큼이나 살아왔으면서도 정작 나는 나를 모른단 생각이 든다.

어쩌면 나보다는 타인을 이해하기 위해 너무 많은 시간을 써버려서일지도.


헤드윅이 찾고 싶었던 완벽한 반쪽은 어쩌면, 진짜 나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헤드윅이 가던 길 끝에서, 진짜를 만났기를.


아니, 만나지 않아도 좋다.

그저 나와 가까워진 것만으로도 같은 길 안에서 모자람이 없으리라.


안녕! 나의 헤드윅.


너의 어둠 속에서 나의 빛을 보았고,

나의 빛 속에서 너의 축복을 알아챘기를.


우리가 가고 있는 그 길, 그 순간에서 다시 만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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