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마음 가득히
누군가 내게 세상에서 가장 존경하는 사람을 꼽으라고 한다면,
나는 숨도 쉬지 않고 부모님을 꼽을 것이다.
오늘은 사랑하는 아빠의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어린 시절, 아빠는 주말마다 자매님(=언니)과 나를 데리고 광화문 교보문고에 가셨다.
아빠는 늘 업무에 필요한 책을 찾아보셨고, 우리도 원 없이 책을 사고 읽었다.
그때의 나는 교보문고의 책냄새가, 책을 사고 오장동 함흥냉면을 먹는 코스가,
지금은 없어진 도로 위를 내려갈 때, 두근하고 떨어지는 심장 소리를 듣는 게 좋았다.
회사원일 때도 늘 책을 읽던 아빠는 정년 퇴임 후, 드디어 하고 싶었던 공부를 시작하셨다.
아빠는 모든 게 다 처음이라고 하셨다.
밤을 새워 리포트를 쓰는 것도, 컴퓨터로 모든 걸 다하는 것도.
나이 차이가 한참 나는 학생들과 같이 공부하며
우리를 더 많이 이해하게 됐다는 아빠.
그렇게 열심히 학점을 이수한 아빠의 졸업식을 딸인 내가
함께한 순간은 지금 다시 떠올려봐도 마음이 뭉클하다.
이제 아빠는 문화센터에서 또 다른 학생들에게 사진 강의를 하고 계신다.
배운 것을 나누며 보람을 느낀다고 말씀하시는 아빠가 늘 나의 자랑이다.
아빠의 사진을 가장 자주 볼 수 있는 곳은 가족 단톡방이다.
물론 주로 나와 자매님이 제일 활발하게 활동하는 공간이지만 말이다.
거의 말씀이 없으신 아빠가 유일하게 먼저 선톡을 하실 때가 있는데.
바로 미국에 사는 손녀인 채연이에게 사진을 보여주고 싶을 때다.
꽃과 동물을 좋아하는 채연이를 위해 아빠가 찍은 야생화와 새 사진을
올려주며 '채연아, 사랑한다!'라고 늘 사랑을 고백하신다.
나는 아빠가 '사랑한다'는 말을 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조카 덕분에 처음 알았다.
내 사랑 고백엔 늘 '네~'라고 말하며 대답을 회피하면서도
손녀에겐 어쩔 수 없으신가 보다.
자매님과 나는 아빠가 채연이를 위해 카톡에 올려주는 사진들을
기록으로 남기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아빠는 이왕이면 요즘 젊은 친구들처럼 SNS에 올려보고 싶다고 하셨다.
그렇게 우리 셋은 또 무작정 인스타그램을 만들었다.
아빠가 사진을 골라 채연이에게 러브레터를 쓰면,
나는 살짝 정리해서 사진과 함께 올리고,
자매님은 영어로 번역을 한다.
아빠 딸답게 미적 감각은 제로지만, 아빠 딸이라 성실함은
둘이 꼭 닮아 그렇게 꾸준히 업로드한 게시물이 200개가 훌쩍 넘었다.
바쁜 하루 중에도 서로 시간을 내어했던 일이
아빠와의 추억이 되어 상처럼 남았다.
가끔 아빠가 우리에게 보낸 메일을 다시 열어 읽어본다.
이 글을 써 내려갈 때 들리는 듯한 아빠의 목소리,
아빠가 안경을 쓰고 하나하나 골랐을 사진이 가득 있어 다행이다.
나의 자랑이고 기쁨이자, 내게 든든한 버팀목이고 사랑인 아빠.
우리의 추억과 글과 사진이, 멈추지 않고 지금처럼 오래오래 계속 이어지길.
그리고 이젠 자매님과 내가 아빠의 든든한 버팀목이 될 수 있길.
다음에 아빠를 만나면, 또 꼭 안고 사랑한다고 말해야겠다.
아빠는 손녀 바보지만, 난 오로지 아빠 바보니까!
아빠의 인스타그램
https://www.instagram.com/leedeogmu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