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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빠의 일기장 Mar 08. 2018

[에세이] 무소유의 소유

무소유를 가르친 법정스님의 중고책 값이 올랐다. 

 

 ‘본래무일물(本來無一物).’

 1972년 처음으로 활자화된 법정 스님의 수필 ‘무소유(無所有)’는 원래 단 한명의 예외없이 빈손으로 태어나 빈손으로 돌아가는 인생에서, 무언가를 가진다는 게 얼마나 덧없는 지를 일깨워준다. 변변한 가구조차 없는 스님의 방에 난초 두 화분이 들어온 이후, 전문서적을 뒤지고 외국사는 친지에게 비료를 사서 부쳐달라고 부탁하는 자신의 모습에서 집착을 발견했던 법정 스님. 물건을 하나 더 가짊으로써 종국에는 번뇌를 하나 더 짊어지는 셈이라는 스님의 가르침은 오랜 세월 많은 사람들에게 큰 울림을 주었다. 

 그리고 2010년. 법정 스님이 그의 말씀대로 아무것도 가지지 않은 채 입적하신 직후, 1980년대에 나온 문고판 ‘무소유’ 책값이 두배세배 뛰더니 나중엔 수십만원으로 올랐다는 이상한 뉴스가 나왔다. 많은 사람들에게 무소유의 삶을 가르친 책이, 결과적으로는 범인(凡人)들의 소유욕을 무한 자극하는 대상이 되었다니. 원래 인간의 본성이 모순적이라고 하지만, ‘무소유의 소유’란 대조를 통해, 양면성을 지닌 복잡한 사람들의 심리를 그대로 투영한 사례였다.


 ‘간판 없는 가게.’

 홍대와 가로수길에 이어 요즘 ‘뜬다’는 한남동, 성수동, 망원동, 연남동, 익선동 일대를 다녀보면 뚜렷한 상호를 내걸지 않은 가게들을 심심치 않게 발견할 수 있다. 도대체 이름만 봐서는 뭘 파는 곳인지 알 수 없는(하지만 이미 너무 유명해진) ‘장진우 식당’부터 아버지 세대 시골 읍내에서나 봤음직한 ‘육교 앞 해장국집’까지. 심지어 ‘피자 파스타 와인 맥주’만 써놓고 아예 간판을 내걸지 않은 간판없는 가게도 있다.

 1990년대와 2000년대, 무조건 멋진 외국어 이름을 걸고 장사해야 손님이 모이던 시절과는 확연히 달라진 모습이다. 이같은 ‘무간판 가게’는 20~30대의 소비 심리를 정확히 꿰뚫은 마케팅 비법이란 해석이 나온다. 20~30대는 인스타그램과 페이스북에서 ‘나만의 장소’를 자랑하며 “나 잘 살고 있다”를 자랑하고 싶어하는 심리가 크다. 또 주거비와 양육비 부담 등으로 인해 40~50대에 비해 가처분소득이 확 줄어들어 합리적 가격에 괜찮은 품질의 ‘가성비(價性比)’를 따진다. 뭔가 비밀스러우면서도 주머니사정 봐가며 먹을만한 그런 곳들이란 뜻이다.


 ‘고스트 마케팅.’

 가성비 세대에게 어필하는, 무간판 가게로 장사한다는 건 ‘품질과 서비스에 대한 자신감’이 넘쳐서 일 수 있다(소비자들도 대부분 그렇게 해석한다). 하지만 SNS를 통해 널리 알려진 가게 몇몇 곳을 들러 본 필자는, 주관적이긴 하지만 ‘맛보단 마케팅’에 집중한 곳도 있었다고 평가할 수 밖에 없었다. 어찌됐든 ‘특별한 대접을 받은 느낌’을 소비자들이 SNS에서 계속 올리는 한 ‘나도 여기 다녀왔다’는 군집행동(Herding Behavior) 심리에 의해 이들 가게는 더 유명해질 것이다.

  소비자들이 ‘남들이 모를 것 같은 특별한 제품’을 소비하고 싶어하는 심리를 이용한 ‘고스트(Ghost) 마케팅’은 글로벌 대기업들도 활용하고 있다. 맥도날드의 경우 아침 메뉴인 에그 맥머핀 재료인 계란과 베이컨을 점심 메뉴인 맥더블 사이에 끼워넣은 ‘10:35분 햄버거’를 팔고 있다. 기존 메뉴판에는 전혀 없지만, 입소문을 타고 ‘알만한 사람들은 주문해서 사먹는’ 햄버거가 됐다. 


 ‘미니멀리즘(Minimalism).’

  복잡한 기교나 각색을 최대한 줄여 ‘기본으로 돌아간다’는 취지와 일맥상통하는 미니멀리즘은 최근 또하나의 소비 트렌드가 되고 있다. 특히 ‘무(無)’를 강조하는 마케팅은 점점 많은 대기업들로 전파되고 있다. 이름조차 '브랜드 없는 좋은 품질의 상품(無印良品)'이란 뜻을 지니고 일본에서 태어나 이제는 세계적인 브랜드가 된 무지(MUJI)가 대표적인 예다. 합리적인 가격이지만 단순하면서도 깔끔한 디자인으로 ‘미니멀리즘’ 패션의 아이콘이 됐다. 

 수많은 신용카드사가 난립하는 가운데 알파벳만 단순하게 들어간 카드 디자인과 이해하기 쉬운 단순한 서비스 제공으로 시장점유율을 높인 현대카드도 국내에선 미니멀리즘 선두주자가 됐다. 오직 품질만으로 승부하겠다는 의지를 이름에 담은 이마트의 PB 상품 브랜드 ‘노 브랜드’도 노란색 포장에 검은 글자만을 넣은 미니멀리즘 전략을 쓰고 있다.


 무(無)로 돌아가리라

 비트코인부터 북핵위기까지. 바게뜨 빵부터 해외 주식까지. 자의반 타의반으로 하루에도 수백가지 정보와 상품을 접하는 현대인들에게 ‘무소유’는 생존을 위한 필연일 수 밖에 없다. 심리적으로 모순된 가치관이 하루에도 수십번씩 충돌하는 가운데 ‘선택의 순간’을 강요받는 상황이 반복되면 정신적으로 고통받을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스마트폰 사용이 우울증과 조현병 등 정신질환을 늘렸다는 연구가 나오는 배경이다.

 이제 사람들은 행복하게 살기 위해서라도, 아니 적어도 스트레스를 덜 받기 위해서라도 ‘버리고 살기’ 연습을 해야할 수 밖에 없다. 줄이고, 버리고, 덜 마주치는 그런 삶을 동경하는 사람들은 점점 늘고 있다. TV마저 정글로 훌쩍 떠나 모험을 하거나, 산속에서 홀로 집을 짓고 수년째 불편함 속에 살거나, 다른 나라에 여행을 가서 또다른 나를 찾는 프로그램으로 홍수인 까닭이다. 

 본래무일물(本來無一物), 원래 아무것도 없었다는 선승(禪僧)의 가르침이 현대인의 일상 속에 세세히 녹아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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