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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예솔 Jan 21. 2022

싱글맘으로 살아가기

얼마 전 드디어 벼르고 벼르던 옷방 정리를 시작했다.


방 2개에 작은 거실 하나, 그리고 주방이 따로 있는 실평수 20평짜리 작은 아파트는 아이가 걷기 시작하자 급격하게 공간이 모자라 졌다. 공간을 만들 수 있는 곳은 이제 눈에 보일 때마다 답답한 기분이 들어 항상 방문을 닫아두던 옷방뿐이었기 때문에 더 이상 미룰 수가 없었다.


방의 세면을 헹거가 꽉 채우고 있고 그 헹거에는 내 옷이 촘촘하게 걸려있어서 들어갈 때마다 위압감이 들었다. 그뿐인가, 헹거가 차지하지 못한 나머지 한쪽 벽은 서랍장이 차지하고 있었고, 서랍장 역시 가득 차있었다.


내 몸은 출산 전보다 6kg이 늘었는데, 임신 전 파워리프팅에 열을 올리며 복근을 내보이던 시기였으니 체지방으로만 치면 20kg 이상 늘어났을 거고, s사이즈를 조금 크게 입던 나는 이제 L사이즈가 딱 맞았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독박 육아를 하며 다이어트를 할 시간은 지금도 없었고 앞으로도 아주 긴 시간 없을 예정이었으므로 그저 버리기만 하면 되는 일인데 그게 참 어려웠다.


옷을 버리다 보니 정말 기가 찼다.


손바닥만 한 치마들은 색색별로 왜 이리 많은 걸까. 도대체 이런 치마들을 입고 어디를 다녔던 건지,  어디에서 앉아있을 수는 있었던 건지 의아스러웠다.

색색의 니트들은 이미 보풀이 잔뜩 생겨서 구질스러웠다.

즐겨 입던 스포츠 브랜드의  레깅스는 들어가지도 않았다.


서랍장 안을 열자 무려 21세트의 레이스가 주렁주렁 달린 색색의 속옷 세트가 나왔다. 손바닥만 한 팬티, 가슴을 예쁘게 모아주던 브래지어.


내가 좋아하던 속옷 브랜드는 팬티 2장에 브래지어 하나를 골라 세트를 맞추면 10만 원이 조금 넘는 금액이 나왔다. 그러니 다시는 입지도 못하고, 입고 싶지도 않은 속옷 더미들 200만 원어치가 그 서랍 안에 들어있었다.


나는 도대체 뭘 하고 살았던 걸까.

도대체 왜 엉덩이 두 짝을 다 가리지도 못하는 팬티 따위를 수십 장씩 사모았던 걸까.

외출해서 마음 편하게 밥도 먹지 못하게 나를 꽉 죄었던 원피스 수십 벌, 색색의 니트와 바지들.

심지어는 운동복 조차도 왜 그렇게 많아야 했단 말인가.


바지 세벌과 프리사이즈의 셔츠 몇 장, 고무줄이 들어간 롱 스커트 두어 벌을 남기고 모든 옷을  5번에 걸쳐 의류함에 다 쑤셔 넣었다. 의류함에 옷이 가득 차서 끌차에 옷을 가득 채우고 질질 끌며,  동네의 다른 의류함을 찾아다녔다.

아마 옷을 사러 다닐 때의 모습도 그랬을 것이다. 손을 가득 채울 만큼 쇼핑백을 손에 들고 이 가게, 저 가게를 기웃거렸을 터였다.


헹거는 위아래 합쳐 네 칸만 남기고 서랍장도 하나만 남겼다.


방이 가벼워진 만큼 마음이 산뜻하고 후련했다.


수십 벌의 옷들은 아마, 쉴 새 없이 옷과 구두 그리고 액세서리를 사모아야 했던 시절에는 정말 중요했을 것이다. 매일 다른 옷을 입고, 꼼꼼하게 화장을 한 얼굴로  달콤함 향수를 목덜미에 뿌리고 살랑살랑 걸어 다니던 시절의 나에게는.


오랜만에 만나는 친구를 만날 때는 마지막으로 만났을 때 뭘 입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으면 같은 옷을 입고 나갈까 봐 마음이 초조할 정도로 외모에 신경을 썼다.


그 당시의 나는 도대체 뭐가 그렇게 신경 쓰이고 초조했던 걸까. 돌이켜보면 거울 속 내 모습이 날씬해 보이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던 것 같다.

매일 같이 먹던 닭가슴살 때문이었는지, 발을 아프게 하던 높은 하이힐 때문이었는지 모르지만 그때의 나는 항상 짜증스러웠다. 타인의 태도에 지나치게 신경을 썼고, 항상 신경이 곤두서 있었다.


요즘은 고무줄이 들어간 따뜻한 바지 한 벌과 기모로 된 후드티 두장을 번갈아가며 입고 외투로는 아웃도어 브랜드의 플리스를 입고 매일 같은 장소를 산책한다. 날씨가 영하로 떨어지는 날은 검은색 롱 패딩이나 두툼한 숏 패딩을 입는다.


매일 마주치는 시장 상인분들과는 눈인사를 나눈다.

같은 옷을 입고 일주일에 한 번쯤 같은 카페에 들러 커피를 사기도 한다.


나는 매일 같은 옷을 입고, 같은 사람들과 마주하는 내가 부끄럽지 않다.


옷을 고르는데 고민하지 않아도 되니 내가 사는 세상은 훨씬 여유로워졌다. 예전보다 마음도 훨씬 여유롭다. 타인에게도 나에게도 너그럽고, 실수를 웃어넘길만한 여유도 생겼다.


어쩌면 그건 편안한 고무줄 바지를 입고 발이 편안한 신발을 신고, 배부르게 먹으며 살아가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두툼한 살집, 후줄근한 옷으로 마음의 여유를 맞바꾸다니, 20대에는 상상도 할 수 없었지만 나는 날씬하고 예쁜 옷을 입은 짜증스러웠던 나보다 지금의 내가 훨씬 마음에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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