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사드레스와 함께 찾아오는 깨달음

ft. 디즈니 온 아이스

by Amber Kim


진정한 패셔니스타는 블랙을 선호한다고 했던가. 블랙, 화이트, 회색. 패셔니스타는 결코 아니지만, 이런 무채색 계열의 옷을 즐겨 입는 나는 아이를 가진 후에도 아이 역시 비슷한 색감의 옷을 입혔다.


갓난아이에게 진회색 바디수트를 입혀놓고는 이게 시크하다고, 이게 예쁘다고 생각했다. 놀러온 친구들은 아무리 네 딸이라고 해도 왜 너랑 똑같이 옷 입혀놓느냐고 하나같이 핀잔을 줬다. 하지만 보통 사람들이 하는 방식대로, 예컨대 딸아이는 핑크핑크, 남자아이들은 블루를 입히고 싶지는 않았다. 아니, 적극적으로 거부하고 싶었다. 비록 갓난아이라도 성 중립적인 마인드로 옷을 입혀주고 싶었고, 이렇게 쭉 옷을 입힌다면 혹시? 나중에 본인 스스로도 그런 옷을 선호할 수 있지 않을까? 라고 막연하게 생각했던 것 같다.


물론 나의 이런 바람은 아이가 한 3-4세쯤 되고 자기 자아가 생기기 시작하면서 산산조각 났다. 그때까지 삶에 있어 모든 결정을 부모가 대신 내려줬기 때문에 자기 결정권을 한번도 행사하지 못했던 아이는 자기 의상 선택에 있어 본인도 드디어 목소리를 낼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나서는 적극적으로 의견피력을 하였다. 그리고 아이가 선택한 옷들은 하나같이 나의 취향이 아니었다. 그때까지 친구들로부터, 지인들로부터 받은 선물로 여아들이 보편적으로 입을 법한 연분홍, 핑크 등의 샤랄라한 드레스 등을 내 스타일과는 다르다는 이유로 장롱 속에 예쁘게 모셔두었던 옷들을 귀신같이 찾아내 입겠다고 선언하는 아이 앞에서 안된다고 딱히 잘라 반박할 수 있는 어떤 근거나 이유가 없었다. 그리하여 아이는 샤방샤방한 공주풍의 원피스를 입기 시작하였고 점점 주변 아이들과 친구들이 입는 옷에 눈을 뜨기 시작하면서 급기야 엘사의 존재에 대해 알게 된 것이다.


2019년 딸아이를 키우는 대부분의 부모가 그렇듯 나 역시 엘사를 잘 알고 있다. 엘사라는 존재뿐만 아니라 엘사의 이야기, 엘사가 부르는 노래, 엘사가 입는 드레스. 당연히 딸아이도 엘사 드레스를 사달라고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고, 굴복할 수밖에 없었다. 반짝이 가루를 무수히 떨어뜨리고 온 집안을 휘젓고 다니면서 엘사 노래를 있는 힘껏 부르면서 행복해하는 아이의 모습을 보며, 드디어 깨달았다.


너는 너고, 나는 나구나.


너 역시 취향이 있고, 주장이 있으며, 성격이 있고 생각이 있다. 다른 사람이 나에게 자기 생각을 강요할 때 나도 불편함을 느끼는 것처럼 너 역시 그 동안 불편했을 수도 있겠구나. 그런데 그렇다고 말도 못하고. 얼마나 답답했을까.


엄마가 미안했어. 앞으로는 최대한 너의 뜻과 의사를 존중할 수 있도록 노력할게. 물론, 가능한 한 범위 안에서. (집안에서 반짝이 흘리는 드레스 입고 다니는거야 내가 쫓아다니며 닦으면 되지만, 친구집에 그런 모습으로 놀러간다고 하면 친구에게 피해를 줄 수 있으니까 지양해야겠지, 안그래?)


얼마 전 아이 어린이집 방학 기간을 맞아 미리 예매해둔 (엄청 비싼) 디즈니 온 아이스: 겨울왕국 공연을 보러 갔다. 행사가 행사인만큼 딸아이는 엘사 드레스를 입겠다고 했고 흔쾌히 그렇게 하자고 했다. 목동 아이스링크에 도착해서 보니 어린이 관객 절반 이상이 엘사 드레스를 입고 있었다. 안 입고 왔으면 큰일 났겠네.


그 곳에 있는 작은 엘사 공주님들의 부모 모두 역시 이런 생각을 분명 했거나 앞으로 하겠지. 우리 공주님. 위험하거나 남에게 피해주거나 하지 않는 범위 안에서 공주님의 뜻과 의사 최대한 존중해줄게요. 엄마 아빠는 우리 공주님 다치지 않도록, 아프지 않도록, 슬프지 않도록 옆에서 최대한 돌볼게요. 공주님 힘들 때 옆에서 다독여줄게요. 엄마 아빠가 해줄 수 있는 범위 안에서.

왜냐하면 너는 너고, 나는 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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