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editduaa Oct 23. 2022

내가 처음 빼앗긴 것은 사탕이었다

사탕을 빼앗겨도 울지 않는 방법 01

내가 처음 빼앗긴 것은 사탕이었다. 어릴 적 나는 반지 모양 사탕을 참 좋아했다. 그 모양은 사탕을 빨기에도 침을 삼키기에도 요상해서 얼굴과 손이 금세 침 범벅이 되었다. 그 침에 흙먼지가 뒤섞이면 거지꼴이 되기 십상이다. 그 꼴을 가만히 보고만 있을 엄마는 없었고, 항상 사탕을 뺏기고 몰래 사고 다시 뺏기기를 반복했다. 그때의 나는 사탕을 먹는 것이 큰 잘못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사탕을 빼앗겨도 잠시 속상할 뿐 어떻게 하면 또 몰래 먹을 수 있을까를 고민했던 게 전부였다.


그러는 와중 아주 인상 깊은 장면을 보게 된다. 여느 때와 같이 놀이터에서 흙장난을 하고 있었는데 옆에서 같이 놀던 남자아이가 실수로 먹고 있던 막대 사탕을 떨어뜨린 것이다. 사탕은 모래가 묻어 먹을 수 없게 되었고 나는 그 모습을 안타깝게 쳐다볼 뿐이었다. 그 애는 세상이 떠나갈 듯 아주 서럽게 울어댔는데, 그걸 본 그 아이의 엄마가 선뜻 제안했다. “그만 울어, 엄마가 하나 새로 사줄게!” 오, 천사 같은 어머니군, 감탄하던 것도 잠시, 그 녀석은 코를 훌쩍이며 “그럼, 두 개”라고 흥정했다.


저 뻔뻔한 녀석 저러다 한 대 맞겠구나 싶었는데, 이게 웬걸 그 애는 하나를 잃고 세 개를 사주겠다는 약속을 받아 갔다. 나는 그 모습이 굉장히 멋지다고 생각했다. 요즘 말로 쿨하다. 사탕을 떨어뜨렸고, 열심히 울었고, 그리고 다른 사탕을 세 개나 얻었다. 그때 느꼈다. 울며 떼쓰는 게 어쩌면 가장 효율적인 방법일 수 있다고. 내가 처한 상황을 목이 찢어지게 알린다면, 운 좋게 그 애의 어머니처럼 단번에 구제해 줄뿐더러 묻고 더블로 얹어 줄 사람이 나타날지도 모르니까. 물론 사탕은 그 방법이 통했다. 지금부터 내가 쓸 이야기는 울며 떼를 써도 돌아오지 않았던 것들의 이야기다.


지금껏 크고 작은 것을 잃으며 살아왔다. 그러는 와중에도 삶은 계속되고, 갈수록 가져야 할 것도 잃어야 할 것도 많아졌다. 사탕이던 그것이 자존감이 되고 사랑이 되고 사람이 되었지만, 남은 것을 잃지 않기 위해 꼭 움켜쥐는 법을 배웠다. 사탕을 빼앗겨도 울지 않는 방법은 더 큰 걸 빼앗겨 보면 안다. 사탕 같은 건 아무것도 아니게 되는 기적을.


나는 삶이 내게 무자비하게 빼앗아 간 것들을 잘 보내 주는 방법을 치열하게 찾아 나갈 것이다. 그 아이처럼 떼를 쓰고 흥정하고 대안을 잡아 쥘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야 하니까.

매거진의 이전글 기록을 시작합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