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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피종결자 May 31. 2022

엄마, 나 그리고 우리의 시간

    엄마가 오랜만에 서울에 온다. (고작 1시간 거리지만.) 3월에 두 다리가 뚝 부러진 뒤 2개월을 꼼짝없이 춘천에만 있다가 이제 조금 걸을 만 해 진 덕이다. 그래도 많이 걸으면 여전히 다리가 붓고 많이 아픈 탓에 되도록 자동차를 타고, 동선이 편한 곳으로만 선택해야 한다. 엊그제도 마당에서 풀을 뽑는다고 오래도록 왔다 갔다 하다 밤에 다리가 많이 아팠다기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까 싶어 집 근처에 전신 마사지를 예약해 두었다. 이런 거라도 해줄 수 있는 형편이 되어 다행이다 싶다.  


    엄마가 두 다리에 깁스를 하고 있는 꼴을 보고 누군가는 아이고 교통사고가 났나 보다 하고 안타깝게 쳐다보고, '딴 데 보다 넘어졌어요'라고 겸연쩍게 대답하는 엄마에게 '도대체 어떻게 넘어졌길래 다리가 하나도 아니고, 두 개가 다 부러졌느냐'라고 울상을 지으며 다독이는 사람도 있었다. 참으로 공교롭게도 엄마가 두 다리가 아작이 난 날은, 재작년부터 엄마가 노래를 부르고 꿈꿔오던 일자리에 첫 출근을 하던 날이었고 그 일자리는 그렇게 허무하게 날아가버렸다. '마음이 계속 불편하더라니, 그게 내 자리가 아니었나 봐' 라며 엄마는 괜찮다고는 했지만 시작도 제대로 못해보고 기회를 날려버린 게 얼마나 아쉬울까 생각하니 더 이상 그 일에 대해 가타부타 말을 꺼내기가 어려웠다. '그래, 실제로 아르바이트 자리가 필요한 사람이, 작은 돈이라도 필요한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 사는 게 무료하고 쓸모없이 느껴진다고 60이 넘은 아줌마가 일하고 싶다고 징징대니까 하늘이 배부른 소리 말고 정신 차리라고 혼을 내는가 보다'라고 엄마가 우스개 소리로 얘기할 때 '그러니까 엄마, 남들은 일 때려치우고 쉬고 싶다는데 제발 좀 그 시간을 여유 있게 즐겨, 하고 싶은 것 좀 하고' 혼내듯 말하곤 웃어버렸다. 


    가끔 엄마에게 전화를 할 때 목소리가 조금 깔아져 있다거나, 춘천에 갔을 때 엄마 표정이 조금 기운 없어 보이면 그것이 내게 큰 두려움이 될 때가 있다. 예전 같았으면 자식을 다 키워놓고, 또 자식이 낳은 손주까지 좀 돌봐주고 나면 어느덧 70이 되고, 그러다 보면 좀 여유 있는 인생을 즐기기도 전에 몸이 아프기 시작하기에 그렇게 중년 이후의 인생이 아깝다고 하던데 엄마에게는 얼마나 남아있는지 모르는 인생이 기대할 것이 별로 없는 무한의 지루한 시간처럼 느껴지는가 싶어서 마음이 무거웠고 그럴 때마다 엄마가 뭘 하면 재미가 있을까 온종일 인터넷을 뒤졌다. 무언가를 찾을 때마다 엄마 본인의 의사는 별로 고려하지 않고 이런 걸 해보라, 저런 걸 배워보라고 훈수를 두었다. 돈은 아까워하지 말라고, 나는 아직 돈 들어가는 자식이 없으니 엄마가 하고 싶은 거 충분히 도와줄 수 있다고 말했다. 엄마의 쓸쓸함과 지루함이 나에게 공포영화 같은 것이라 나는 어떻게든 엄마에게 집중할 무언가를 던져주고 싶었던 것 같다. 쓸쓸함을 바쁨으로 채워주고 싶었다. 그리고 한 편으로는 무언가를 시작이라도 해 봐야, 내가 그걸 좋아하는지 좋아하지 않는지, 이걸 해보니 저걸 해보고 싶다든지 하는 게 생기지 않을까 기대를 했다. 그러나 엄마는 갖가지 이유로 내 바람처럼 쉽게 뭘 시작해 주지는 않았고, 가끔 이건 배워보고 싶다고 어렵사리 마음을 먹으면 코로나로 또는 수강 신청자가 미달이라 수업이 취소가 되었다는 문자 한 통을 받고 또 한 번 실망을 하곤 했다.  


   누가 딸이 아니랄까 봐 나는 요즘 엄마랑 똑같은 소리를 입에 달고 있다. 나도 모르게 자꾸 남편에게 재미가 없다는 소리를 자주 한다. 예전처럼 집 밖에 모든 것이 낯선 외국이 아니어서인지, 배부르고 등 따습게 안정적

으로 살고 있어서인지, 아니면 정신없이 내 모든 것을 쏟아부을 자식이 없어서인지 내가 재밌어할 만한 것을 찾고 시도해보는 노력이 지난 2-3년간 현저히 줄어버렸다. 아침에 일어나 글을 쓰기로 해놓고 쓰지 않고, 내일은 자전거를 고쳐 자전거를 타고 팔당댐까지 가보겠다고 해놓곤 가지 않는다. 공모전에 낼 글을 퇴고하기로 펼쳐 놓고는 막막함에 노트북을 닫아 버린다. 하고 싶은 게 없다기보다는 하고 싶은 게 너무 다양해서인데 그중 무언가를 선택하려고 하다 보면 자꾸 '그런 건 돈이 안 되니까..', '돈이 아까워서..'라고 핑계를 대게 된다. 자다가 내일 세상이 멸망해도 별로 아쉬울 것이 없을 것 같다는 막말을 한다. 친구들을 만나고 온종일 깔깔깔 웃어대고는 집에 와서는 이런 소리를 하고 있으니, 남편이 보기엔 내가 두 얼굴의 여자이지 싶을 테다.  


   내게 주어진 시간, 여유, 내 건강한 몸뚱이와 착한 남편과 아직 내 곁에 있는 부모를 한없이 소중히 여기면서도 돌아서서 저런 대도 않는 말을 입 밖으로 꺼내는 나를 혼쭐을 내주기로 했다. 이제 그런 말을 한 번씩 내뱉을 때마다 나는 글을 쓰는 벌을 주기로 했다. 그런 말을 내뱉을 에너지가 남아 있다면 그 에너지를 모아 나와 똑같은 여자 아이를 캐릭터로 삼은 소설을 쓰고, 거기서라도 정신없이 재밌는 삶을 만들어주기로 했다. 


 "혹시 내가 너무 바쁘고 즐겁게 살면 엄마가 상대적으로 더 쓸쓸해지지 않을까?" 

"나래야, 네 생각한데 좀 닥치라고 해줄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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