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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종우리 Aug 02. 2024

제주도와의 인연

비혼주의자였던 아빠의 육아일기

큰 인연은 아니다. 그저 여행지 일뿐이다.

하지만 이 여행지는 우리의 공식적인 중기 여행의 시작과 끝을 함께 했다.

'제주도'

누구나 갈 수 있고, 한 번쯤 가봤던, 살고 싶으나 쉽게 도전하지 못하는 섬.

결혼할 당시 처음 신혼여행지로 선택한 곳은 베트남이었다. 당시 6월 결혼이었고 코로나-19가 시작되기 전 예약을 끝내자는 심정으로 알아보던 차에 전국에서 확진자들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결국 우리는 해외여행이 불가하고 허가도 안 내줄 것 같아 국내 여행지로 눈을 돌리수밖에 없었다. 국내에서 신혼여행지라고 해봐야 가장 이국적인 섬 '제주도'가 유일했다. 코로나-19로 인해 우리의 계획은 변경되었으나 제주도와의 인연은 시작이었다.


혼자서 제주도를 여행한 적은 대학생 때 단 한번 있었고 친구와 한 번 여행한 적이 있었으니 제주도를 다녀온 횟수라고 해봐야 인생에서 2번 정도였다. 역마살이 있는 편이지만 제주도와의 인연은 그렇게 많지 않았다. 하지만 결혼할 즈음부터 제주도에 매년 갈 일이 생겼는데 첫 번째가 스냅사진 촬영차였다. 당시 코로나-19가 심해 예식 전에 1박 2일로 다녀왔었다. 말이 1박 2일이지 사실상 당일이라고 해도 무관할 정도였다. 저녁에 비행기를 타고 도착한 뒤 숙소에 들어가 간단하게 저녁을 먹고 유명한 시장 한 번 돌아보고 다음 날 새벽부터 스냅촬영 준비하고, 촬영하고 바로 공항으로 가서 서울로 오는 일정이었다. 당시엔 예식 전이라 체중관리 하느라 제대로 먹지도 못했고 주목적이 있었기에 여운만 남긴 체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스냅촬영 2개월 후 결혼식을 끝내고 신혼여행지로 간 것이 2번째 방문이었다. 일주일간 제주도 여행을 했는데 6월의 제주도는 정말 환상적이었다. 적당한 바람과 뜨겁지 않은 햇살 그리고 비.. 아무래도 남쪽에 위치하다 보니 가장 먼저 장마가 시작되는 곳이기도 했다. 첫날 도착하자마자 비가 오더니 이틀 후부터는 날씨가 그래도 괜찮아서 여행하기 좋았다. 예전엔 처다도 안 봤던 성산일출봉부터 섭지코지, 좋아했던 가수가 운영하는 책방, 우도, 해변가들 그리고 서퍼들이 많았던 월정까지.. 일주일이라는 시간이 짧게 느껴질 정도였다. 그리고 돌아오면서 했던 이야기가 매년 결혼기념일이 있는 6월에 제주도를 오자는 것이었다.


세 번째 제주도 방문은 운전이 가능하여 렌트를 하였다. 당시 6월에 많은 시간을 낼 수가 없어서 짧고 굵게 다녀올 수밖에 없었다. 저녁에 도착한 뒤 제주도 공항 뒤 해안도로 변에 위치한 숙소에 들어가 잠시 산책을 하고 저녁을 먹었던 기억이 난다. 해변도로라고 해서 특별하지 않을 수도 있으나 우리가 본 해안도로는 세상의 답답함을 모두 잊게 하고 편안함과 안락함을 주었던 기억이 난다. 6월 제주도의 저녁은 환상 그 자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였다. 다음 날 차로 삼방산 일대를 가고, 중앙에 위치한 녹차가 유명한 곳에도 다녀왔었던 기억이 난다. 짧은 일정이었지만 좋은 추억을 많이 남기고 결혼할 당시 기억과 기억을 살리기에 충분한 시간이었다.


