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 일 없이 살진 못해도
어린 시절 들렀던 공간에 발을 내밀어 본 적이 있던가. 한 발짝이면 기껏해야 자로 30cm 남짓인 때가 있었다. 조금만 발을 떼어도 여기서 저-기 까지가 금방이던 시절. 이제와 살펴보니, 나의 두 발은 마치 거인과 같아졌다. 그렇게 넓직한 운동장이었는데. 그렇게 커다란 놀이터였는데. 이를테면 광활한 세상이었는데. 이제는 몇 발자국, 단 몇 폭의 보폭만으로도 그 위를 걸을 수 있다. 가볍거나 경쾌하지 만은 않다. 난데 없는 리듬감이 부산스러울 때도 있다. 그래도 괜찮다. 아무도 보지 않는다는 걸 이젠 아니까.
세상의 눈치를 보던 날들이 더러 있었다. 스스로 선택하지 않은 것들과 싸우던 시절들. 그 때는 24시간이 모자랐다. 매 분 매 초를 쪼개 살고 싶었다. 그렇게 살지도 못하면서. 돌아보면 분에 넘치는 욕심이었다. 정신 없는 하루를 보내는 사람에게 울창한 나무는 아름다움의 일부일까? 아마도 사치였다. 아이들의 꺄륵거리는 웃음 소리는 행복의 일부일까? 다분히 소음이었다. 단란한 가족들의 산보를 바라보는 일은 따뜻함일까? 먼 나라 얘기일 뿐이었다. 그랬다. 그런 답이 나오던 시절이 있었다.
간만에 본가에 들렀다. 이곳 주위엔 여전한 삶의 장면들 뿐이다. 그런 자연들, 그런 아이들, 그런 가족들. 그러니까 퍽 평화롭고 여유롭고 한적한, 그렇고 그런 것들. 치기어린 청춘에게 한 때는 소음이고 방해이자 사치였던 것들. 헌데 그것들이 이제 달리 보이기 시작했다. 어쩌면 그걸 바라보는 내가 변한 걸까? 멀리서 한참동안 배회하다 돌아왔는데, 고맙게도 그것들은 거기 그대로 있어주었다. 세월의 반경 따라 나는 몸과 마음의 키가 더 커졌는데 말이다. 1cm만 자라도, 세상은 다르게 보이는 법. 내가 달라져도 결코 그대로인 것들이 문득 고맙게 느껴졌다.
퇴사 후 벌써 8개월이 지났다. 그간 나의 세상은 한 순간에 망가지고, 동시에 갖춰졌다. 고장난 라디오처럼 지직거리는 신호가 어느덧 휴대폰 알람소리처럼 익숙해졌다. 끝을 모르고 이어지는 고민들 덕에(?) 머리칼엔 새치 같은 것들이 생겨났다. 다행인 건, 더이상 그다지 눈치 보지 않는다는 것. 새치 좀 있음 어떻고. 삐그덕 거리면 어떻고. 망가지면 또 어쩌고. 우스워지면 어떤가. 내가 선택한 세상이다. 뜻대로 움직이다 보면, 어느 순간 세상도 결국 아주 작은 놀이터일 뿐. 주위를 누비기도 바쁜 세상 더 눈치볼 시간이 없더라. 전쟁터로 나와 보니, 그토록 한가할 틈이 정말로 없더라.
언젠가 사치로 치부했던 것들이 요즘은 유독 소중하고 따뜻해서, 못 견디게 고마와진다. 평화롭고 여유있는 것들을 애써 멀리하지도, 굳이 사치 부리지 않으려 노력하지도 않아도 된다는 걸. 어릴 땐, 직장인일 땐, 왜 몰랐을까. 흘러가는 대로 사는 것도 괜찮고. 목적 없이 그림을 그리는 것도 괜찮다. 방황하고, 배회하고, 넘어지고, 달라져도. 그래도 정말 괜찮다. 세상에는 당신을 채워주는 무언가가 반드시 있다. 모든 게 달라져도, 당신의 시야가 수십 센치 이상 올라가서 더 이상 그 세상이 예전 같지 않다고 느껴져도. 심지어 모든 게 고장나고 틀어져버려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거기 서 있어주는 어떤 것들이.
유독 눈 앞의 단풍이 기적처럼 느껴졌다. 간만에 가족들과 맛있는 저녁을 먹어야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