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종우리 Oct 22. 2024

첫 돌, KTX 타고 할머니 만나러 가던 날

비혼주의자였던 아빠의 육아일기

아기가 태어난 지 벌써 1년이 되는 달이 되었다. 첫 돌을 어떻게 해야 하나 6개월 전부터 고민하다 두 양가의 거리가 멀어 결국 각각 하기로 했다. 어차피 가족끼리 할 생각이었던지라 최선이라 생각되었다. 나는 마산에서 돌 잔치 할 만한 곳을 예약했고 아내는 용인 가족들과 함께 할 수 있는 곳을 예약했다. 그렇게 6개월이 흘렀고 예약했던 날이 다가오고 있었다. 예전에 전주 여행을 하면서 느꼈던 점은 '나중에 돌잔치할 때 우리 차로 이동하는 것은 상당히 힘들 수 있겠다'는 것이었다. 편도로 5시간 정도 소요되었던 여행이었는데 마산까지 차로 이동하면 6시간 이상 소요되니 운전하는 나도 아내도 그리고 아기도 힘들 것 같았다. 그래서 생각한 것이 KTX로 이동하는 것이었다. KTX로 마산까지는 3시간이면 되니깐 아기가 잘만 도와주면 큰 어려움 없이 이동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만 이용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이용객들이 있다 보니 혹시라도 피해를 주지는 않을까 하는 점이었다. 유난히도 큰 우리 아기의 울음소리와 한 번씩 내지르는 소리 등. 별것 아니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편안하게 가야 할 승객들에게 피해가 될 거라 생각했다. 아내와 나는 우선 자리를 아기자리 포함해서 3자리로 예약하기로 했다. 원래는 아기는 무료로 이용할 수 있지만 한 자리를 더 예약하면 1만원에 이용할 수 있어 조금 더 편안하게 그리고 덜 피해를 주고 갈 수 있을 것 같았다. KTX 유아동반석 칸을 예약하고 다음으로 생각한 것이 서울역까지 이동하는 방법이었다. 지하철에서 소리를 지르거나 울기라도 한다면 난처한 상황이 생길 것 같았다. 조용히 가주기만 하면 좋을 텐데 그러려면 아기의 컨디션이 좋아야 했다. 전날 잠을 푹 자고 일어나 잘 먹고 또 이동하는 동안 낮잠까지 자준다면 최고의 시나리오라고 생각했다. 여러 시물레이션을 거치고 예약한 당일 우리 가족은 간단하게 점심을 먹고 KTX를 타러 서울역으로 이동했다.


지난번에 지하철을 타고 동대문까지 잘 이동했던 경험이 있어서 그런지 조금은 부담이 덜 되었던 것 같다. 지하철이 신기한지 여기저기를 둘러보던 아기는 조용했다. 다른 분들의 호의적인 관심도 부담을 덜 수 있는 계기가 되었던 것 같다. 무사히 서울역까지 도착한 뒤 KTX를 타러 승강장으로 내려갔다.  '서울-광명-천안아산-대전-동대구-밀양-진영-창원중앙-창원-마산' 이렇게 3시간이면 도착이었다. 적어도 대구까지만 조용히 가주면 그다음부터는 승객이 조금씩 줄어드니 부담감도 덜 수 있을 텐데... 예약한 자리에 앉은 뒤 얼마 안 돼 열차는 출발을 했고 아기는 밖을 계속 구경하다 곧 잠이 들었다. 오전에 낮잠을 안 자서일까 피곤했던 듯했다. 모든 것이 예상대로 순조로웠다. 아내가 아기를 안고 있었는데 힘겹게 자는 것이 안쓰러웠는지 눕히자고 했다. 바닥이 딱딱해서 될까 했지만 해보자고 하니 할 수밖에... 우리의 욕심이었을까? 눕히려고 하자 아기가 잠에서 깨어났다. 아직 천안아산까지 밖에 안 왔는데 벌써 눈을 뜬 것이다. 다시 재우려고 했지만 아기는 자지 않았다. 오히려 에너지가 충전이 되었는지 더 활발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곧 열차는 대전에 도착했고 대전부터 마산까지는 2시간가량 더 남았기 때문에 이때부터 아내와 내가 번갈아가며 아기를 보는 수밖에 없었다. 앉아서 놀다가 소리를 내면 아기를 안고 칸과 칸사이를 갔다고 돌아오기를 반복했다. 분명 3자리를 예매했는데 마치 입석을 타고 가는 듯한 느낌이었다. 그렇게 대구에 도착했고 밀양을 지나니 사람들이 조금씩 줄어들었다. 칸 사이를 왔다 갔다 하던 아내가 내게 말했다. 

