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새벽 5시 반쯤에 눈이 떠졌다. 더워서도 아니었고, 화장실이 가고 싶었던 것도, 알람이 울린 것도 아니었다. 정말 이유 없이 잠에서 갑자기 깨어난 것이다. 30분이라도 더 자자는 마음에 다시 누워보았지만 잠은 오지 않았다. 결국 눈을 뜨고 베개에 기대 창문 너머를 보았다. 새로 집을 구하면서 부동산에 이야기했던 조건은 두 가지였다. 창문 너머에 아무것도 없을 것, 그리고 고층일 것. 좋은 중개사님을 만나 감사하게도 좋은 집을 얻게 되었는데 매트리스에 누워 침실 창문 밖을 보면 항상 푸른 하늘이 눈에 들어온다.
5시 반이지만 여름이라 그런지 벌써 날이 밝았다. 구름이 보이고, 비도 오지 않는다. 요즘 난 시간이 허락하는 한 매일 아침 1시간씩 창릉천을 따라 걷는데, 이른 시간이지만 지금 나간다면 햇빛이 없는 상태에서 기분 좋게 걸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집을 나서야겠다.
매일 아침 창릉천을 따라 걸으면 기분이 좋다. 우선 도로가 잘 되어 있어서 걷는 것이 편하고 강을 따라 걷다 보면 많은 것들이 눈에 들어온다. 아침마다 강에 들어가 발을 담그고 왠지 아이처럼 즐거워하는 중년의 어른들. 숨을 헐떡이고, 누가 봐도 지쳐 억지로 다리를 움직이는 모습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달리는 것을 멈추지 않는 러너. 저 멀리 보이는 북한산의 산자락. 이른 아침부터 바쁘게 사람들을 태우고 움직이는 3호선 지하철. 바쁘게 날아다니며 짧은 삶의 한 순간을 보내는 잠자리. 조깅코스를 따라 피어있는 들꽃. 그런 것들을 눈에 담으며 걷다 보면 어느새 1시간이 훌쩍 지나간다.
가끔은 비를 맞으며 걷고, 가끔은 늦게 일어나 땡볕 아래에서 땀을 흘리며 걷는다. 그렇게 아침부터 지친 몸을 하고 집으로 돌아오면 제일 먼저 하는 건 얼마 전에 산 예쁜 유리컵에 얼음과 머들러, 빨대를 담고 제로콜라를 컵 가득 따르는 것이다. 체온은 올라가 있고, 땀은 흐르지만, 선풍기 바람을 맞으며 이렇게 컵에 담긴 콜라를 한번에 비우면 그날 하루의 기분은 그렇게 '행복'으로 정해진다.
언젠가 유튜브에서 인지심리학자라는 타이틀로 유명한 김경일 교수님의 강연을 보게 되었다. 그때 인상 깊게 남았던 메시지는 이것이었다. 바로 행복해지기 위한 방법은 행복의 크기가 아니라 빈도수에 집중하는 것이다. 우리 인생의 디폴트값은 행복하지 않은 것이고, 그 인생에서 우리는 사소한 행복들을 찾으며 다음의 고통을 견디는 것이다. 그러니 행복해지기 위해서는 일상 속에서 소소한 행복들을 자꾸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인생은 고통이고, 불행이다. 이건 내가 오랫동안 동의해 온 하나의 생각이다. 불교에서는 인생은 고통이고, 욕심과 집착이 그 고통을 만들어낸다고 말한다. 태어나는 것은 곧 고행의 시작이며, 수련을 통해 우리는 그 망집을 벗어던지고 윤회라는 이 삶의 순환에서 벗어나 열반에 이르러야 한다는 것. 그것이 내가 이해한 부처의 가르침이다.
요즘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철학자 쇼펜하우어도 같은 이야기를 했는데, 그는 삶이란 끝없는 욕망과 고통을 겪는 과정이며, 사실 고통이 부재한 삶이란 그저 무료함의 연속이라는 점을 인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국인이 특히 좋아한다는 철학자 프리드리히 니체 역시 인간의 고통과 허무주의에 대해 오랫동안 생각해 온 인물인데, 그에 따르면 고통은 인생의 일부이며 이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인간은 성장하고 초인이 된다고 말한다.
인생은 고통이다. 동의하지 않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최소한 난 그렇게 믿는다. 그래서 인생을 사는 것이 무의미하다는 '허무주의'에 빠진 적도 있다. 김경일 교수님의 강연이 인상 깊었던 건, 그렇게 허무주의에 빠질 뻔한 나에게 새로운 인사이트를 안겨주었다는 점이다. "그래, 인생은 고통이지. 하지만 그럼에도 우리는 살아야 하고 이 삶을 계속해야 해. 그렇다면 그 고통 속에서 행복을 찾을 수 있는 방법은 뭐지? 바로 일상에서 작은 행복들을 찾아서 고통 속에서도 자주 행복감을 느낄 수 있도록 하는 거야." 그 영상을 시청한 이후 나는 이 주제에 대해 종종 생각했는데, 최근에서야 비로소 그 의미를 머리가 아닌 마음에서 이해할 수 있게 된 것 같다.
요즘 내 삶은 사소한 행복들로 채워진다. 우연히 일찍 일어난 어느 아침, 눈에 들어온 하늘. 전날보다 조금 줄어든 몸무게. 더운 날씨에 조깅하는 데 갑자기 불어오는 산들바람. 운동 후 찾은 샐러드가게에서 파는 할인제품. 운동 후 마시는 시원한 콜라. 매트리스에 누웠는데 하필 눈에 들어오는, 맞은편에 기대놓은 보드 위에 적힌 내가 가장 좋아하는 문구. 다이어트 중이라 배고픈 와중에 먹을 수 있는 달콤한 곤약젤리. 그리고 내 생각을 브런치 글에 담을 수 있는 시간과 여유.
물론 하기 싫은 일을 해야 하고, 피곤한 사람과 대화를 해야 하는 등 내 하루에도 행복하지 않은 순간들은 여전히 있다. 하지만 요즘 나는 그 시간들보다 이렇게 가끔 찾아오는 소소한 행복들에 집중해 본다. 그럼 어느새 그 하루는 고통보다는 정말 사소하지만, 순간순간 나에게 설렘이나 짧은 만족감 등을 안겨주는 시간들로 채워지는 것이다.
백수가 되어본 김에 행복에 대해 생각해 보는 요즘이다. 그리고 이번에 내가 깨달은 행복의 의미는 이렇게 일상 속에서 찾아오는 작은 선물들을 차곡 차곡 모아 내 주머니 속에 담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