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의 기억
내게 도시락은 부러움의 상징이었다. 누이와 동생이 학교에 가지고 가는 도시락에는 소시지나 어묵 등의 반찬이 들어 있었다. 집에 남는 나는 부모님과 함께 점심을 먹었다. 상에는 더운밥과 국, 생선구이 등이 올라왔다. 맛이나 질에서 차갑게 식은 소시지나 어묵과는 비교할 수 없는 양질의 식사였지만 난 늘 소시지 반찬이 부러웠다. 겨울에 조개탄 난로 위에 쌓아놓았다가 먹는다는 도시락이 먹고 싶었다.
동생이 김치가 먹고 싶다고 해서 하루는 할머니가 양은 도시락에 김치를 송송 썰어 넣어 주셨는데, 김치 국물이 새는 바람에 책이며 가방 안에 김치 물이 들고 말았다. 그 후 김치는 작은 병에 넣어 가지고 다녔다.
고등학교 시절 야간수업과 문예반 활동으로 밤이 되어 돌아오던 여동생은 늘 도시락을 두 개씩 가지고 다녔다. 한동안 누나가 도시락을 싸 주었는데, 동생은 지금도 그때 일을 이야기하곤 한다. 도시락 두 개의 반찬이 항상 달랐다고 한다.
나는 미국에 와서 직장생활을 하며 도시락을 먹기 시작했다. 샌드위치를 만들어 가거나 전날 먹고 남은 것으로 도시락을 싸기도 했고, 냉동식품을 가지고 가서 데워 먹기도 했다. 냉동식품도 질과 맛이 좋아져 먹을만하다.
지난 10 수년 동안은 아내가 정성스레 싸 주는 도시락을 가지고 다닌다. 아내는 전날 먹다 남은 음식을 도시락에 넣지 않는다. 아침에 지는 밥에 새로 만든 반찬을 넣어 준다.
미국 직장에 다니는 동안에는 가급적이면 같이 밥을 먹는 동료들에게 민폐를 끼치지 않기 위해 냄새가 나는 김치나 생선 따위는 가지고 다니지 않았다. 가끔 필리핀 직원들이 휴게실의 마이크로 오븐에 생선을 데워 먹곤 했는데, 비릿한 냄새가 오랫동안 남아 있었다.
오래 전의 일이다. 직장동료들이 한국음식을 먹어 보고 싶다고 해서 함께 한국식당에 간 적이 있다. 그때 나는 육회비빔밥을 먹었는데, 한 여직원이 이를 보고 날고기를 먹는다며 오랫동안 나를 놀리곤 했다. 그다음부터는 미국인들과 밥을 먹을 때는 그들에게 낯선 음식은 가급적 피해서 먹는다.
미국인들은 음식을 잘 나누어 먹지 않는다. 한 테이블에 앉아 점심을 먹으면서도 각자 자기 것만을 먹는다, 감자튀김 정도나 나누어 먹는 것이 고작이다.
한인 직장에 다니기 시작하며 점심 문화도 바뀌었다. 여럿이 둘러앉아 도시락 싸온 것을 나누어 먹는다. 나와 주디는 밥을 넉넉히 가져가고, 시드니는 단백질 반찬을 가져오고, 영은 샐러드와 과일, 과자를 가져오며, 앨렌은 특식을 만들어 주거나 가끔씩 밥은 사곤 한다. (이름만 영어일 뿐 모두 한국인이다.) 매일 다양한 메뉴로 거나한 점심을 먹는다.
소시지에 대한 미련이 남아 아내에게 소시지 반찬을 부탁한 적이 있다. 내가 기억하고 있던 그 맛은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