"아기랑 같이 온 부모들은 한 번씩 다 마주쳐. 다들 비슷한 상황인가 봐."

그랬다. 우리뿐만 아니라 아기와 함께 기차를 탄 부모들은 다 비슷했다. 승하차 구간에서 다른 부모님과 인사를 하기도 했고 아기들은 서로를 보기도 했다. 밀양을 지나니 아기는 다시 잠이 들었다. 그렇게 잠든 채로 마산까지 이동했고 무사히 도착했다. 대체로 아내가  아기를 안고 있느라 고생을 많이 했다. 마산에 도착하니 큰 산 하나를 넘은 듯한 느낌이었다.

아기는 어떤 느낌이었을까? 아빠가 자란 고향에 온 느낌이... 말을 할 수 있다면 물어보고 싶었으나 아직은 그럴만한 시기가 아니라 아쉬움이 가득했다. 마산에 도착한 뒤 어머니 집으로 가 가족들을 처음 만났다. 그전에 영상통화로 몇 번 보기는 했으나 실제로 보는 것은 처음이었다. 아기는 낯을 가리는 시기는 어느 정도 지났으나 할머니와 큰삼촌에겐 어색한 듯했다. 이틀간 어색한 가족들을 만나 첫돌 행사를 했지만 근사한 곳에서 식사를 하고 난 뒤 돌잡이 한 것이 다였다. 솔직히 준비한 것도 없지만 용인에서 하는 돌잔치는 그래도 형식을 갖추어서 하는데 너무 간소화시킨 것은 아닐까? 우리 가족이었기에 어쩌면 가능했을지도 모르겠다. 단체 사진을 찍자고 했지만 어느 누구도 원하지 않는 상황... 당연히 예상은 했지만 섭섭하기도 하고 한편으론 형식을 갖추지 못해 미안하기도 했다. 그래도 돌잡이는 같이 했으니 그걸로 만족해야 하는 것일까? 아무튼 간소화된 돌잔치는 식사와 함께 마무리되었고 우리는 어머니 집에서 잠시 쉬다가 다시 서울로 돌아오기 위해 KTX에 올랐다.


장거리 이동에서 좋은 해답이 되었던 KTX

돌아오는 KTX도 걱정이었지만 올 때 한 번 경험했기에 그래도 안심은 되었다. 올라갈 때 탄 KTX에서 놀란 점이 있다면 분명 유아동반석을 예약했는데 '아동'은 있는데 '유아'는 없었다. 그러니깐 '유아'는 우리 가족뿐이었다. 짬짬이 잠을 자던 아기는 초반에 에너니가 넘쳤다. 일어서려고 했고 아무거나 잡으려 했으며 소리를 내기도 했다. 분명 자기가 놀기엔 좁았을 것이다. 하는 수 없이 아내와 나는 다시 칸과 칸 사이를 오가며 아기를 달랬다. 다행히 대구에 도착하기 전 아기는 잠이 들었고 지난번 같은 실수를 하지 않기 위해 아내가 품에서 계속 잠을 재웠다. 팔이 아파 엄청 고생했을 것이다. 아기는 피곤했는지 계속 잠을 잤고 '오송'을 넘어서야 깨어났다. 그렇게 한 시간을 달래 가며 서울에 도착했고 서울역에서도 역시나 다른 승객들의 배려로 무사히 집까지 도착했다. 집 앞 지하철역에 내리는 순간 '아 끝났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고생한 아내와 아기에게 고마웠고 마산에서 자기만의 방식으로 축하해 주고 고생해 준 가족들에게도 고마웠다. 이렇게 마산에서의 첫돌 행사는 끝이 났다.

1박 2일 짧은 시간이어서 어머니께 조금은 죄송했으나 다가올 명절을 기약하기로 했다. 그땐 조금 더 길게 있으면서 손녀딸과 함께 추억을 쌓았으면 한다. 그리고 서로에게 인색한 우리 가족들... 큰 기대는 안 했지만 그래도 모여 축하해 주고 도움이 필요할 때 기꺼이 나서서 도와주는 모습을 보면서 위로를 받았던 것 같다. 늘 짜증만 낼 것이 아니라 따뜻한 말이라도 한 번 더 할 수 있도록 나 역시 노력이 필요할 것 같다. 이 번 방문을 통해 지금 보다 더 나은 모습이 되기를 기대하며 우리 아기도 나도 조금씩 성장해가는 경험이 되었길 바라본다.

아기의 마산 앞바다.. 수변공원이 새로 생겼다.

                     

작가의 이전글 아기와 대중교통으로 이동하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