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나한테 화장 왜 안 하냐고 물어보지 않았는걸 뭐
취직을 하면서 자취를 시작하게 되었다. 부모님은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지만 집에서부터 회사까지 출퇴근하는 건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으므로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엄마는 종종 내 자취방을 찾아와 며칠 머무르다 가시곤 한다. 보통 자취방에 들어오시자마자 청소가 이게 뭐니, 오래됐다 싶은 반찬은 바로 버려라, 뭘 해먹고 사는거니 등등 밀린 잔소리를 퍼붓는 걸로 본인의 등장을 알리시곤 한다. 간만에 들으면 반갑기까지 한 이런 잔소리에 일일이 궁시렁 거리면 괜히 애정어린 등짝스매쉬라도 맞게 되니, 나는 보통 '맞아맞아 엄마말이 다 맞아'하고 맞장구를 치는 편이다. 그런데 이번에 딱 하나의 잔소리에는 맞아맞아 대꾸하지 못했다.
"너 회사 가서 화장하니?"
"아니? 왜?"
"왜 화장 안해? 좀 하고 가."
너무 오랜만에 듣는 말이라 약간 버퍼링이 걸렸다. 오... 화장... 나 회사에서 화장 안 한지 엄청 오래 됐는데... 게다가 엄마는 평소에 내게 화장하라는 소리는커녕 쌩얼이 낫다고 말하는, 전형적인 콩깍지 낀 부모상에 가까웠기 때문에 잠시 내 귀를 의심했다. 그러니까 엄마 말은, 여자라서 화장을 하라는게 아니라 회사에 출근을 하니 화장을 하라는 소리에 가까웠다.
"왜? 많이 이상해?"
"그게 아니라 출근하는 건데 좀 그렇잖아. 회사 사람들이 뭐라 안해?"
"???응. 아무도 뭐라 안하던데?"
"그거는 니가 상사라 그런거 아냐?"
"아니 저도 상사 있는데요?"
"너 말고 다른 사람들도 다 화장 안해?"
"그건 아닌데..."
서로를 이해할 수 없었던 우리 모녀는 이렇게 한참을 질문만 주고 받다가 이쯤에서 대화를 마무리했다. 나는 민낯보다 지각이 훨씬 더 이상하게 보일거라는 마지막 말과 함께 여전히 화장을 하지 않은채로 출근했다.
허겁지겁 출근하면서 생각해보니, 우리 회사의 여성들은 대부분 화장을 하긴 했다. 문득 나 혼자 조직의 불문율을 어기고 있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요새 사회적 분위기가 변해서 외모 지적을 하는 순간 최소 꼰대, 최대 성희롱범이 되니 대놓고 지적하는 사람은 없음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다 화장을 하고 계신 걸 보면 눈치껏 알아서 해야 되는 영역인가 싶었다. 눈치껏... 아래부터 차근차근 올라왔으면 이런 눈치 정도는 배워서 올텐데, 성과내는 것보다 더 어려운게 이놈의 눈치보기다.
화장 뿐만이 아니라 회사에는 미묘한 불문율들이 많다. 같은 회사여도 과별, 팀별로 다른 규칙을 가지고 있기도 하다. 합리적이라고 보기는 어렵지만 지키는 것이 조직 차원에서 '자연스러운' 일들로 여겨지는 규칙들이 이런 불문율일 것이다. 최근에 이슈가 되었던 시보를 뗀 공무원들의 떡돌리기 문화도 대표적인 불문율 중 하나다. 그 외에도 9시 정각보다 조금 이른 출근시간, 관리직 이상에게 요구되는 복장 규율, 직급별로 다르게 책정되는 경조사비 등등 여러가지가 있다. 이런 종류의 불문율은 비합리적이고 말도 안되는 경우도 있고, 가만 지켜보다보면 나름대로 조직의 윤활유 역할을 해주는 경우도 있다. 어쨌든 조직에 막 들어온 신입사원의 입장에서 불문율을 깨기는 거의 불가능하다보니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지키게 되곤 한다. 행시출신 사무관이 제일 어려워하는 것 중 하나는 바로 이런 조직의 불문율일 것이다. 업무적 영역은 법, 행정규칙, 하다못해 매뉴얼이나 선례가 있어서 그래도 명확하다. 공부 잘하고 시험 잘쳐서 들어온 사무관들에게 쉽지는 않아도 어렵지만은 않은 일이다. 하지만 불문율은 다르다. 가르쳐주는 사람이 없고, 가르쳐주기도 힘들다.
불문율은 대놓고 물어보기도 좀 그렇다. 윗사람에게는 물어보기 어렵고, 아랫사람에게는 대답을 듣기 어렵다. 화장만 해도 그렇다. 바쁘신 과장님께 여쭤보자니 '쟤는 사무관이라는 애가 업무보고 와서 물어볼게 겨우 화장 얘기인가?'하실까봐 걱정이고, 그렇다고 직원들에게 물어보자니 내가 젊은 꼰대가 될성 싶다. 화장 안한 여직원들은 '우리 팀장이 지금 나 화장 안했다고 꼽주는 건가?' 할테고, 다른 직원들은 '우리 팀장이 답정너였던가?'하는 의심을 할 것 같았다. 그리고 어느 경우에나 답은 "팀장님은 화장 안해도 아름다우십니다^^"조의 원치 않은 아부성 멘트가 돌아올 게 뻔하다. 이게 뭐람.
