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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피종결자 Sep 23. 2021

꼰대가 아닌 어른

얼마 전 우연히 유튜브의 동영상 이것저것을 전전하다 웹드라마 ‘낀대'를 보게 되었다. 요즘 툭하면 나오는 꼰대(구태의연한 사고방식을 강요하는 어른들)와 그런 꼰대들에게 맞서는 젊은 세대(요즘은 이들을 ‘90년대생'으로 통칭하는 것 같다) 사이에 옴짝달싹 못하고 끼어있는 세대를 ‘낀대'라고 부르는 것이었다. 맏이와 막내 사이에서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며 눈치보다 중재자 역할만 하게 되는 둘째의 숙명과 비슷한 낀대는 바로 내가 대표하는 80년대생이었다. 낀 대로 등장하는 30대 과장은 그보다 어린 신입 직원과 전형적 꼰대처럼 보이는 50대 부장 사이에서 계속 고뇌한다. 꼰대도 싫고, 그에 적극적으로 반기를 들고 반항하는 신입 직원은 더 불편하다. 그런데 본인은 필요할 때마다 꼰대가 되기도 하고, 신입의 마음이 되기도 한다. 드라마의 끝에는 결국 50대 부장님도, 20대 신입 직원도 누가 더 옳고 그른 것이 아니라 서로가 서로에게 배울 것이 있다는 메시지를 낀대의 생각을 통해 전달한다.  


이 드라마를 보기 전까지 나는 스스로 ‘젊다'라고 확신했다. 꼰대들이 만들어 놓은 문화에서 도망치고 싶어 달려간 곳이 해외였으니, 지금의 나는 MZ세대처럼 변화를 추구하고, 새로운 어른을 지향한다고 자신했다. 그러나 드라마를 본 뒤 조금 충격을 받았다. ‘이게 진짜 너야!’ 라며 내가 보지 않으려고 했던 나의 모습을 보도록 강요당한 것처럼 자신에게 실망스러워졌다. 나이 마흔을 몇 년 앞두고 과장에서 차장, 부장으로 넘어가는 길목에 있는 내가 정말로 젊은 세대가 바라는 혹은 내가 예전에 갈망한 리더십을 지닌 사람인지 되짚어보니 영 자신이 없어진 것이었다. 



나는 언제부터인가 내가 원하는 방식의 일을 고집하고, 내 경험을 바탕으로 어린 사촌 동생이나 후배들의 결정이나 고민을 판단하고 있었다. 여러 직장을 옮겨 다니면서 나는 아직 꼰대들과 그들이 만들어 낸 경직된 문화를 바꾸지 못한다는 것을 깨닫고 조금씩 현실과 타협하는 방법을 배워서인지도 모르겠다. 다행이라면 이런 어중간한 낀 대로 안주해서는 좋은 리더가 될 수 없는 회사에서 일하게 되었다는 것. 나를 변화시킬 수 있는 환경 속에서, 롤모델로 삼을 수 있는 리더를 곁에 두고 배울 수 있는 기회가 있다는 것이다. 직장인들은 모두 안다. 이런 기회가 얼마나 드문지. 나 역시, 이직 다섯 번째만에 그런 리더가 있는 곳을 찾았으니 말이다. 


이곳의 리더는 완벽한 셀프서비스맨이다. 누구도 의전을 기대하지 않고, 바라지 않는다. ‘회사의 직원은 모두 똑똑한 사람들이고, 따라서 다 혼자 잘할 수 있다'는 것이 상식이다.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한 방법을 물어볼 수는 있지만, 누군가에게 대신 일을 해달라고 지시 혹은 부탁하지 않는다. 그 예로 처음에 무척 놀라는 일 중 하나가 한국 법인을 책임지는 수장도 혼자 열심히 노트북을 들고 4층에 퍼져있는 사무실을 전전하며 미팅룸을 찾아다니는 것이었다. 내 마지막 면접에도 총괄이 혼자 노트북을 들고 문 앞까지 나와 나를 직접 맞이하여 미팅룸으로 인도하고, 커피를 내려 주었다. 마지막 임원 면접이라 뼛속까지 긴장하던 차에 그분의 따뜻한 개인적인 환대가 얼마나 큰 마음의 안정을 주었는지 모른다.  


