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건과 안정, 그 이름의 결혼

by 나름

여름에 만나 오리털 파카를 꺼내 입기 시작한 즈음에 나는 그에게 통보했다.


"나는 지금 시간이 많지 않아. 나이는 찼고, 가정을 꾸리고 아이도 낳고 싶으니 결혼 생각 없으면 그만 만나는게 좋겠어."


무언가 결정을 하기까지 오래걸리고, 결정하고 난 이후에도 늘 돌아보고 후회하는 성격인 그는 나의 통보에 시간을 달라고 했다. 그리곤 집에 가서 열심히 계산기도 두들기고 고민했으리라.

지금 생각해보면 이 남자가 아니면 얼른 결혼할 다른 사람을 찾아야겠다는 생각은 진심이었고, 이 남자를 떠보려하거나 결혼을 부추기려고 한 말은 아니었다. 그런데 그 만큼 이 사람 아니면 안될만큼 많이 사랑한건 아니었을지도 모르겠다.


일주일 후였나, 우리 엄마를 만나보겠다고 했고, 엄마와의 만남을 시작으로 다음엔 그의 어머니, 우리 아빠, 그의 아버지 순으로 단계별 미션을 클리어하며 상견례 자리까지 해치웠다.


'아 결혼은 눈 깜짝하니 어느새 식장에 와있는 것처럼, 결혼 인연은 막히는 것없이 진행된다던데 이게 그런건가보네.'


결혼날짜를 잡고 그의 친구부부들과 함께 만나면 그의 친구들은 '얘가 왜 좋아요?'라는 질문을 꼭 했다. 이런 질문을 하는게 좀 이상하다 싶기는 했지만 그냥 궁금한가보지, 대수롭지 않게 넘기고 나는 늘 같은 대답을 했다.


"다정하고, 믿음직스럽고, 또 측은해요."


저 중에도 측은함이 가장 컸는데, 없는 집에서 오로지 본인 힘으로 자수성가하여 자산이 많은 사람인데도 너무나 불행해보이는 그가 늘 측은했다.

나는 내 삶에서 소소하게 즐거움과 행복을 자주 느끼면서 살았다. 새로운 운동을 배우는 이벤트, 주말에 친구나 가족이랑 무언가를 할 이벤트, 해외여행 이벤트 등등 이런 이벤트들을 내 삶 곳곳에 심어놓아 다가올 이벤트에 대한 기대와 그 이벤트에 대한 행복과 즐거움으로 가득 찬 일상들이었다. 그런데 그는 부족한 것 없는 사람임에도 후줄근한 모습으로 몸에 안좋은 음식들을 먹고 남들보다 뒤쳐질까 불안해하며 돈이 더 많은 주변 자산가들과 자신을 비교하며 늘 불행하게 지냈다. 이런 그에게 나에게 풍족한 사랑과 행복을 나눠줄 수 있을 것이라고, 그러면 둘 다 여유롭고 행복하게 살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그는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고, 나는 월급은 적지만 좋은 가정환경에서 잘 자라 그를 포용해줄 심적 여유가 있고 또 아이를 많이 낳아 키우고 싶은 꿈이 있으니 서로의 부족한 점을 완벽하게 채울 수 있지 않을까.


신이 났다.

나도 결혼을 하는구나, 배에 새 생명을 품고 뒤뚱거리며 걷는 임산부들을 얼마나 부러워했었는지, 나도 이제 임부복을 입고 뒤뚱거릴 수 있구나. 예쁜 신혼집을 내 마음대로 꾸미고, 출근하면서 뽀뽀하기, 퇴근하면 안아주기 같은 우리만의 룰을 만들고, 저녁먹고 같이 산책하고, 조조영화나 심야영화를 보고 얼마나 늦었는지 시간을 체크하지 않으면서 놀 수 있겠구나. 늘 상상하고 기대하기를 즐겨하는 나는 또 내 머리 속의 바다에서 혼자 깔깔대며 열심히 허우적허우적 헤엄치고 있었다.




웨딩플래너를 통해 식장부터 웨딩드레스까지 또 일사천리로 결정이 되었다.

식장은 우리의 뜻보다는 가장 손님이 많은 우리 아버지의 뜻대로 진행되었고, 우리의 결혼식이라기 보다는 아버지의 지인분들께 우리를 소개하는 자리가 되어갔다. 내가 꿈꿨던 작고 예쁜 결혼식은 대형 홀에서 진행하는 대규모 행사로 바뀌었다.

그러던 와중 코로나가 극심해지고 결국 코로나 규제가 가장 극심할 때 양가 친척들-그것도 모든 친척을 부르지도 못할만큼 적은 인원으로-만 참석한 그야말로 스몰웨딩을 치뤘다. 웃프게도 서울에서 가장 큰 홀에서 치루는 극소수 스몰웨딩이 되었다. 친구들도 한명도 부르지 못했다. 아쉬웠지만 또 한편으로는 마음에 부담도 없고 그래서 다이어트도 안하고 아주 편하고 즐겁게 결혼식을 즐겼다.


엄마, 아빠 때문에 울게되고 거금을 들인 화장이 망가질까 걱정을 많이 했는데, 우리 셋 다 눈물 흘리지 않고 잘 지나갔다. 오히려 내가 아빠 손을 잡고 입장할 때 단상에 서있던 남편이 울컥하는 모습을 보았는데, 딸을 보내는 우리 아빠의 마음에 감정이입이 되어서 그런건지, 이제 이 사람을 내가 책임져야한다는 부담감에 그런건지는 알 수 없었다.


나중에 결혼 사진을 받고 나서 나는 사진 속 엄마와 아빠의 표정을 보고 그 때 정말 많이 울었다. 당시엔 정신없어서 보이지 않았는데, 걱정과 슬픔, 애틋함, 아쉬움, 이런 감정들이 모두 뒤섞여 눈은 피곤하고 떼꾼해 보이고, 입만 웃고 있는 부모님의 얼굴에 너무나 마음이 아팠다.

부모님은 남편과 나의 가정환경이 많이 다르기 때문에 거기에서 오는 어려움이 클 것이라고 결혼을 반대하셨더랬다. 그런데 전 남자친구를 반대하면서 이미 자식과의 멀어짐을 경험한 부모님은 또 같은 상황을 반복하면 이번에는 자식과의 연이 끊길까 더 강하게 반대하시지는 못하셨다.

지극정성으로 30년 넘게 키운, 자신보다 소중한 딸을 마음에 썩 차지않는 사위에게 보내는 그 마음이 어땠을까 생각하면 부모님과 더 잘 지낼 수 있는 사람을 가족으로 데려오지 못한 죄송함이 들기도 했다. 시간이 지나면 그도 부모님도 변하지 않을까 그래서 내가 생각하는 완벽한 가족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우리는 결혼식이 끝나고 한바탕 공연을 마친 배우처럼 화장과 머리를 그대로 한채로 신혼집 근처 골목에서 삼겹살을 구워먹었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서의 신경전을 시작으로 신혼이라는 살얼음판 위에 발을 내디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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