결국 물어볼 수 있는 사람은 만만한 동기들인데, 이럴 때마다 고만고만한 머리를 모아봤자 고만고만한 결론이 나온다는 걸 새삼스레 깨닫게 된다. 우리 동기들은 다들 참 착하고 똑똑하다. 하지만 이런 답없는 문제에 있어서는 뾰족한 수를 찾지 못하는 요령없는 사람들이라 매번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선배님께 여쭤보자' 또는 '안전하게 일단 보수적(?)으로 하자'식으로 어설픈 해결책만 내곤 한다. 물론 이 요령없는 사람에는 나도 포함이 되어 있어서 다른 동기들의 비슷한 질문에도 비슷한 답을 한다. 어쩔 수 없다. 우리들은 다들 관리직이긴 하지만 사회초년생이기도 해서 경험으로 터득하는 요령은 모를 수밖에 없는걸...
그래도 요즘에는 부모님뻘 주무관님들이랑 열심히 친분을 쌓아서 물어보는 편이다. 최대한 자연스럽게 주제를 몰아가서, 요새 아주아주 사소한 고민이 있다고 하면서 여쭤본다. 나는 전에 함께 근무했던 푸근한 인상의 주무관님이 옆 사무실에 계신다. 나와 동갑내기 아들을 두고 있어 나를 마치 공부 잘하는 이웃집 딸내미 보는 눈길로 봐주시는 따뜻한 분이다. 이런 분은 일단 친해지면 물어보긴 쉽다. 점심 티타임때 한참 주무관님 자식 이야기를 들어드리다가 내 얘기도 슬쩍 끼워넣으면 된다. 넌지시 화장 이야기를 꺼내자, 이 부산 출신 주무관님, 아주 걸쭉하게 답하신다.
"아이고 팀장님예~ 씰데없는 생각 마이소! 그런거 너무 신경쓰면 다 지 팔자 지가 꼬는깁니다!"
그 말이 어찌나 속 시원하고 좋던지 웃음이 터져나왔다. 그치, 내 팔자 내가 꼬고 있었네. 아무도 나한테 지적하지 않았는데 혼자 낑낑대던 내가 우스워서 한참을 더 웃었다.
자취방에 돌아와서 엄마가 해주시는 따뜻한 집밥을 먹으며 주무관님과의 대화를 들려드렸다. 엄마도 어이없다는 듯 픽 웃으면서 "그래, 니가 알아서 잘 하겠지. 엄만 널 믿어."하고 말았다. 엄마때는 직장에서 화장하는 게 당연했어서 그냥 물어봤다나. 엄마도 특별히 깊게 생각하고 던진 말은 아니었는데 나 혼자 괜히 별의별 생각을 다하고 고민했나보다.
나는 불문율을 지키기 위해 애쓴 것처럼 굴었지만 실상은 그냥 종일 눈치만 보고 말았다. 생각해보니 정말 중요한 불문율은 어떤 방식으로든 내 귀에 들어왔다. 친절한 선배들과 경험 많은 주무관님들이 경험없는 사무관에게 속성으로 교육을 시켜준다. 그런 중요한 규칙은 지키지 않으면 당신들도 피해를 보기 때문에. 푸근한 주무관님의 일갈도 결국 '우리가 가르쳐주지도 않은 규칙 혼자 만들지 좀 마!'하는 소리가 아니었나 싶다.
그 많은 불문율 중 비합리적인 것들은 다 나처럼 '지 팔자 지가 꼬는' 사람들이 만들어낸 것이리라. 괜히 눈치본답시고 보수적으로 행동해서 그 아래 후배들도 따라해서 만들어진 규칙일 것이다. 나처럼 눈치보는 경험없는 사람들 때문에 역으로 경험적 불문율이 만들어진다고 생각하니 아이러니하다.
우리가 시보를 떼던 날 떡을 돌리던 일이 생각난다. 동기들끼리 돈을 모아 통일해서 떡을 돌리기로 했는데, 이런저런 아이템을 생각하다가 갑자기 한 명이 "야! 괜히 기대치 너무 높여서 후배들 힘들게 하지말자!" 하는 소리에 가장 기본적인 메뉴로 골랐던 기억이 난다. 처음에 시보 떡 돌리기 문화는 단순했을 거다. 무사히 공무원이 되었으니 함께 근무한 직원들에게 감사하다는 마음을 담아 작은 선물을 하는 것 자체는 결코 비합리적인 생각이 아니다. 오히려 앞으로도 쭉 함께 근무할 사람들에 대한 마음 표시이고, 흔히 말하는 사회생활의 일종에 가깝다. 하지만 그것이 강제가 되고 점점 떡을 돌리는 범위와 가격이 올라가면서, 감사표시가 부담스러운 인사치레가 되고나서부터 합리적 범위를 벗어나게 된 것이다. 그러고 보면 눈치 보기는 그 불문율의 비합리화에 가장 크게 기여하는 요소 중 하나일지도 모른다.
나는 그래서 지금도 화장을 하지 않는다. 요새는 코로나 덕분에 화장을 하지 않는 직원들이 늘어난 것도 같다. 여전히 나한테 화장을 하라고 지적하는 사람도 없다. 가끔 느껴지는 시선은 기분탓이려니 하면서 잊어버린다. 이제는 '씰데없는 생각'은 좀 하지 않으려고 노력 중이다. 아무도 지적하지 않는 신기루 같은 불문율을 다 지켜서 뭐에 쓴담. 혹시라도 내가 지켜서 그 신기루가 진짜배기가 되는 순간 더 많은 사람들이 고통받게 될텐데. 주무관님의 일갈을 되새기며 애써 아른거리는 신기루를 외면해본다. 조직과 내게 모두 도움이 되는 '진짜' 불문율만 터득할 것을 다짐하며, 오늘도 나는 민낯으로 회사에 나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