네 번째 제주도 방문은 내가 가고 싶은 곳이 있었다. 한라산 등반.. 등산을 좋아해 꼭 한 번 가보고 싶었던 곳이어서 이번이 아니면 못 갈 것 같았다. 모든 일정을 계획하고 필요한 준비물을 챙긴 후 제주도로 갔다. 매년 느꼈던 거지만 제주도의 초여름은 늘 그랬듯 사람을 기분 좋게 하는 무언가가 있었다. 첫날 무사히 도착을 한 뒤 다음 날 새벽부터 한라산 등반을 했다. 필요한 간식 챙기고, 물 챙기고, 식사 챙기고... 챙길 것이 많은 등반이었지만 기대가 커서 그런지 힘들지 않았다. 성판악까지 택시를 탄 뒤 도착하니 이미 많은 사람들이 등산을 하고 있었다. 멀리서만 바라보던 한라산을 직접 걸으니 제주도의 자연이 더 이국적이고 황홀했던 기억이 난다. 등반 중에 뛰어가는 사람도 있었고 아기를 데리고 함께 온 가족도 보였다. 쉽고 지루한 코스라고 하지만 결코 만만하지 않았던 기억이 난다. 반나절이 다 되어서 정상에 도착하니 먼저 온 사람들이 백록담에서 사진을 찍기 위해 줄을 서 있었고 우리도 그래야 했다. 한 시간가량 줄을 선 뒤 사진을 찍고 정상에서 먹으면 더 맛있다는 '라밥'을 먹고 쉬다가 내려왔다. 분명 아침 6시 전후로 출발했던 것 같은데 하산까지 하니 오후 4시가 넘어 있었다. 숙소에 도착한 뒤 짐을 풀고 그날 저녁은 근사한 회를 먹고 마무리했던 기억이 난다. 다음날은 또 비가 와서 비와 함께 도보여행을 했던 기억이 아직있다. 비가 오든 날씨가 좋든 제주도는 제주도에 있다는 그것 만으로도 기분 좋게 하는 것이 있었다. -그해 여름 우리는 원래 신혼여행지였던 베트남을 다녀왔다.-


다섯 번째 제주도 여행은 '태교여행'이었다. 처음엔 렌트를 할까 생각했지만 제주도가 국내 여행지로 인기가 너무 높아 렌트비가 어마무시했다. 결국 렌트비를 내느니 택시를 타고 이동하자고 의견을 모으고 제주도로 갔다. 이번엔 6월이 아닌 8월이었다. 극성수기라서 숙소도 거의 없고 비싸기도 했지만 우리는 미리 예약을 하기도 했고 저렴한 곳을 찾아다녀서 그런지 숙소비는 생각보다 부담은 안 됐던 것 같다. 다행히 장마가 끝난 시점이라 비는 오지 안 았다. 예전에 신혼여행으로 갔었던 성산, 함덕 등도 가보고 애월 쪽도 여행을 했다. 마지막으로 옮긴 숙소는 제주 남부인 금능해변 쪽이었다. 그런데 문제가 생긴 것이 하나 있었는데 '태풍'이었다. 때마침 태풍이 올라와 금능에서의 첫날과 둘째 날은 태풍 구경을 할 수 있었다. 어릴 때 섬에서 살던 시절 바닷가에서 태풍을 보고 오랜만에 보는 바다 태풍이었다. -역시나 쓰레기들이 해변가로 많이 떠 내려왔다.- 다행히 태풍이 지나가고 마지막 남은 일정까지 모두 끝냈는데 아내가 8개월 정도여서 오랜 시간 걷거나 할 수 없었다. 조금 오래전 일이라 어떤 것들을 하고 보았는지 정확히 기억이 나지 않지만 예전의 여행지와 좋은 카페에 가거나 맛있는 음식을 먹는 정도였던 것 같다. 그렇지만 제주도는 항상 그랬듯 우리에게 편안함과 안락함을 느끼게 해 주었다. 그렇게 긴 시간은 아니었지만 언젠간 둘이 아닌 아이와 셋이서 다시 올 것을 다짐하고 태교여행을 끝냈다.-이 때도 난 논문을 끝내야 한다는 강박에 여행 중에도 늘 아내에게 미안했다.-


누구에게나 인생여행지가 있을 것이다. 국내든 해외든..

제주도가 나의 인생 여행지라고 하기엔 좀 아쉬운 부분이 있다. '카미노 데 산티아고'처럼 인생을 송두리째 바꿀 만큼 큰 깨달음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엄청난 인연을 만난 것도 아니다. 하지만 분명 의미 있는 여행지는 맞다. 사랑하는 가족과 함께 했고, 평온한 순간을 누렸으며 좋은 음식과 자연도 만끽했으니 말이다.

20대 젊은 시절 '세상은 어떤 모습일까?'가 궁금해 자는 시간도 아까워했던 여행이 있었다. 그것은 그것 나름의 의미와 가치가 있었다. 나의 좁은 시야를 넓혀 주었으며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고 기록으로서의 여행으로는 최고의 시기였다.

지금은 그때만큼의 체력과 의지, 열정이 떨어지는 것이 사실이다. 많은 것을 눈과 마음에 담지도 못한다. 하지만 그때와 다른 점이 있다면....

  '여유'라고 생각한다.

젊었을 당시엔 하나라도 더 보기 위해 '여유' 따윈 없었다. 그저 가진 자들이 누리는 사치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지금 난 가진 것이 많지 않지만 여유 있게 여행하려고 한다. 나와 함께한 사람과 감정 상하거나 지치는 여행이 아닌 서로를 바라보며 서로의 기억에 좋은 것만 남겨주고 싶은 여행을 하고 싶다. 마치 제주도가 우리에게 준 편안함 같은...

비행기에서 맞이한 제주도의 첫 이미지는 늘 설렘이었다.


p.s 어떤 여행이든 체력은 필요하다. 체력이 좋을 때 여행을 많이 다니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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