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맛의 기억 06화

곰장어 구이

맛의 기억

by 고동운 Don Ko

70년대 말, 부모님이 동생들과 먼저 미국에 이민을 가시고 나는 한국에서의 마지막 2년을 서울의 역촌동에서 보냈다. 아직 개천을 덮지 않아 물이 흐르고 있던 무렵이다.


교회 친구들과 자주 어울려 탁구를 쳤다. 지금도 그렇지만 탁구장, 당구장, 기원 등은 모두 상가의 2층에 위치해 있었다. 내가 탁구장에 가려면 두 명 이상 있어야 가능했다. 한 명이 나를 업고 층계를 오르면 다른 한 명이 휠체어를 접어서 들고 올라가야 했다. 고맙게도 친구들은 이를 마다하지 않고 나와 자주 어울려 주었다.


대부분 나보다 탁구를 잘 쳤기 때문에 보통 5-10점을 접어주고 쳤다. 물론 내기 탁구다. 진 사람이 게임비를 내거나 아니면 포장마차에서 우동을 샀다. 주로 내가 많이 사야 했지만 가끔은 얻어먹기도 했다.


우리 집에서 개천을 끼고 탁구장으로 가는 길에 밤이면 허름한 포장마차가 자리하고 있었다. ‘카바이드’ 등잔으로 불을 밝힌 포장마차에서는 우동, 어묵, 김밥 외에 곰장어, 참새, 돼지고기 구이 같은 안주거리도 팔고 있었다.

추운 겨울밤에 탁구를 치고 집에 돌아오는 길에 포장마차에 들려 우동을 먹곤 했다. 단순히 허기 때문이라면 집에 가서 라면을 끓여먹을 수도 있었지만, 친구들과 어울리는 분위기 때문에 가곤 했다. 가끔은 곰장어 구이를 시켜 한 점씩 나누어 먹기도 했다.


난 곰장어 구이를 이 포장마차에서 난생처음 먹어 보았다. 석쇠 위에 올려놓으면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꿈틀거리며 익어가는 곰장어에 고추장 양념을 발라 구운 것이다. 식감은 그다지 나쁘지 않았는데, 솔직히 맛보다는 분위기로 먹었다.


자주 다니다 보니 마주치는 단골도 있었다. 그중에는 포장마차에서 소주잔을 기울이며 데이트를 하던 커플도 있었다. 잘 이루어졌다면 지금쯤 반백의 머리에 이제는 손주 자랑을 하며 살고 있을 것이다.


포장마차 집에는 고등학교에 다니는 딸아이가 있었다. 가끔은 저녁시간에 나와 어머니를 돕기도 했었다. 우리가 말을 건네면 그녀는 발그레진 얼굴로 어머니 뒤로 숨곤 했었다. 그녀도 이제는 중년이 되었을 것이다.


한국은 눈도 많이 오고 엄청 추운 모양이다. 이곳 남가주에서는 산에나 가야 눈을 볼 수 있지만 그래도 아침저녁으로는 제법 쌀쌀하다. 코끝이 시린 아침에 문득 옛일이 생각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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