임원의 책상과 의자는 인턴이 사용하는 것과 동일하며, 그의 자리는 팀원들 사이 어딘가에 위치해있다. 독방 같은 건 없다. 나는 언제나 옆에 앉은 임원의 바라보고, 팀원들이 언제고 그 사람과 편하게 대화하는 모습을 보며 부담 없이 팀에 녹아들 수 있었다. 수평적 문화로 내로라하는 기업에서도 보통 이사진 이상의 직급이 되면 혼자 쓰는 사무실을 배정받고, 그 사무실 안에 본인만 쓸 수 있는 태평양만치 넓은 미팅룸이 있다. 1분 1초가 바쁜 스케줄로 꽉꽉 채워져 있는 리더들이니 직원들과 미팅을 하기 위해 1분 이상 걷고, 계단을 오르내린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일이라고 대게는 생각할 수 있는 부분이었다. 직원 4~5명이 같이 일하는 젊고 젊은 스타트업 기업이라면 모를까, 전 세계 직원이 10만 명이 넘는 대기업의 리더도 하나부터 열까지 알아서 한다는 것이 처음엔 신선하게 다가왔다. 


내가 아직 리더가 되려면 멀었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던 때는 나의 매니저가 팀원의 말을 끝까지 듣고, 충분히 자신의 생각을 정리한 뒤 무척 조심스럽게 답변해 줄 때였다. 그리고 아주 많은 경우 그는 자신의 생각을 말해주는 대신 ‘XX 씨가 제일 잘 알 것 같은데, 저라면 이런 방법도 시도해 볼 것 같네요.'라는 말 한마디만 얹어주곤 했다. 그리고 2년 동안 그가 한 번도 부정적인 감정을 드러내거나, 그의 말투가 공격적이라는 느낌을 받아본 적이 없다. 그런 모습을 볼 때마다 참을성 없고 경솔한 내 모습이 부끄러웠다. 연차가 쌓일수록 더 급해지고, 함께 일하는 다른 사람을 잘 믿지 못해 일을 맡기지 못하고, 다른 사람의 말을 끝까지 듣는 것이 벌써부터 어려운데 20년이 넘도록 자신의 분야에서 탁월한 성과를 거둔 리더들이 그야말로 머리에 피도 마르지 않은 팀원의 말을 듣고, 자신의 생각이나 판단을 은근히 강요하지 않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일까. 회사의 모든 매니저가 이런 리더십을 가진 것은 아니지만 큰 차이는 회사가 이런 리더십을 지향하고, 결국 이런 리더가 인정받는다는 것이다.  ‘왜 안돼? 하면 다 돼! 네가 열심히 안 해서 그런 거야!’, ‘이거 이렇게 처리한 사람 누구야, 나와!’ 등의 말을 뱉어내는 리더들이 많던 전 직장에 있을 때보다 나는 지금 더 성장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열렬히 사랑했던 또 다른 드라마, ‘검색어를 입력하세요 - WWW’에서 등장하는 브라이언은 다름을 수용하고 자신이 틀릴 수 있다는 것을 항상 인지하고자 노력한다. 그의 대사 중 ”나한테 틀린다고 해도 다른 사람에게도 틀린 걸까? 내가 옳은 방향으로 살고 있다고 자부한다고 해도 한 가지는 기억하자. 나도 누군가에겐 개새끼이다.”는 의견의 차이를 인정하는 가장 함축적인 대사였다고 생각한다. 이곳의 리더십에서도 언제나 강요하는 것이 바로 이런 것이다. 조직이 클수록, 그리고 리더가 더 존경스러운 위치에 갈수록 나 같은 직원들은 리더의 말이나 의견에 더 많이 기대고 싶어 진다. 그 사람의 생각이 나보다는 더 현명하고, 더 올바를 것이라는 섣부른 결론을 내버린다. ‘저 사람은 우리보다 몇 만 배는 똑똑하니까 저 자리에 올라간 거야'라는 생각의 오류를 얼마나 쉽게 범할 수 있는지 모른다. 그러나 실제로는 10명의 직원들을 불러 어떤 주제에 대한 아이디어를 물으면 리더가 생각하지 못한 좋은 의견, 그리고 기존의 아이디어에서 미처 발견하지 못한 문제, 예컨대 다양성을 훼손할 수 있는 여지를 발견한다. 이것이 현 회사의 리더들이 어떤 커뮤니케이션을 하든 반드시 오픈 채널로 직원들의 질문이나 의견을 받는 이유이기도 하며 결국 이곳에서 꼰대가 살아남을 수 없는 가장 큰 이유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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