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의 기억
내가 기억하는 어릴 적 새벽을 여는 소리는 두부장수의 종소리였다. 겨울이면 아직 어둑어둑한 새벽에 두부와 콩나물을 팔러 다니는 두부장수가 종소리를 울리며 골목을 누비고 갔다. 종만 울리며 지나가는 장사가 있는가 하면 구성진 목소리로 "두부 사려... 콩 나 아 물" 하며 종소리 중간에 추임새를 넣는 이들도 있었다.
아마도 8-9살쯤 되었을 무렵의 일이었지 싶다. 전날 초저녁부터 잠에 빠져 저녁도 먹지 못하고 잤었다. 새벽이 되니 배가 고파 잠에서 깨었다. 곁에 있어야 할 할머니는 보이지 않고 배는 고픈데, 부엌에서 달그락거리는 소리가 났다. 옛날 한옥의 부엌은 보통 안방에 붙어있고 부엌으로 난 작은 창문이 있어 소리가 잘 들린다. 잠시 후 할머니가 빼꼼히 방문을 열고 내가 깬 것을 확인하더니 곧 작은 쟁반에 밥을 차려 들여왔다.
새벽에 두부장수에게서 산 두부를 기름에 지져 간장에 조린 따끈한 두부조림과 하얀 밥이 있었다. 그 새벽에 먹었던 아침은 지금껏 내가 기억하는 가장 맛있었던 밥이다.
난 기름에 바삭하게 지진 두부를 초간장에 찍어 먹는 것을 좋아했다. 부드러운 속보다는 바삭한 겉을 좋아해서, 할머니는 두부를 깍두기처럼 잘게 잘라 6면을 모두 노릇하게 구워 주었다. 나이가 든 지금은 부드러운 두부가 더 맛있다.
외가에서는 두부는 주로 찌개나 조림으로 만들어 먹었다. 고추장을 풀어 만든 두부 고추장찌개도 맛있지만, 두부와 명란을 넣고 새우젓으로 간을 한 찌개가 내가 제일 좋아하는 두부찌개였다.
할머니는 된장찌개를 제외한 모든 찌개를 약간의 소고기를 볶는 것으로 시작한다. 소고기가 익었다 싶으면 물을 붓고 간을 하여 끊인다. 새우젓 두부찌개는 소고기 맑은 장국에 약간의 새우젓으로 간을 하고 자르지 않는 명란과 두부를 넣어 끓인다. 추운 겨울에 먹으면 속이 뜨끈해지는 것이 아주 맛있다.