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혼주의자였던 아빠의 육아일기
우리 아기는 남들이 보기엔 순한지 모르겠으나 우리가 보기엔 예민한 아기였다. 태어나서 집으로 왔을 때 아기 침대가 있었으나 소위 '등센서'라는 것 때문에 한 번도 이용하지 못했다. 늘 엄마나 아빠의 품속에서 잠이 들었다. 그랬던 아기는 100일 지나고 나서부터는 조금씩 편안하게 잠을 자긴 했으나 조금씩 성장하면서 유모차 타는 것을 거부했다. 어느 정도 타고나면 짜증을 내고 울기도 했다. 결국 부모의 품속에서 이동을 했고 유모차는 카트와 같은 존재가 되었다. 카시트도 마찬가지였다. 차를 타면 주로 가까운 마트나 용인 할머니댁에 가는 경우가 많은데 30분이 넘어가면 짜증을 내기 시작했다. 아내가 옆에서 노래를 불러 주거나 간식을 주며 겨우 달래 가며 이동했고 지금도 그러고 있다.
이런 아기가 태어난 후 집에서 가장 멀리 간 곳은 전주였다. 편도로 무려 5시간이 걸렸던 기억이 난다. 같이 일했던 친한 지인이 발령을 받아 내려간 전주... 그곳으로 우리는 여행을 떠났다. 처음 계획을 했을 때 '과연 괜찮을까?'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분명 짜증 내고 울고 난리가 날 텐데... 그래도 가기로 했으니 휴게소에서 자주 쉬더라도 가는 수밖에 없었다. 같이 이동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우리 가족뿐만 아니라 아기의 친구가 있던 지인도 함께였다. 그렇게 모두 모여 1박 2일간 즐겁게 놀고 다시 5시간을 길에서 보내며 돌아왔다. 그 당시를 돌아보면 5시간도 가능했던 것은 우리 차였고 짜증을 내고 울고 하더라도 우리만 힘들면 되는 문제였다. 그리고 아기가 낮잠 자는 시간만 맞으면 조금 더 편하게 이동할 수 있었다. 여러 조건들이 있었지만 그래도 그럭저럭 괜찮게 다녀왔던 기억이 있다.
자차로 이동은 그래도 가능했다. 아기가 힘들어해 소리를 질러도 우리 차니깐 남에게 큰 피해는 없었다. 하지만 근교를 항상 차로 이동할 수는 없었다. 한 번은 날씨가 너무 좋아 집 근처 대학로에 가보기로 했다. 가깝기도 하고 주차하는데 어려움도 있어 지하철을 이용하기로 했다. 10여 분만 이동하면 되는 곳이라 크게 신경 안 쓰고 집을 나섰다. 가는 동안은 큰 어려움이 없었고 구경도 잘하고 다시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었다. 지하철엔 주말이라 사람들이 출퇴근 시간만큼은 아니더라도 조금 있는 편이었다. 올 때도 잘 오겠거니 했는데 한 정거장을 남겨두고 아기가 갑자기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이유는 빨대 때문이었다. 내가 마시고 있던 아이스아메리카노의 빨대... 그것을 잡고 싶었는데 안 되니 소리를 질렀던 것이다. 우리 차였으면 아무런 문제가 없었겠지만 여러 사람들이 이용하는 대중교통수단이라 아내와 나는 당황하기 시작했다. 소리를 지르니 사람들은 쳐다보기 시작했고 아기는 계속 소리를 질렀다. 우리는 한 정거장만 가면 되는데 평소 그렇게 짧았던 구간이 너무나도 길게 느껴졌다. 결국 아가기 소리를 내면 입을 잠깐 막기를 반복하다 목적지에서 내렸다. 그 짧았던 순간의 경험이 크게 남아서일까?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것에 약간 두려움이 생겼다. 그 사이 아기는 더 성장했고 목소리도 더 커졌다. 이런 상황에서 대중교통을 이용한다는 것은 쉬운 결정은 아니었다. 늘 도전정신과 공포감이 함께 공존했다. 그렇지만 무더운 여름이 지나고 날씨가 너무 좋은 주말이면 또 근교로 나가고 싶었다. 이번에는 지난번에 갔었던 대학로보다 한 정거장이나 더 가야 했다. 가는 동안에도 아내와 나는 '제발 소리만 안 지르길...'이라고 기도를 했고 만약 소리를 질렀을 때 어떤 식으로 대처해야 할지 계획도 세우고 출발했다. 연휴라 도착한 지하철엔 사람들이 꽤 있었다. 아기는 오랜만에 다시 지하철을 탔는데 신기한지 여기저기를 둘러보고 있었다. 가는 중에 아기를 이뻐하시는 분들은 웃어주기도 하고 인사를 하기도 했다. 그렇게 무사히 아무 일 없이 목적지에 도착했고 즐겁게 거리를 돌아다녔다. 예전엔 아내와 둘이서 데이트하던 곳에 아기와 함께 오니 너무나도 좋았다. 아기띠를 하고 있어 조금 힘들긴 해도 가족이 함께 다니며 구경하고 체험하는 것 자체가 힐링이 되었다. 그동안 더운 날씨로 인해 집안에서 얼마나 고생이 많았던가!! 그 고생을 한꺼번에 보상받는 기분이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전 아기는 낮잠을 자고 있었으나 지하철을 타기 전 눈을 떴다. 너무나 아쉬웠다. 조금만 더 자 줬으면 편안하게 집으로 돌아올 수 있었는데... 이런 부모의 마음을 아기는 알까? 그저 또 아무 일 없길 바라면서 지하철을 탔고 다행히 도착하는 그 순간까지 조용히 올 수 있었다. 어떤 분은 먼저 자리에 앉겠냐고 물어 봐주시기도 했고 대체로 아기를 보는 분들은 많이 웃어 주셨다. 모두가 감사했다. 우리 아기에게도 고마웠고 알지는 못하지만 함께 지하철을 탄 사람들도 고마웠다. 평소 그렇게 쉽게 이용하던 지하철인데 아기와 함께 탄다는 것이 이렇게 긴장을 많이 해야 하는 일인지 몰랐다. 아기가 있기 전 지하철에서 봐왔던 아기와 함께 탄 부모님들도 이런 마음이었을까? 아이들이 뛰어다니거나 큰 소리로 이야기하면 '공공장소에서는 조용히 해야 한다'라고 타이르던 모습들이 떠올랐다. 공공장소에서 피해를 주지 않는 것,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우리 아기도 의도하지 않았지만 어떤 때는 누군가에게 피해를 줬을 수도 있다. 조용히 가고 싶은데 소리를 지르고 울고 하면 짜증이 날 수도 있다. 그저 이런 것들을 모르는 시기가 빨리 넘어가길 바랄 뿐이고 교육이라는 것이 제대로 이루어지는 순간이 찾아왔으면 한다.
남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되 자신의 삶을 주체적으로 살아가는 아기가 될 수 있도록 열심을 다해 가르치는 것이 부모의 책무가 아니겠는가!
건강하면서 예의는 갖춘 아이로 자라나 주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